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아이를 낳을 마지막 점검을 하는 우리 부부
“다 됐나?”
아내가 거실에 쌓인 짐가방을 둘러보며 말한다. 커다란 캐리어 하나에 숄더백 하나. 캐리어에 다는 소형 수납케이스 하나와 마트용 쇼핑백에 가득 든 짐이 또 하나. 여기에 내 짐은 따로다. 백팩 하나에 작은 숄더백 하나. 병원과 산후조리원을 모두 합치면 거의 4주 동안 쓰게 될 짐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과 부피가 제법 버겁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야 하는 아내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둔 일요일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첫 아이는 예정일보다 조금 늦게 나온다는 말에 아직은 조금 시간 여유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부지런한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늘 준비되어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아내.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감에 시달리는 아내다.
아내의 삶은 늘 미래에 다가올지 모르는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이었다. 불행한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했고. 그런 직장에 들어가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고. 아내의 성장과정은 쭉 불안감과 싸워나간 전쟁의 역사였다. 20년을 넘게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꽤 높은 확률로 승리해 온 아내가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런 아내에게 출산일 D-1은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반드시 점검하고 준비를 마쳐야 하는 데드라인이었다. 어쩌면 출산 당일보다, 이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둔 오늘이 아내에게는 더 중요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날 아내의 기세는 대단했다.
“이제 짐은 다 된 것 같아요.”
나머지는 당일에 챙겨야 할 것들만 남았어요. 아내가 말한다. 산처럼 쌓인 가방을 풀었다 싸기를 몇 번. 매일 사용하는 면도기, 로션 같은 것들을 제외하면 모든 짐이 가방 안에 자리 잡았다. 병원에 들고 들어가야 할 짐 따로,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때 들고 들어가야 하는 짐 따로.
“오빠, 마지막으로 이거 챙겨봐야 해요.”
이제 얼추 끝났겠거니, 그러니 이제 제발 앉아서 좀 쉬었으면 하는 내게 아내가 손짓하며 부른다. 아직 우리는 할 일이 남아있어요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아내의 손에는 A4용지 몇 장과 펜 한 자루가 들려있다.
“출산할 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들과 출산 직후에 할 신생아 검사 항목을 마지막으로 확정해야 해요.”
몇 주 전 병원에서 준 서류 뭉치다. 나는 출산과 관련된 거의 모든 선택권을 아내에게 넘겼다.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이겨내야 할 아내이기에 내가 굳이 말을 얹고 싶지 않았다. 자칫 서운한 마음이 들거나 싸움의 씨앗이 될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예민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는 처신이 중요하다. 주변의 출산과 육아 선배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지금 아흔아홉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 잘못한 게 생기면 그건 평생 간다고. 15시간이 넘는 진통 시간을 함께 하다가 잠시 졸아버렸던 동갑내기 직장 동료의 이야기도, 잠시 먹을 것을 사러 맥도널드에 갔다가 15년째 고통당하고 있다는 지인의 이야기도 내게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결혼식과 비슷하게 출산에 있어서 남편의 역할은 몸과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다. 조용히 아내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 굳이 말을 더 보태지 않는 것. 화목한 가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이다.
검소한 아내는 출산에 있어서도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웬만한 건 그냥 다 안 하기로 했어요.”
아내의 곁에 앉자, 아내가 서류를 내밀며 내게 말한다.
“국가에서 보조해 주는 기본검사 외에는 웬만하면 다 안 하려고요. 혈액형 검사랑 황달검사 정도나 할까. 그 외에는, 그냥 국가 보조 검사만 받을래요. 우리는 양쪽 집안 다 유전성 병력도 없으니까 굳이 필요 없어요. 청력검사랑 신천성 대사 이상 검사는 국가에서 보험으로 적용해 주니까, 이 정도만 받는 걸로 하자.”
