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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ul 09. 2020

아빠는 가끔 말씀하셨다

서툰 남편의 자서전 D+580



아빠는 가끔 말씀하셨다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면

소주 한 잔의 단맛도 알게 된다고


그런데 인생의 쓴 맛을

뼈져리게 느끼는 요즘에도

나는 소주가 참 쓰다

반대로 아빠가 달콤하다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쓰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은 정말이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쓴맛이었다


아아 

그것이 생에 처음으로 나에게

온전한 한 잔이 할당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첫 맛은 역겨웠고

두 번째는 토할 뻔 했다

토하느니 버리자 생각해서

세 모금을 마시기 전에 그냥 버렸다



약이라고 하면

몸에 좋은 맛으로라도 먹지

이건 몸에 해로운 게 분명한데

왜 먹는 걸까?


하지만 인간은 말이지

정말 멍청하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그 다음 주에도

한 잔을 사 마시다 버렸고

그 다음주에도 한 잔을 버렸다


그 반복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그 쓴 것을 하루에 몇 잔을 마셔버린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열에 여섯은 겪는 문제라고 하니,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뭔가 하나 부족하게 만드신 게 분명하다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품은 독성을

적당히 희석해서

꾸준히 주입하는 꼴이라니

과학적으로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한 잔을 시킨다



아아 한 잔 주세요

아니요 뜨겁게 말고 차갑게요

아아잖아요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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