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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oon Jul 27. 2021

왜 집결지를 기록하는가

성매매 집결지 아카이브의 가치에 대하여

집결지의 역사는 함께 공유해야 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억


‘성매매 업소 집결지’(이하 집결지)는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여 여성을 성적,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어온 공간으로, 주로 19세기 이후 근대화된 도시지역에 특정한 밀집지역을 이루며 존재해왔다. 집결지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공창제 公娼制* 인 유곽 遊郭의 이식으로 시작되어 미군정, 한국전쟁, 산업화 등을 거치며 한국사회 전역으로 확대되었던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이 패망한 후 미군정이 공창제 폐지를 공포한 이래로 현재까지 한국사회에서 성매매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그러나 집결지는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격리된 집결형태가 관리하기 용이하다고 판단한 근대 국가에 의해 일상생활 공간과는 분리되면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금기시된 성매매 공간으로 존재해왔다. 


전주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 기억의 공간 


전국의 대표적인 집결지들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다가 2000년대 이후 성매매방지법의 영향과 성산업 구조의 개편으로 점차 쇠퇴해갔다. 쇠락한 집결지는 대부분 도심 외곽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집결지들이 재개발 혹은 주거환경 개선지역에 포함되자 그동안 집결지 공간을 은폐해주던 물리적·사회적 기제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공식적인 혐오공간(집결지)이 대중 앞에 가시화되자 도시공간 정비를 위해 집결지를 없애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2020년 인천 옐로우하우스 기록 사진 전시회 / 2019년 목포 선창집결지 기록사진 전시회


인천의 학인동 ‘끽동’(2007년 폐쇄), 대전 유천동 집결지(2008년 폐쇄), 서울의 용산역 앞 집결지(2010년 폐쇄), 부산 범정동 300번지(2014년 폐쇄) 등 실제 201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집결지 폐쇄는 구도심 개발을 주도한 부동산 자본과 지역 이미지 쇄신이라는 지자체의 정책 방향이 맞물려서 만들어낸 결과들이다. 대부분 공영개발이 아닌 부동산 가치 상승을 노린 민간투자개발로 추진된 집결지 폐쇄는 집결지 공간의 비가시성을 탈역사성으로 전치시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성매매 업소 집결지의 역사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나 기억을 남기지 않고, 마치 집결지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상업적인 도시공간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용산역 집결지 사진아카이브 <판도라 사진프로젝트>


2000년대 초반부터 집결지에서 희생된 여성의 고통과 아픔이 사회에 알려지고 성매매 피해여성의 인권침해와 불법행위들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성매매 피해여성지원과 성구매 수요 차단을 위한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었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은 집결지가 더 이상 여성인권 침해와 불법행위 등이 묵인되는 공간이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민관거버넌스가 작동되는 현장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집결지의 역사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재개발’이 ‘도시재생’ 정책으로 전환된 시기부터이다. 도심에 존재하는 집결지를 단순히 없애버리는 것보다 집결지의 역사성에 기반한 새로운 재생방안에 대한 논의가 다방면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도시재생의 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곧 사라질 집결지의 역사와 여성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다. 성매매 집결지의 아픈 역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 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억’ 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집결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공창제(公娼制)란 일본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이른바 제국 일본의 영역 안에서 실시하였던 성매매 관리제도이다. 포주가 여성의 성을 팔고 남성이 성을 사는 것을 국가가 합법 또는 묵인하고, 등록 및 강제 성병 검진 제도를 통해 법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공창제는 애초에는 가시자시키[貸座敷, 대좌부]에 머물며 성 판매 허가증을 받은 창기(娼妓)만을 ‘공창(公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 등의 일본인 거류 지역에서 일본 정부가 작부(酌婦)나 예기(藝妓)의 성 판매를 묵인하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창기뿐만 아니라 작부와 예기도 공창으로 이해되었다.


공창제를 실시하면서 제국주의 일본은 그 본국과 조계지·식민지·점령지 등지에서 창기의 성 판매를 법적으로 허가하고, 작부 및 예기의 성 판매를 묵인하였다. 또한 이들에 대한 성병 검진을 강제로 시행하고, 성매매를 관리하였다. 이 때문에 공창제는 성매매 '묵인-관리 제도' 혹은 '묵허(默許) 제도'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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