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지도, 절망하지도 말자.
바빴다기 보단,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더 가깝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입사 후 거의 6년만에 직무가 바뀌었다. '평가,보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몇개월의 인수인계 기간을 거쳤다. 생각보다 빨리 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가 된 내가 처음 맡은 업무는 그 해의 평가를 시스템에 업로드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업로드라고 생각했지만 시스템 자체가 손에 잡히지 않아 다소 생소했고, 일정별로 평가자만 보이게 또는 피평가자만 보이게 시스템을 세팅해야해서 몇 번이나 IT 계열사의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확인받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평가는 그런대로 잘 넘어갔다. 실수해도 바로 클릭 한 번으로 수정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작년에 전 담당자와 같이 진행했던 과장님 한 분이 옆에서 잘 봐주셨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인센티브였다. 전 담당자가 급여 아웃소싱 업체와 단독으로 진행했던 일이라 평가처럼 옆에서 조언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해야 했다. 그리고 확정된 평가를 통해 평가에 따른 배수를 적용하고, 병가/휴직/산재 등 사내 기준에 따라 제외되는 기간을 일일이 추출해서 개인별로 반영해 일할계산 해야했으며 계열사 간 전출/전입 정산 역시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마지막에 재직한 계열사의 평가와 지급율에 따라 인센티브가 지급되고, 계열사마다 지급방식과 지급율, 지급율 산정 방식이 다르니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돈'이 나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대표이사 전결로 품의를 상신하는 부담감, 잘못나가면 사고라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만든 로우파일을 몇 번이고 확인했고, 막히면 타 계열사 담당자에게 물어보며 그런대로 잘 넘어가는 듯 했다. 지급 전날, 품의 결재를 받고 전표까지 모두 완료했으며 구성원들이 볼 수 있게 본인의 인센티브 지급액과 기준일수를 업로드했다. 마지막으로 자금 담당자에게 지급 요청서까지 송부하며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던 그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 인센티브가 잘못된 것 같아요."
'잘못 된 것 같아요.'라는 이 단어가 얼마나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난다. 나는 침착하게 되물었다.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을까요?"
"제가 병가를 한 3개월 정도만 썼는데 여기 인센티브 제외기간이 300일이 넘게 적혀있더라구요."
아, 내가 그렇게 확인했던 제외일수 산정 파일이 잘못된 건가?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혹시 몰라 과장님한테도 확인해달라고 보낸 그 제외일수 산정이 잘못되었다니.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잘못봤다, 오해했다고 얘기했으면, 하고 재차 물었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잘못된 것 같다." 였다. 그리고 통화하다보니 이상하긴 했다. 병가는 최대 6개월까지만 쓸 수 있는데 300일이 넘게 제외되었다니. 뭔가 잘못됐어. 나는 일단 확인해본다며 전화를 끊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운전중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퇴근 직전이었던 과장님께 전화했더니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 병가계를 확인해본다며 전화를 끊었다. 잘못되었다는 분의 현장 관리자 분께 전화해서 병가일수가 얼마인지 확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나는 신호에 걸리면 그 즉시 핸드폰을 뒤져 혹시 병가기간을 정리한 파일을 볼 수 있나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의 대답들.
'병가계 찾아보니 일단 2개월 정도인데?'
'현장에 정리된 것 찾아보니 일단 22년 말부터 한달했고 그리고 2달 했고, 300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 뭔가 잘못되었다. 내가 틀렸다. 인정해야했다. 어떡하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