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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Nov 24. 2016

곧, 눈이 올것만 같아요.

'이렇게나 차가운 계절에도 당신은 여행을 하고 있는 건가요?

'삿포로의 여인 겉표지'



요즘 계속해서 잡게되는 장편소설 중에 한 권입니다.


'삿포로의 여인'

저자: 이순원


책표지에 이런 내용의 글이 인상깊습니다.



'이렇게나 차가운 계절에도 당신은 여행을 하고 있는 건가요?

당신이 여행을 떠난 것은 아직 눈이 남아 있을 때였어요.'

이 노래처럼 겨울이 가고 새봄이 되어 이 나무가

새하얀 꽃을 피울 때쯤 한 번 더 우리 만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냥 내 마음에 내린 눈은 녹지 않아요.


마가목을 주제로 했던 일본노래 '나나카마도' 에 가사입니다.


70년대 대관령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가목을 주인공 연희가 일본으로 갔던 그 거리에 가득히 심어져 있었던 것은 단지 우연이었을까요?

이번에는 주호가 삿포로로 떠나게 되는날 도로의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마가목을 본 순간 그 붉은 열매가 더욱 고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걸 손안의 탄력으로 느끼며 대관령에서 자란 아이가 말 하나 글 하나 배우지 않은 채 이곳에 와 살아도 이 나무 때문에 외롭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익숙한 눈이 내리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마지막은 세드앤딩으로 끝나게 되어 차가운 이 겨울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옵니다.


첫 페이지를 열고 읽어 내려 가다보면

주인공 주호와 연희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제 열 여섯이 된 주호는 이모부에게 가기 위해 횡계 터미널에 들러 버스를 기다리게 되고,

술을 먹고 횡패를 부리는 한 아저씨 (유강표)를 보게 됩니다. 그 곁에 일곱살 남짓의 외모가 이국적인 여자아이가 풍선을 들고 술취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만치 문 밖에서 지켜보는 엄마로 보이는 이국적 모습의 여자 역시 말없이 술취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릴적 어린 주호의 인상깊게 남아있던 기억.

그것이 바로 주호와 연희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어느덧

대학교 3학년이었던 주호는 이모부가 운영하는 강원도 대관령에 구판장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학자금을 위해 돈을 융통해 볼 생각이었지만, 이모부의 권유로 포목점에서 2년동안 일을 하게 됩니다.

연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한채 포목점 옆에 있는 '미라노 패션' 라는 이름의 수예점에서 수선 일을 합니다.


어느날 바짓단을 손바느질로 줄이려는 주호의 모습에 이모는 미라노로 데리고 가 수선을 하면서 이국적인 아이 연희를 대면하게 됩니다.

주호는 구판장에서 틈틈히 공부를 하며, 늦게까지 불이 켜져있던 미라노의 여자아이가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촌 여동생 미옥이가 미라노에 자주 놀러가면서 연희가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주호는 연희에게 책 두권(데미안,세계명언 2000집)과 '마음산책' 쓰는법을 알려줍니다.

 '마음산책' 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이 책은 오전에 명언 한가지를 적어보고 저녁에는 내가 했던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말해 줍니다.

연희는 늘 '연희야' 라고 낮지만 부드러운 주호의 따듯한 말을 들으며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구판장이 지물포 도배,장판 일까지 하게되면서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주호가 구판장일을 하면서 알게되는 '길 아저씨'

조수한명 없이 혼자 장판과 도배를 하는 길(이름:조은길) 아저씨는 주호보다 열 여섯살이나 많은 주호 아저씨는 일주일에 3-4일 일하면 어디론가 여행을 다는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인문, 천문, 지리, 동식물, 스포츠, 레저를 포함해 이 세상에서 모르는게 없을 것 같고, 어디 한 군데 붙들려 있지 않은 강릉과 보헤미안 같은 존재였습니다.


길 아저씨는 대학생 주호를 장난삼아 '지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주호는 그런 길 아저씨가 싫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길 아저씨와 주호, 연희가 함께 바다로 연어 플라이 낚시를 가게 됩니다.

처음으로 바다를 보게 되는 연희는 마냥 행복해 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잡게 되는 길 아저씨의 70센티의 어마어마한 연어를 잡게되어 식당으로 가서 멋진 저녁을 함께 합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연희는 차창밖 바다를 바라보며 일본으로 간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연어 낚시를 다녀온 10월 중순 주호는 연희와 함께 마가목 열매를 따러 소풍처럼 황병산을 다녀옵니다.

마가목은 오뉴월 흰 꽃이 소복하게 피어 가을에 찔레처럼 빨간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마가목이란 이름 역시 봄에 새싹이 돋을 때마다 잎이 말의 이빨처럼 힘차게 솟아난다고 해서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연희와 주호의 2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흘러흘러 어느덧 주호가 서울로 올라가게 되는 마지막날,

연희와 함께 마지막 바다를 보러 다녀온 후 쓸쓸하게 끝나게 됩니다.

