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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Apr 03. 2023

아내의 생일에 딸이 태어났다.

41.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려고 생일까지 따라 할까

“양수가 터진 것 같아요.”


아내가 말했다. 화장실 앞 바닥부터 안방까지 물방울이 군데군데 떨어진 것이 보였다.


“이슬이 비친 건지 아니면 양수가 터진 건지 조금 헷갈리는데, 물 양이 너무 많아서 양수가 아닌가 싶어요.”


아내는 차분하려 노력했지만 두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분비물이 좀 많이 나온 것일 수도 있으니 한 시간 정도 지켜보세요. 그래도 계속 나오면 양수이니 저희에게 연락 주시고 병원으로 오시면 됩니다.” 


한껏 긴장하고 흥분한 아내와 다르게 간호사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침착했다. 늘 분만의 순간을 마주하는 사람이니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가다. 그런 전문가의 침착하고 별 문제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는 조금이지만 힘이 되었다. 괜찮다. 침착하게, 이제 뭘 하면 좋을까.


“어쩌지. 계속 많이 나오는데….”


간호사의 목소리에 힘을 얻은 나와는 다르게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를 마주한 아내는 지난 12년 동안 봐왔던 모든 시간을 통틀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몇 번이고 출산의 순간이 왔을 때를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했던 아내였는데, 이런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라니. 


“아무래도 양수가 맞는 것 같아요. 1시간 까지 기다릴 것 없어요. 바로 준비하고 출발하자.”


15분 정도가 지났을 때, 아내는 세 번째 대용량 생리대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양이 단순한 이슬이나 분비물일리 없다. 


양수가 터졌다.


빠르게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마도 오늘 밤 잠은 사치일 거란 생각에 커피도 한 잔 가득 텀블러에 내렸다. 아내는 옷을 갈아입다 말고 가습기 통을 비워야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며, 냉장고에 오래된 반찬들을 미리 버려두어야 한다며 자꾸만 손에 일거리를 잡았다.  


“내가 할게. 진정해요.”


분주한 아내를 멈춰 세우고 손을 잡아 품에 안았다. 어깨를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진정해.


“우리 준비 다 됐어요. 이제 남은 건 내가 할게. 당신은 옷 마저 다 갈아입고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나한테 시킬 거 있으면 말하고.”


오랫동안 집을 비울 것을 생각해 가전기기의 전원을 내리고 가습기 통을 비웠다. 산후조리원에서 쓸 짐과 출산가방은 이미 차에 실려있다. 꼬물이가 태어났을 때 찍을 카메라와 고프로, 그리고 간단하게 급한 업무를 볼 수 있는 노트북을 가방에 챙겨 넣었고, 마지막으로 내 세면도구를 챙겨 넣었다. 


이제는 진짜 병원으로 출발하면 된다. 아내는 전화로 양가 부모님께 병원으로 간다는 것을 알렸다. 수화기 너머로 두 어머니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간관념이 딱 제 엄마를 닮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나서는 순간 내비게이션이 말한다. 지금 시간은 열 두시입니다. 


“시간관념이 딱 제 엄마네.”


아내에게는 약간의 편집증 같은 버릇이 있다. 깔끔하게 딱 떨어지도록 만드는 버릇. 선이나 색, 패턴이 어긋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 연장선에서 숫자도 마찬가지다. 딱 떨어지는 숫자를 좋아하는 아내. 그런 제 엄마를 닮았는지, 꼬물이는 처음 초음파를 찍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했던 예정일에 정확히 맞춰 세상에 나올 준비를 했다. 임신기간 40주 0일. 엄청나다. 


“그래서 그런가? 태어나는 것도 당신 생일에 딱 맞추려나 봐.”


아무리 분만이 길어도 보통은 만 하루를 넘기지는 않을 테니, 꼬물이가 태어나는 것은 오늘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나보다는 아내를 닮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을 신이 들어준 것인지.


“하루 이틀 차이 날 거면 차라리 같은 날이었으면 했는데, 우리 꼬물이가 효녀네.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그렇죠?”


그러게. 내가 답한다. 꼬물이는 참 효녀가 맞다. 아빠 힘들게 월요일에 출근했다가 병원으로 뛰어올 필요 없이, 주말 다 편안하게 쉬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이렇게 나오겠다고 신호를 주다니. 이런 효녀가 또 있을까. 이런 효녀이니, 엄마를 너무 아프게 하진 않겠지? 


이런 경우도 많아요.


