25. 몸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아내
“꼬물아, 아빠가 이렇게 오일 발라주고 하니까 좋아?”
임신 18주 차. 언제부턴가 눈에 확 띌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임신 소식을 주변에 알리고 가장 많이 받은 선물이 튼살 오일과 크림이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초반부터 잘 관리해야 한다는 주변의 경험담이 들려왔고, 나는 매일 밤 아내의 배와 옆구리에 오일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아내가 점점 엄마가 되어간다.
매일매일 아내에게 오일을 발라주다 보니 몸의 변화가 더 눈에 잘 들어온다. 지난 12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던 아내였는데, 지난 몇 주 만에 아내의 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살은 4킬로가 빠졌고 가슴은 커지고 피부색도 변했다. 살이 빠져서인지 배가 더 불러 보이기도 하고 볼살은 쏙 빠져서 핼쑥해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걸음걸이도 달라졌다.
“배가 더 나오면, 그때는 좁은 곳을 드나들 때 이렇게 배를 두 손으로 쓱 잡아서 들어 올리고 다니게 될까?”
주차된 차에 타기 위해 게걸음으로 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던 아내가 깔깔 웃으며 이것 봐요, 하고 말한다. 아내가 점점 엄마가 되어간다. 그런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가 되어가는 기분은 어떠냐고.
“어때요? 엄마가 되어가는 기분이.”
한참을 고민하던 아내가 답한다.
“몸의 변화를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몸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A가 변해서 A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동시에 B와 C가 변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순식간에 A도 A’로 변하는 느낌이야.”
그래서 내 몸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져요. 아내가 스스로도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불편하지만 흥미로워하는 표정. 다행히 내 아내는 씩씩하고 강하다.
“4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진 게 커요. 지금 아이와 양수 무게를 합하면 대략 1킬로그램은 될 테니, 실제로는 거의 5킬로그램 정도가 두 달 만에 빠진 셈이에요. 그런 와중에 배가 나오면서 피부가 급격하게 팽창을 해서 그런가, 피부가 좀 약한 곳부터 자주 가려워요. 다리도 자주 붓기 시작했고.”
한 때는 44 사이즈도 커서 33반을 입던 아내였는데. 단 한 번도 이렇게 배가 나와본 적 없던 아내는 똑바로 섰을 때 배 때문에 발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변화된 몸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아내. 인체가 이렇게 급격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는 아내.
10개월이라는 임신 기간이 짧게 느껴진다.
“임신기간 10개월이 어쩌면 길지 않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화되는 몸에 적응하기도 벅찬데 배워야 할 건 너무 많아요. 일주일에 1센티미터씩 자라고 있는 꼬물이를 매일 새롭게 적응하면서, 꼬물이가 태어날 때까지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을 동시에 해야 하고, 태어난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새롭게 배워야 해요. 회사에 다니면서 이 모든 걸 다 할 시간이 모자라. 10개월은 너무 짧아요.”
그거 알아요? 꼬물이는 벌써 피망 크기로 자랐다는 거. 아내가 작은 주먹을 꼭 쥐고 보여주며 말한다. 그러니까 꼬물이가 이만한 크기가 됐다는 거지, 하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리미터 단위에서 센티미터 단위가 되었다며 신기해했던 그 태아가 아내의 주먹 만한 크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기도 벅차다는 아내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주어진 시간 내에 모든 걸 해야 한다. 우리의 벅찬 상황은 우리의 몫이고, 우리의 아이는 그와 상관없이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커가고 있다. 그리고 정해진 때가 되면 우리의 준비 여부와 관계없이 세상을 향해 우렁찬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다시 한번,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가 겪고 있는 고난의 시간을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아직은 용감하고 긍정적인 아내가, 변화하는 몸처럼 마음의 계절도 급격히 변화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비 아빠가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을 묵묵히 최선을 다해 이어나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마음으로, 부지런히 튼살 오일을 발라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