헤어지는 것에 두렵고 슬퍼했던 연희를 안아주지만, 서울로 돌아가 나머지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주호의 의지대로 아무일 없이  두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주호는 신문사 기자로서의 자기 임무를 해내가고 있을 무렵,  연희의 친 오빠 '유명한'이 찾아오게 됩니다.

연희에게 대관령 스키 선수였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찾아주고 싶다며 기자인 주호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실력은 있었지만, 그 시절 가방끈 짧고 운이 없던 노르딕 스키 선수 였던 연희의 아버지 (유강표) 와 어머니 (시라케 레이) 가 만나게 된 삿포로 프레 올림픽에서의 인연.

유강표는 국가대표 선수로 시라케 레이는 올림픽 봉사자로 둘은 그렇게 인연이 되어 한국으로 와 연희 오빠 '유명한'과 연희를 얻게 됩니다.

스키선수로서 잘 풀리지 못했던 유강표는 불행히도 깊은 절망감으로 술로 폭군이 되어갔고, 이를 못 견딘 연희 어머니는 일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후에 만나게 된 주호와 함께 2년간의 대관령 생활을 마치고 주호가 서울로 돌아간 6개월후에 연희도 어머니가 계신 일본으로 떠납니다.


자료를 찾아가며 2년간의 대관령 기억들을 찾아가면서 잊고있던 연희의 기억들이 떠올라 주호는 연호가 그리워지게 되며 연희와 연락이 닿아 지금은 편지가 아닌 이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합니다.

주호가 서울로 올라갔던 그 날 이후 주호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편지 사실을 알게 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뒤늦게 조금씩 알게되는 연희를 향했던 마음을 연민과 그리움.


연희 편지를 통해 조금씩 그 어릴적 마음들을 알아가고 있을 무렵, 답장을 보낸 편지가 수신확인이 안되고 편지함에 일주일동안 잠들어 있고, 5일이 지난 다음날 연희오빠 '유명한' 이  주호를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하며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유명한'은 술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연희를 어떻게 생각했냐는 거듭된 질문 속에 어두운 낯 아래로 연희가 몇달전부터 췌장이 안좋아 병원에 입원했었던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동안의 주호와 나눴던 편지 이야기들은 입원을 거부하며 집으로 돌아가 썼던 편지들이었습니다.

주호의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통화조차도 할 수 없이 병이 악화된 연희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동안 편지 곳곳에 있던 앞으로 하고 싶다는 말들이 숨은 그림처럼 배더 있다는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지금 누구와 함께 있냐는 말에

'어머니하고 남편이 있습니다.' 라는 말이 독자 입장에서 안타깝게 들려오기도 합니다.

'유명한'을 만나고 온 며칠후에 격한 마음에 두통의 편지를 연희에게 보내어 봤지만 역시 편지함에 그대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올때쯤 다른 설명없이 '유명한'에게 우편물이 하나 옵니다.

작은 상자안에는 손으로 바느질을 해 만든 동전주머니가 들어있었고,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기념주화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주화를 싸고있던 종이에는


사랑해요
주호 오빠

그 시절 연희의 글씨였다.

어머니가 일본으로 돌아가기전 오빠와 연희에게 똑같이 쥐어주던 동전.

언젠가 주호에게 주고 싶다며 건네던 그 동전을 주호는 이렇게 소중한 것은 '네가 나 대신 잘 보관해줘' 하며 연희 손바닥에 접어말아 다시 되돌려 주었던 그 동전이었다.

그는 가만히 손을 오므려 어린 연인이 보낸 마지막 선물을 꼭 쥐어들었다.



그래......
나도 너를 사랑한다.

지금이 아니라, 그녀가 열일곱살이었고 내가 스물네 살이었던 그 시절의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는 비로소 자신 역시 순정했던 그 시간 한 작은 아이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았다.





비로서 이렇게 내게 긴 여운을 남기며 나는 마지막 장을 덮었다.

쓸쓸하고 덧없이 외롭기만 했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보는 듯 나 역시 그 시대 그 모습으로 돌아가 주변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어 그 어릴적 모습을 되짚어보며, 어쩌면 철없이 놓쳐 버렸을지도 모를 소중한 인연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어쩌면 주호, 연희 같았던, 어쩌면 '길 아저씨' 같았던 그런 사람들.

세상 일에 힘들어 한치 앞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반딧불처럼 그 시절의 따듯한 그 마음들이 떠올라 문득 올 겨울 나도 대관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마가목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가목에서 빨간 열매를 보고 얼마후면 눈이 내린다는 이 책에 글귀처럼 오늘처럼 영하로 떨어진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도 혹시나 눈이 올까 싶어 하늘쪽을 바라보게 된다.

복잡한 손익계산을 떠나 우리가 잠시 어릴적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아무걱정없이 미소지었던 그 어린날의 내 모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모처럼 따듯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이 시간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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