병원에 도착한 것은 12시 30분이 조금 넘어서였다. 주말이 끝난 새벽의 도로는 신비로울 정도로 한산했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가겠다는 마음과 달리 액셀에 자꾸만 발이 올라갔다. 수원에서 잠실까지 제법 되는 거리를 구름을 밟으며 날듯 그렇게 달렸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아내가 처음으로 진통을 호소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코로나 항원 검사를 받고 대기실로 안내받았다. 아내는 아이의 심박수와 통증(수축) 정도를 보여주는 태동검사 때 쓰던 기계를 달고 항생제와 수액을 맞았다. 꼬물이의 심박수는 140. 자궁경부는 1센티미터. 4센티미터가 열리면 분만실로 이동해 무통주사를 맞고, 8센티미터가 되면 본격적인 분만에 들어간다. 10센티미터가 열리면 드디어 아이가 태어난다. 


“이런 경우도 많아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진통이 오기 전에 양수가 먼저 터지는 경우가 흔한 것인지를 묻는 내게 간호사가 답해주었다.


“다만, 양수가 터지면 감염의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항생제를 맞아야 해요.”


아직 많이 남았으니, 지금은 산모도 보호자도 좀 쉬세요. 옆에 빈 침상이 있으니 여기서 좀 쉬고 계세요. 간호사는 아내가 누운 침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며 말했다. 


잠깐의 쪽잠이라도 자보려 했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간호사가 오갈 때, 아내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내에게 향했다. 진통은 15분 간격으로 찾아왔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며 5시가 되었을 때부터는 아내에게 산소마스크를 달아주었다. 


이제 유도분만에 들어갑시다.


오전 7시를 넘어 바깥이 환하게 밝아오기 시작했을 때 의사가 찾아와 이야기했다. 양수가 터졌으니 길게 기다릴 필요 없이 유도제를 쓰고 분만에 들어가자고. 촉진제가 들어간 지 30분도 되지 않아 10분이 넘던 진통 주기는 2분으로 짧아졌고, 그에 맞춰 아내의 통증도 커졌다. 점점 더 빠르게 아파질 거라던 의사의 말은 한치도 틀리지 않았다. 아내는 눈을 감고 숨을 죽이며 통증을 견뎠다. 


8시 40분이 되어서 분만실에 들어갔다. 제모와 관장을 위해 나는 잠시 대기실 바깥으로 쫓겨났다가 다시 들어가야 했다. 진통 간격은 2분으로 일정했지만 진통의 지속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졌다. 30초 정도였던 것이 1분을 넘어갔다. 아내가 숨을 돌리며 회복하는 시간이 30초도 되지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아내는 꿋꿋하게 잘 버텼다. 나는 그런 아내 곁에 머물며 산소호흡기를 점검하고 아내의 입술이 마르면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입술을 닦아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손을 쥔 아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통주사는 통증을 없애주지 않는다.


10시 40분이 지났을 때, 드디어 아내에게 무통주사를 놓아주었다. 자궁경부가 3센티미터쯤 열렸을 때였다. 


“견딜만해요?”


무통주사가 효과를 보기까지 약 20분 정도가 걸린 듯했다. 아내는 나의 물음에 조금은 편안해진 호흡으로 이렇게 답했다. 


“아픈 건 여전해요. 하지만 견딜만해진 것 같아요.”


여전히 수축되는 것도 느껴지고 통증도 느껴지지만 참을만한 수준이 되는 거라고. 굳이 비유하자면 조금 심한 생리통 정도라는 아내. 중간중간 상태를 보러 들어온 간호사는 아내가 무통주사 효과를 굉장히 잘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4센티미터에서 8센티미터로 가는 과정이 가장 고통스러운데, 그 고비를 정말 잘 넘기는 거라고. 


분만의 순간에 남편은 철저히 무력해진다.


무통주사의 효과가 끝나가기 시작한 12시 40분부터는 전쟁이었다. 이때부터는 간호사와 내가 아내에게 붙어 분만을 도왔다.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나는 아내의 진통 주기에 맞춰 아내의 두 무릎을 바깥쪽으로 누르고 발바닥을 몸으로 지탱해 주며 10초를 세주었다. 아내는 나의 카운트에 맞춰 머리를 들고 배에 힘을 주었다. 아내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목과 얼굴 전체에 빨갛게 실핏줄이 터져갔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아내의 모습. 그럼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아내. 산소호흡기를 달았음에도 숨이 가팔랐다. 중간에 몇 번인가 의식이 멀어지는 것 같을 때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럴 때면 아내는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두 눈은 내게 아내가 간신히 버티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아내는 진정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힘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간호사의 지시로 분만실을 나간 것은 2시 20분이었다. 분만 모습을 아내는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탯줄을 자르는 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는 될 수 있는 한 분만과정을 내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내게 보이기 싫어했고,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꺼려했다. 내가 곁에 있는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며, 밖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면 된다는 아내. 그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사진이나 잘 찍으라며, 사진과 영상을 강조하던 아내였다. 몇 번을 물어도 아내의 대답은 같았기에, 나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었다. 


