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이렇게 비싼 비옷을 사게 될 줄은 몰랐지.
한국에서는 내 평생 우비를 입었던 일은 아마도 중학생 때 수련회에서 산행 중 예기치 못한 비를 만나 선생님이 나눠 준 얇디얇은 비닐로 만들어진, 그때 가격으로 500원이었나 1000원의 저렴한 우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한국은 시원하게 몰아치는 비가 주로 내렸기에 언제나 우산을 쓰고 다녔고, 나 대학생 때쯤 헌터가 유행하면서 장화가 대중화되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비가 많이 내리면 운동화 속 양말까지 젖는 건 또 금세라 장화의 필요성은 내 인정한다만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우비의 필요성은 크게 느끼지 못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수련회 때의 기억 때문인지 우비 하면 그 얇고 싼 일회용 우비가 생각나지 뭐 다른 우비의 옵션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네덜란드에 이주하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흐려도 우비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우비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연령층이 실생활복으로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내 머릿속의 쉽게 찢어지던 애물단지 우비가 아닌 정말 제대로 된 우비. 왜 다들 저렇게 우비가 다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부슬비에 '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여기 네덜란드는 다들 되도록이면 자전거로 모든 곳을 가기에 더더욱 우비의 대중화가 쉽게 이해가 됐다. 그. 러. 나! 주로 내리는 비가 부슬비였기에... 이게 참 맞으려면 맞고 다닐 수 있는 비 이기에 여기 사람들이 주로 입는 100유로를 넘는 우비를 선뜻 사게 되진 않았다. 또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아예 자전거를 타지 않았으니 더더욱. 하지만, 작년 12월 강아지가 생기고, 가끔 비 오는 날에 턱에 우산을 괴고 한 손에 리드 줄을 잡고 한 손으로 강아지 똥을 주우며 '아 우비를 사야겠다' 하고 결심하게 되었다.
위에 언급했듯, 보통 여기 사람들이 많이 입는 비옷은 100-150유로 사이. (물론 더 저렴한 것도 있다.)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는 아마도 Rains라는 덴마크 브랜드이다. 암스테르담 시내 내에서 매장도 찾을 수 있고 비옷 하면 다들 이 브랜드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ARKET에서도 비옷을 들여놨고(Tretorn이라는 스웨덴 브랜드) Bever 나 ASOS, American Today 등 많은 브랜드에서 비옷을 만드는 것 같다. 비옷을 사기 전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1. 기장 - 무조건 무릎 밑으로 내려올 것.
자전거를 탈 때 조금이라도 허벅지를 보호하기 위해.
2. 모자에 캡이 달려 있을 것.
비가 오면 빗물이 눈으로 흘러 눈이 너무 따가워 자전거를 멈췄던 적이 왕왕 있었기에.
3. 주머니 있을 것.
뭐든 주머니가 있는 게 편하니까.
생각보다 많은 브랜드에서 모자 캡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기장도 살짝 무릎 위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중 친구가 입고 있는 멋진 비옷을 보고는 그 브랜드에서 구매를 바로 결정해버렸다. MAIUM이라는 네덜란드 브랜드이고 암스테르담에서 같이 자전거를 타며 자란 두 친구, 나쁜 날씨 전문가가 만든 브랜드라고 나와있는 것부터 재치 있고 좋았는데 심지어 재활용 페트병 소재를 쓰고 지속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며, 비옷 양 옆에 지퍼가 있어 그 지퍼를 열면 비옷을 판초 형식으로도 만들 수 있어 비 오는 날 자전거 탈 때 더욱 실용적이기까지! 박수 세 번 짝짝짝.
아무튼 그리하여, 드디어 우비를 사게 됐다는 그 말을 이렇게 길게 늘어놓았다. 이렇게 까지 리뷰어처럼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네.
먹구름 비 예보 가득한 암스테르담 일기예보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총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