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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왼쪽 분부터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면접장에 들어서면, 이런 레퍼토리로 면접이 시작된다. 그러면 지원자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경영지원 직무에 지원한 000입니다.”
말문을 연 지원자는 열심히 외워온 자기소개를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읊어낸다. 운이 좋다면 이 지원자는 마지막까지 연습한 대로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운이 좋지 않다면, 중간에 말했어야 할 문장 하나를 빠트리거나 잘못된 순서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던 지원자는 ‘시작이 좋다! 잘 해냈어!’라고 생각할 테고, 운이 좋지 못했던 지원자는 ‘아, 망했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면접을 마치고 며칠 뒤 결과가 나온다. 두 지원자 모두 불합격이다. 후자는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겠지만 전자는 ‘왜? 특별한 실수도 없었고 말도 잘 했는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외웠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의 제 1원칙은
‘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면접에서 자기소개는 지원자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다. 지원자의 목소리가 면접실의 공기를 울리는 그 순간부터 약 1분에 걸쳐, 지원자는 자신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다. 그런 자기소개를 외워서 한다면? 아무리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면접관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외운 내용은 ‘진짜 지원자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원자는 별생각 없이, 실수를 없애기 위해 자기소개를 준비하고, 기왕 준비하는 거 깔끔하게 외워서 하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지원자들은 자기소개를 외우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가자는 다르다. 평가자는 지원자가 하는 모든 말, 제스처, 자세, 행동에서 지원자가 보여주지 않는 ‘진짜’ 지원자의 모습을 캐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지원자가 자기소개를 외웠을 때, 평가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기소개를 외운 지원자를
평가자는 신뢰하지 않는다.
지원자가 자기소개를 외워서 이야기할 경우, 지원자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지원자의 어조, 어휘, 목소리, 그리고 표정과 눈의 초점에서 ‘나 자기소개 외워왔어요.’라는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이럴 경우 평가자는 지원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자기소개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외울 정도라면, 분명 타인에게 감추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된다.
즉, 평가자는 암기의 흔적을 발견한 순간부터 순진한 청자에서 의심하는 비평가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원자가 뭘 감추고 있는지, 외운 내용에 거짓은 없는지, 평가자는 지원자가 감추고 있는 흠결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된다. 지원자와 평가자의 심리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아무리 지원자가 진솔하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 진정성을 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개팅에서 자기소개하듯,
편안한 자기소개가 좋다.
소개팅 자리에 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소개팅은 연애에 뜻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자신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취업과 채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회사에서 일할 뜻이 있고, 함께 호흡을 맞춰 일 할 직원을 뽑을 의사가 있는 평가자가 만나 서로를 보여주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 자기 첫 소개를 외워가는 사람이 있을까? 보통은 아주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000입니다.”라고 웃으며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나갈 것이다. 서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설명해 나갈 것이다. 면접 자기소개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소개팅이랍시고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이야기하는 상대방이 부담스러웠던 경험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대기업의 경우 면접관은 면접일이 되면 최소 반나절, 최대 하루 종일을 면접으로 보내게 된다. 면접관이 만나게 되는 인원 수도 최소 두 자릿수에서 최대 세 자릿수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면접관은 지원자의 긴장과 감정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엇비슷한 틀에 박힌 자기소개에 지쳐가게 된다. 대화를 하다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상대의 감정과 상태에 감정적으로 동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에, 편안한 목소리로 부담과 기름기를 쫙 뺀 한 지원자가 명랑하게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어떨까? 외우지 않은 자기소개는 편안하다. 뭐가 문제인가? 나 자신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보다 쉬운 질문이 있을 리 없다. 편안한 답변은 듣는 이도 덩달아 편안하게 만든다. 지원자의 편안함이 면접관에게도 행복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면접관은 ‘평가자’가 아닌 ‘청자’가 된다.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고 상대의 이야기를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억지로 퍼즐을 맞추듯
짜 맞추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자기소개를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막 이야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소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질문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지원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질문이 나오도록, 자신이 어필하고 싶은 내용이 질문에 나오도록 자기소개 내용을 미리 선정해둘 필요가 있다. 다만 그 자기소개를 억지로 만들어놓은 퍼즐 그림처럼 짜 맞춰 외우지 말라는 뜻이다. 보통의 경우 키워드와 순서를 생각해놓는 정도로 충분하다.
외운 자기소개에는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
외운 자기소개의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 외워서 이야기하는 자기소개는 대체적으로 수사가 화려하다. 기발하다고 생각하는 은유적 수사와 상징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창의력을 어필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듣는 이는 불편하다. “저는 동료가 필요한 것을 미리 고민하여 준비할 만큼 협동성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을, “저는 잘 숙성된 와인의 깊은 향기를 가진 지원자입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게 대체 뭔 소리래?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른다. 면접은 스무고개도, 문학작품도 아니다. 간결하고 담백하게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앞 뒤 연결에서 실수가 잘 발생한다는 것이다. 외워서 이야기할 경우, 긴장 탓에 말했어야 할 문장을 말하지 않거나 미리 정해둔 어휘가 기억나지 않아 말을 버벅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에 이야기했던 첫 문장을 그대로 말한다. 만약 자기소개를 외우지 않았다면 말의 유연성이 살아난다. 실수한 부분이 있어도 “보충해서 설명하자면…”이라는 식으로 내용의 끊김 없이 부분 수정이 가능하다. 이런 부분에서 평가자는 지원자의 심리적 여유를 읽는다. 그리고 심리적 여유 뒤의 자신감까지도 말이다.
자신의 지원 직무와
관련된 내용을 넣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을 더하자면, 자기소개 내용을 선정할 때는 지원 직무와 연관된 내용을 선정하는 것이 좋다. 면접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두 대상이 만나 첫인사를 하는 것이다. 여유가 있다면 능청맞게 “오늘은 날씨가 참 좋습니다.”처럼 시작해도 좋겠지만, 면접은 제한된 시간 안에 나를 최대한 많이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지원자가 먼저 열어주는 것이 면접 진행에 전반적으로 도움이 된다. “저는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입니다.”라는 내용과 이런 성향을 보여줄 수 있는 간단한 경험이나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어서 “제가 지원한 업무는 이런 특징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주의를 환기시킨 후 “제가 가진 성향이 이런 특성을 가진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믿습니다.”라는 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자기소개를 접하고 나면 지원자가 말했던 그 성향, 그 경험, 그리고 직무에 대한 파악 정도와 실제로 하고 싶어 하는 직무에 대한 깊이에 대해 질문할 거리가 상당히 많이 생기곤 했다. 그만큼 지원자는 면접관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할 기회가 많이 생기게 된다. 면접도 매끄럽고, 지원자와 면접관 모두 만족할 만큼 면접 시간이 효율적이 되는 것이다.
나를 소개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치장은 필요 없다.
잊지 말자. 나를 소개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치장은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충분히 멋진 사람이라고,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자. 그리고 소개팅에서 상대에게 말하듯 나를 소개하자. 그 상대가 당신의 소중한 커리어에 첫 애인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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