1시간 40분 간의 사투를 겪고 나온 복도의 공기는 서늘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 방문 너머와 내가 선 복도는 마치 다른 세상인 것만 같았다. 힘들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달리 나는 그 힘듦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고통에 절여지는 와중에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간호사의 지시를 따르는 아내가 대단해 보였다. 


분만에 있어 남편인 나는 철저히 타자였다. 아내가 느끼게 될 고통에 대해서만 머리로 이해했을 뿐, 나는 거기서 느끼게 될 나의 무력감에 대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의 두 다리를 잡고 눌러주는 것. 마른 입술을 손수건으로 적셔주는 것.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꼭 잡아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나는 무슨 수를 써도 아내가 느끼는 고통의 부스러기조차도 덜어줄 수 없었다. 


2시 28분, 우리 딸이 태어났다.


“보호자 분.”


분만실을 나선 지 8분이 되었을 때,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분만실 앞에 선 간호사의 품에는 조그마한 아이가 안겨있었다. 


“축하드려요. 여자아이입니다. 3.36킬로그램이고, 산모도 괜찮아요.”


간호사가 아이를 건네주며 말했다.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벌써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뭐가 보이기는 하는 걸까. 눈에 초점이 없다. 그래도 내 목소리는 알아들을까? 지난 몇 달 동안 민망함을 무릅쓰고 아내의 배에 대고 나름대로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꼬물아.”


“은아.”


“아빠야. 목소리 기억나?”


“고생했어.”


“힘들었지. 잘했어.”


말과 말 사이에 공백이 길어진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 아이를 보기 위해, 우리는 지난 열 달의 시간을 준비해 왔다. 지난 열 달은 모든 것이 새롭고 두려웠으며 기대감에 두근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 우리 딸. 내 가족.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운명 지어진 우리 아이.


다음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왔어요?”


후처치가 끝나고 분만실에 들어가자 아내가 말한다.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아내의 손을 잡는다. 애써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온다. 고생했어요. 정말 고생 많았어. 나의 말에 아내가 답한다. 왜 울어. 울지 말아요. 당신도 고생했어요. 한 숨도 못 자고, 옆에서 많이 힘들었죠?


“나, 다음번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할 만했어요. 아내에게 꼬물이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아내가 말한다.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니, 보통은 둘째 생각이 있던 사람도 아이 낳자마자는 다신 안 하겠다 한다던데. 당신은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응. 전혀. 이제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알 것 같은데?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이마와 얼굴 가득 실핏줄이 터져 빨갛게 반점처럼 올라온 흔적들. 이 여자는 대체 뭘까. 난 대체 어떤 사람이랑 결혼을 한 거지. 


“그런데, 나 기분이 좀 그래요.”


“응? 뭐가?”


아내의 표정을 살피며 묻는다. 내가 혹시 뭔가 실수라도 한 것일까?


“너무 못 볼 꼴을 많이 보였어.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흉한 꼴을 많이 보이게 될 줄은 몰랐어요.”


혹시, 나 더럽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이제 나한테 신비감이 다 떨어져 버리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좀 그래. 아내가 말한다. 나는 다시 한번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대체 나는, 뭐랑 결혼을 하고 만 것인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출산 과정


여기까지가 숨 가빴던 출산 날의 기억이다. 아내의 말대로 민망하고 당혹스러운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굳이 여기에 적지는 않았다. 출산의 과정은 마냥 아름답지 않았고, 고통 앞에 인간은 한없이 적나라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아내의 출산 과정은 신비로운 무언가가 있었다. 


“꼬물아. 거기 있지? 잘 견뎌줘서 고마워. 이제 조금만 더 힘내자. 엄마도 힘낼게. 곧 만나자, 꼬물아.”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내가 반쯤 취한 것 같은 목소리로 뱃속의 아기에게 말을 건네었을 때.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바라던 새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아내의 고통을 필요로 했고, 아내는 그 과정 속에서 엄마가 되었음을.


이제는 내 차례다. 아내는 이제 엄마가 되었고, 그렇게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이제는, 내가.


아빠가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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