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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oon Mar 12. 2024

베트남, 일주일에 한 도시 [하노이 편]

처음 만난 베트남 시티, 하노이  

 하노이는 진하고 밀도 높은 도시이다    

하노이는 나의 첫 번째 베트남 여행지이다. 결혼이주여성과 함께 일하던 시절, 나의 직장동료 중 대부분은 베트남 여성이었고 퍼보(소고기 쌀국수)와 333 맥주를 파는 홍대 맛집을 자주 찾던 때였다. 베트남은 사람들과 음식으로 자연스럽게 익숙해졌지만, 밤낮으로 일하던 때라 여행 가기는 쉽지 않았다. 한참 뒤 퇴사를 하고 나서야 베트남 여행을 하게 되었다. 처음 만난 베트남 시티 하노이는 오토바이의 물결과 경적소리, 회칠이 벗겨진 낡은 벽들,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쌀국수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한, 밀도 높은 도시였다.


담대하게, 하노이에서 길 건너기 


처음 하노이에서 나를 당혹하게 했던 것은 길 건너기였다. 태국을 자주 여행했기에 오토바이는 꽤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노이의 길거리는 차원이 달랐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앞, 뒤, 좌, 우 사방팔방에서 돌진해 왔고 찢어질 듯한 경적소리와 매캐한 매연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전하게 길을 건널만한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다. 

길 건너 목적지로 가려면 큰 숨을 내쉬는 담대함이 필요했다. 무서워도 뛰지 않고 혼돈의 카오스 사이를 걷기 시작하자, 돌진하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나를 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도로 위의 오토바이들은 나름의 흐름을 타고 한꺼번에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 같았고, 그 흐름이 보이니 유유히 오토바이 흐름 사이를 유영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하노이 거리에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많이 생겼지만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역시 여행자의 담대함이 필요하다. 


<하노이의 교통체계>  출처: 하노이에 살다, 2018년 12월, 하노이 문화창작집단 잇다


하노이 골목에서 인생 쌀국수를 맛보다 


하노이는 베트남 쌀국수 '퍼'phở 의 원조 도시이다. 북부 하노이 음식인 '퍼'가 베트남 남부와 세계 전역으로 확산된 계기는 베트남 전쟁 시기, 북부출신 피난민들이 남부와 세계 각지에서 쌀국수를 팔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노이식 퍼는 소고기와 닭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하고 파와 고추, 후추, 식초, 라임만 넣어 먹는다. 

베트남 여행에서 1일 1 쌀국수는 기본, 호텔 조식에는 항상 쌀국수가 나온다 

하노이 첫 여행에서 묵었던 곳은 구가시지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호텔로 들어가려면 좁은 골목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데, 호텔 출입문 맞은편에는 저녁때만 문을 여는 작은 쌀국수 식당이 있었다. 식당 주변에는 퇴근길에 들러 쌀국수 한 그릇을 먹고 가는 사람들과 저녁거리로 쌀국수를 사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매일 호텔 조식으로 나오는 쌀국수도 충분히 감동스러웠지만 지나갈 때마다 커다란 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육수 냄새는 너무 유혹적이었다. 종일 습하고 더운 날씨에 지쳐 숙소로 돌아오던 날,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그 집 쌀국수를 먹었다. 하노이식 소고기 쌀국수였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국물 맛은 깜짝놀랄 정도였다. 한번 맛본 이후로 하노이를 떠날 때까지 매일 먹었고 배불러도 두 그릇씩 먹기도 했다. 베트남 전역을 여행하면서 지역별로 유명한 쌀국수를 많이 먹어봤지만, 그래도 인생 쌀국수는 하노이 골목길 식당의 그 쌀국수다. 


하노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뮤지엄


유럽이 아니라도 어느 도시를 가든 국립 혹은 시립 뮤지엄이 있기 마련이다. 하노이의 대표적인 박물관은 호찌민의 삶과 투쟁과정을 보여주는 '호찌민 박물관 Bảo tàng Hồ Chí Minh'과 베트남 여성들의 삶과 역사, 문화적 유산을 보여주는 '베트남 여성박물관 Bảo tàng Phụ nữ Việt Nam'이다. 베트남 여성연합에 의해 설립되어 1995년에 개관한 베트남 여성박물관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베트남 여성사에 대한 자부심과 여성 삶에 대한 이해가 돋보이는 아카이브 전시관이다. 젠더와 성평등에 특화된 박물관이라니 요즘 같은 상황에선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지난 1월 하노이 '베트남 여성박물관' 1층 로비에는 베트남 소수민족 여성 사진이 전시되어있었다 

이번 하노이 여행에서는 '베트남 국립 미술관 Vietnam National Museum of Fine Arts' 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 식민시대 관공서였던 미술관은 시설은 좀 낙후되었지만,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전시관을 채우고 있는 컬렉션은 생각보다 훨씬 많고 볼만했다. 고대 미술품부터 20세기 리얼리즘과 추상 작품까지 베트남 미술의 연대기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어 현대 미술관이라기보다는 '국립 미술관'의 면모를 갖춘 곳이다. 사실 한 번에 컬렉션들을 다 보기는 힘들고, 날씨와 기분에 따라 그림이 달리 보이니 N차 관람은 필수인 듯. 느긋한 도시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여성 박물관과 국립 미술관 모두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가 가능해서 시간을 들여 찬찬히 둘러보기 더 좋아졌다. 


베트남 국립 미술관의 대표작인 In the Garden(1939) , Nguyen Gia Tri, 베트남 전통기법인 래커(옻칠)페인팅 작품  




하노이, 천년의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여행 


하노이 Hà Nội는 현재 베트남의 수도이다. 정확하게는 1945년부터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의 수도였고, 1976년 남북베트남이 통일되면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1887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식민시대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중심이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1010년부터 베트남의 역대 왕조는 하노이를 수도로 삼았다. 천년 전부터 고대왕국의 수도였으며, 프랑스 식민통치와 독립 전쟁을 고스란히 겪어낸 하노이의 시간들은 낡은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천년의 역사와 베트남의 오늘이 공존하고 있는 하노이는 여전히 여행자에게 밀도 높은 매력으로 다가오는 도시이다. 


여행여락의 5월 하노이 여행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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