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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Dec 22. 2023

공개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규직과 단기계약직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00님 공개사과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얼마 전 성수기 때문에 모집한 생산직 단기계약직 6명이 입사와 동시에 퇴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몇명은 연락이 두절되었고, 몇명은 나에게 울먹거리며 현장의 텃세와 폭언을 낱낱히 밝혔다. 


"바빠죽겠는데 초보자를 왜 여기에 뒀어?"


들었던 이야기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매년 성수기 대응을 위한 단기계약직 채용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기존 사원과 신규 입사자의 갈등이 일어났다. 왜 우리에게만 뭐라고 하느냐는 정규직 분들의 목소리와, 이렇게 대하면 인사팀에 신고하겠다는 단기계약직 사이에서 나는 적정선을 찾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고 그 줄타기에 지친 나는 현장에 있는 모든 정규직 분들에게 문자를 보내기에 이른다.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도 당사를 위해 열심히... 최근 성수기 대응을 위한 단기계약직 채용이 이뤄지고... 현장의 편의를 위해 입사일도 일주일에 두번을 줄이고...텃세와 폭언으로 퇴사하는 일이 잦아지고..'


이렇게 어찌보면 평범하게 보낸 문자에서 이 문장이 정규직의 어떤 심기를 건드렸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가 반복될 시 단기계약직 채용을 중단하겠습니다.'


문자를 보낸 당시에는 조금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사팀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동료가 현장직과의 회식 후 나에게 건넨 이야기는 당황스러웠다. '너 무슨 문자를 보냈길래 이렇게 현장분들이 화가 나있어?'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그 분에게 본인들이 받은 문자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냐며 따져물었다고 한다. 당연히 동료는 본인이 보낸게 아니니 당황했고 수신된 번호를 보니 내 사무실 번호였다. 그리고 내가 보낸 문자라고 하자, 이렇게 안봤는데 실망이다, 순둥순둥하게 생겼는데 이제보니 아니었다며 열변을 토하는 와중에 나왔던 말. '공개사과 해야하는 것 아니에요?'


웃긴건,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현장 관리자를 통해 단기계약직 분들에게 상대적으로 투박하게 소통했던 분은 점심시간에 식사하러 바글바글 모여있는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누가 인사팀에 신고했어? 어?' 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하니. 정말 내 문자때문에 화가 난건지, 읽어는 봤는지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나는 공개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부담이 생겼다. 어쨌든 현장분들과 소통하는 일이 많은데 나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준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지 신입사원에게 이 업무를 넘겨주게 되어 마음은 조금 놓이지만 이 사건이 나에게 준 교훈은, 인사에는 정답이 없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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