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빈 Jan 24. 2022

일 중독자의 퇴사

회사에서의 성취로만 삶을 채웠던 사람은 어디로 도망갈까

2015년에 입사해 7년을 일했다. 첫 직장이었고, 그만큼 모든 것을 쏟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워낙 일 욕심이 넘치고 (불행하게도) 명예욕도 너무 많은 인간이라,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고 이를 갈며 살았다. 조직 내에서 더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팀을 두 번 옮겼다. 콘텐츠 제작자로서 인정받는 데 한계를 느끼고 직무도 마케터로 바꿨다. 모든 사고 회로가 ‘내가 해낼 수 있는가? 해내야 한다’로 통일된 7년이었다. 당연히 몸담은 회사에서의 일이 일상의 전부가 되었다. 부서질 듯 이를 갈며 살다 보면 마음이 힘든지도 모르게 된다. 연약한 마음을 장애물 취급하면서. 정말 불행하게도 나는 일과 자아, 일에서의 성취와 내 인생의 행복을 분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워라벨’을 강조하며 일은 일이고, 나는 나로 분리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리 고민해도 알 수 없었다. 일하는 내가 가장 소중한데? 일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야 삶의 의지가 솟는데. 일 말고 재미있는 게 분명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일하는 나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내가 조금 망가졌다고 느낀 건 작년 말부터였다. 출퇴근길은 물론이고 셔터를 내려야 할 순간에도 일 생각을 했다. 생각하려고 한 건 아닌데, 그냥 일이라는 존재가 불쑥 나타나 뇌를 지배했다. 함께 사는 S에게 지겹도록 일 얘기를 하고, 말이 잘 통하는 회사 친구들을 만나서 일 얘기를 하고, 가족을 만나도 요즘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말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날이면 하루가 폭삭 무너졌다. 마음이 지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잡을 게 없었다. 특히 고양이 달리가 떠난 뒤에는 마음의 안식을 느낄 존재가 없었다. 달리를 볼 때면 유일하게 일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무너진 하루의 밤에는 술을 진탕 먹고 울었다. 하소연하면서, 자책하면서, 나를 미워하면서. 그렇게 쏟아내는 행위로 나를 진정시키고 다음 날 출근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서운함’이 시작됐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얘기할까, 팀장님은 내 말에 왜 저런 반응을 보일까?’ 정말 별것도 아닌 것들이 서운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알아주지 않는, 내 말을 경청해주지 않는 주변인에게로 서운함이 확장됐다. ‘방금 내가 힘들다고 말한 게 M은 공감이 되지않는 걸까? S는 왜 내 입장에서 말해주지 않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이들에게 미친 듯이 서운했다.  


모두에게 서운해지자 결국 내 삶에 서운해졌고, 내가 망가졌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일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득한 습관과 사고방식을 단칼에 잘라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미 병든 식물의 가지를 과감히 잘라내듯.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같이 사는 S에게 퇴사 후 계획을 몇 번이고 얘기하며 상황을 정당화했다. 한 달 동안 퇴사 면담을 진행하면서 ‘나가서 잘 안 되면 어쩌지, 그냥 더 다녀볼까?’ 흔들리기도 했지만, 고장 난 채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나를 외면할 수 없었다.  


우는 나를 달래줄 다른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일과 나를 분리할 수 없으니, 일하면서 더 행복해지고 싶었다. 내 세계의 전부였던 지금 회사를 벗어나 원점으로 돌아갔다. ‘어떤 일을 할 때 제일 많이 웃었지?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하지? 일하면서 어떤 게 가장 아쉽고 속상했지?’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늘 마음 한켠에 있던 말들이었으니까. 내내 속으로 생각했던 저런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의 ‘저런 곳’, 저런 일을 해보고 싶다의 ‘저런 일’을 목표로 공부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짐처럼 처박아놨던 글쓰기도 꺼냈다. 언제나 글을 잘 쓰고 싶었지만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한 걸 들킬까 절박하지 않은 척했다. 좋아하는 걸 욕심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게 아파서 숨겼다. 그런데 지금 꺼내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고 더 크게 곪을 것 같았다.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자존심이 상할까 봐 구겨 넣었던 모든 것을 꺼냈다. 꺼낼 게 생각보다 많아 당황스러웠다. 누군가는 내게 ‘지금 퇴사하는 건 도망가는 것밖에 안 된다’라고 말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안정적인 월급과 정해진 성공의 파이로 도망쳤던 나를 이제야 마주하는 거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무언가를 기르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