G스캐닝 유전질병 검사니, 제대혈 보관이니 하는 것들은 다 패스. 아내가 시원스럽게 말하며 어때요? 하고 묻는다. 나는 그저 고개를 작게 끄덕일 뿐이다. 충분히 고민한 아내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해야지. 더 붙일 이야기는 없다.
한 번에 적게는 몇 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만 원을 우습게 넘기는 여러 검사들을 아내는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검사들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는 아내. 아내의 기준에 이 많은 검사들은 대부분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다. 그저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부모의 만족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내는 말했다.
“그럼 출산할 때는?”
내가 묻는다.
“회음부 열상주사랑 무통주사만. 나머진 필요 없어요.”
역시 시원하고 깔끔하게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병실 선택이 남았다.
“이건 좀 고민돼. 어떻게 하고 싶어요?”
아내가 내게 묻는다. 다인실은 국가 보조금으로 무료지만, 1인실을 선택할 경우 하루에 15에서 20만 원 정도가 든다. 우리가 출산을 하게 될 병원의 다인실은 6인실 뿐이다.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1인실. 다른 부분에서 아낀 비용이 많다. 이 정도쯤이야.
“그래, 그럼 이건 1인실로.”
아내가 밝게 웃으며 답한다. 우리 열심히 일하고 아끼면서 준비했으니까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겠지. 이 정도 누릴 정도의 자격은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실 다인실은 좀 불편하겠다 생각했어요. 출산 후에 계속 아래로 오로가 생겨서 패드를 수시로 갈고 해야 할 텐데, 다른 산모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산모 보호자들이 드나들면 신경 쓰일 것 같아서."
내심 1인실을 원했다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이것 봐요. 꼬물이가 점점 아래로 내려오고 있어요.”
아내가 내 손을 끌어 명치 부근에 댄다. 며칠 전보다 주먹 하나만큼 윗배에 공간이 생겼다. 가슴 바로 아래까지 풍선처럼 부풀어있던 배가 쭉 아래로 내려가있다. 아이 무게가 늘어나는 만큼 아이는 산도를 향해 자연스럽게 내려가고, 아내의 몸은 아이를 내보낼 준비를 한다.
오후가 되어 출산가방을 차에 실었다. 카시트는 이미 며칠 전부터 운전석 뒷자리에 자리 잡았다. 키가 큰 편인 데다 차의 실내공간도 좁은 편이어서 운전석을 뒤로 많이 젖히고 운전을 하곤 했는데, 카시트 때문에 부득이 운전석을 앞으로 당기고 등받이도 세웠다. 지난 7년 동안 유지해 온 운전 자세는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출퇴근 길마다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다. 좀 더 큰 차로 바꾸기 전까지는 이 세팅에 몸을 맞추고 익숙해져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때까지는.
아이 방도 완성되었다. 회사 동료와 주변 친구들이 준 선물들로 가득한 아이 방. 정말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남은 것은 이 모든 소란의 주인공이 우리 보금자리로 오는 것뿐. 그 순간을 위해 아내와 나는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출산 신호가 오면 어떤 짐을 추가로 차에 실어야 할지. 집을 장기간 비워야 하니 어떤 조치를 취하고 나가야 할지. 병원에 가서는 어떤 순서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꼬물이는 미숙한 아빠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진짜 중요한 점검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는 정말 아빠 엄마가 된다. 우리는 이제 곧 태어나게 될 우리의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좋을까? 좋은 아빠, 좋은 엄마란 뭘까? 우리는 정말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아이를 갖기 전부터 안고 있던 질문에는 여전히 명쾌한 해답 없이 막연한 두려움만 그림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 또 하루를 보냈고 출산 전날을 맞이한 우리였다. 엄마와 달리 준비되지 않은 나를 우리 꼬물이는 더 기다려주기 어려웠나 보다. 밤 11시 20분. 출근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 아내가 말한다. 나, 양수가 터진 것 같아.
때가 되었다. 우리 딸이 드디어. 세상에 나올 신호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