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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y 02. 2016

가로등 지기

어린왕자 필사. 14번째 이야기.

다섯 번째 별은 무척 흥미로운 별이었다.

그것은 모든 별들 중에서 제일 작은 별이어서 그저 가로등 하나와 점등인 한 사람만이 서 있을 자리가 있을 뿐이었다. 하늘 한구석, 집도 없고 사람도 없는 별에 가로등과 점등인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어린 왕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임금님이나 허영쟁이나 장사꾼이나 술꾼보다는 덜 어리석다. 적어도 그가 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니까. 가로등을 켤 때는 별 하나를, 꽃 한 송이를 더 태어나게 하는 것이나 같은 거야. 그가 가로등을 끌때면 그 꽃이나 별들을 잠들게 하는 거고. 이건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아름다우니까 정말로 이로운거야.'

그 별에 발을 들여놓으며 어린 왕자는 점등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 아저씨. 왜 지금 막 가로등을 껏어?"

"안녕. 그건 명령이야."

"명령이 뭔데?"
"내 가로등을 끄는 거지. 잘 자."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가로등을 켰다.

"그런데 왜 불을 다시 켰어?"

"명령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하고 어쩌고 할 것이 도무지 없어. 명령은 명령이니까. 잘 자."

그는 그의 가로등을 껐다. 그런 다음 붉은 바둑판 무늬의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은 참 고된 일이란다. 전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침에는 끄고 저녁에는 켜곤 했었지.

그리고 나머지 낮 동안은 쉴 수 있었고. 나머지 밤 시간은 잘 수도 있었으니까......"

"그럼 그 후 명령이 바뀌었어?"

"명령이 바뀌지 않았으니까 큰일이란다! 별은 해마다 자꾸자꾸 더 빨리 도는데 명령은 그대로 있단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지금은 별이 1분에 한 번씩 켜고 끄고 해야 하니까!"

"정말 이상한데! 아저씨네 별에서는 하루가 1분이라니!"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어.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벌써 한 달이나 되니까."

"한 달?"

"그래. 30분이니까 30일이지! 잘 자."

그리고 그는 다시 가로등을 켰다.

어린 왕자는 명령에 이렇게까지 충실한 이 점등인이 좋아졌다.

그는 전에 의자를 끌어당겨 해를 지게 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이거 봐,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방법을 알아......"

"그야 쉬고 싶다뿐이겠니."

점등인이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게으름 부리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어린 왕자가 말을 계속했다.

"아저씨 별은 너무 작아서 세 발짝이면 한 바퀴를 돌 수가 있어. 그러니까 언제든지 해를 볼 수 있게 천천히 걷기만 하면 그만이야. 아저씨가 쉬고 싶을 떄는 걸으면 돼...... 그러면 아저씨의 소원대로 해가 얼마든지 길어질 수가 있어."

"그건 내게 별로 도움이 안 돼.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은 잠을 자는 거니까."

"그거 안됐는데."

"안됐고말고, 잘 자."

그러고 나서 점등인은 가로등을 껐다.

어린 왕자는 다시 길을 떠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 임금님이나 허영쟁이나 술꾼이나 장사꾼 같은 사람들 모두에게 멸시를 받을 거야. 그러나 우스꽝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사람은 이 사람 하나뿐이야. 그건 아마 자기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보실피니까 그렇겠지.'

그는 섭섭해서 한숨을 내쉬며 또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친구를 삼을 만한 사람은 그 사람 하나뿐이었는데, 그렇지만 그 별은 너무 작아서 둘이 있을 자리가

없었어....'

어린 왕자가 차마 고백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24시간 동안에 해가 1천 4백 40번이나 지는 것 때문에 이 축복받은 별을 못잊어한다는 사실이다.



"아저씨 별은 너무 작아서 세 발짝이면 한 바퀴를 돌 수가 있어. 그러니까 언제든지 해를 볼 수 있게 천천히 걷기만 하면 그만이야.
아저씨가 쉬고 싶을 떄는 걸으면 돼......
그러면 아저씨의 소원대로 해가 얼마든지 길어질 수가 있어."




어린왕자의 시간들에는

24시간도 1천 4백 40번이라는

축복을 주는 별들이 존재한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 역시 누구나 똑같이.

하루에 86400초라는 시간을 부여받게 된다.

그 시간은 내가 어떤일을 하느냐와는 무관한채

묵묵히 가로등 지기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하나씩 소멸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만의 작은 소행성에서

작은 등불지기가 되어

매일.매일 똑같은 간격의 시간으로 나를 채워가고.


내 작은 불빛은.

단순히 소멸되어 사라지는 빛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아픔을 달래주는 따스한 햇살처럼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추억의 별빛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추억속에 오래토록  나는 살아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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