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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Jul 07. 2023

공맹과 함께하는 유교 드라이브

여는 말, 개강하며





 여기 도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1차선, 3차선, 8차선을 넘어 수십 억 차선의 교통대로입니다. 도로는 수많은 차로 붐비고 있습니다. 수십 억대의 자동차가 동시에 주행하면서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꼭 도로에 맞는 교통법규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 최저 속력은 몇 km/h이고, 안전거리는 몇 m 이상을 유지해야하며, 상황에 따라 차선변경, 유턴, 후진 등이 제한된다는 사항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도로 위에서 교통법규가 하루라도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나아가 교통법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자들이 추월을 일삼고, 마음대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아대며, 깜빡이도 안 켠 채로 차선을 넘나든다면 어떨까요? 도로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낮에는 클랙슨(klaxon, 경적)이 천지를 울리고, 밤에는 전후좌우에 하이 빔(high beam, 상향등)이 작렬하는 와중에 수 십, 수 백, 수 천 중 추돌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 교통이 마비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도로와 빗대자면 우리는 도로 위에서 자동차를 몰고 있는 운전자, 혹은 자동차 그 자체입니다. 수십 억 차선 위에 달리는 수십 억대의 자동차처럼, 지구에는 60억이 넘는 사람이 저마다의 삶을 이어나갑니다. 요컨대, 이 많은 사람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함께하기 위해서는 법, 규칙, 윤리와 도덕 같은 사회적 약속이 필요합니다. <공자운전면허학원>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이 약속, 특히 공자와 맹자가 말한 도덕(道徳)입니다. 


 도(道)란 무엇일까요? 큰 도로입니다. 찻길은 차가 다니는 도로이며 차가 다니지 못하는 곳은 찻길이라 일컫지 않습니다. 도는 도로처럼 마땅히 갈 수 있기에 가고, 마땅히 따를 수 있기에 따라야합니다. 도 위 덕(徳)은 사람이 찻길을 다닐 수 있게 하는 차입니다. 모든 자동차에는 차의 동력을 담당하는 엔진이 있습니다. 방향을 틀고 속도를 줄이며 달릴 수 있게 하는 운전대, 브레이크, 휠, 타이어가 있으며, 운전자를 보호하는 차체와 차량을 구분하는 번호판이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는 기름을 넣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도로 위에 자동차가 달릴 수 있듯 사람은 누구나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알며, 부끄러울 줄 알고, 물러설 줄 알며, 거짓말을 싫어하기에 도 위에 바로설 수 있습니다.


 도덕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입니다. 사회를 지키고 서로를 아끼기 위한 약속입니다. 공자와 맹자가 처음 사람을 가르친 이후로 도덕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도덕은 결코 알기 어렵고 몸으로 옮기기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뭇사람은 도덕을 가까이 하면서도 멀리하고 싶어 합니다. 꺼리고 따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도덕이 아닌 것을 도덕이라고 착각하고, 유교가 아닌 것을 유교라고 여기는 까닭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저는 공자와 맹자 시대의 말이 지금 시대와 맞지 않아 뜻을 전달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유교의 시경, 서경, 주역과 같은 고전은 지금으로 따지면 대중가요, 역사교양서, 자기개발서적입니다. 과거에는 시대와 맥락이 통했겠지만, 21세기에 수천 년 전 시집인 시경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기에는 공감이 어렵습니다. 고대역사서인 서경을 통해 사람들이 역사의 감동을 느끼기에는 전설 속 우하상주의 네 시대는 너무 아득합니다. 점치던 책인 주역 자체로 인생의 교훈을 얻기에 64괘와 384효는 풀기 어렵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백년이면 밭이 바다로 변하듯 시간이 흘러서 사회 모습이 완전히 바뀐 탓입니다. 삼년동안 부모님의 장례를 치루는 삼년상과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않은 귀천의식 등 옛 사람이 말하는 사회의 틀, 성리학에서 말하는 예의 삼백과 위의 삼천은 지금과 서로 맞지 않습니다. 


 저는 《시경》, 서경, 주역을 잠시 접어둡니다. 그리고 유교의 원전인 공자와 맹자의 논어, 맹자로 유교와 도덕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공자와 맹자의 도덕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도덕은 알맹이가 중요합니다. 껍데기는 얼마든지 바뀌어도 상관없습니다. 옛 은나라가 주나라로 바뀌고,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어도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던 구성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공자와 맹자의 도덕은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에 의아한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표현보다도 내용을 살핀다면 지금 이 시대에서도 충분히 맞추어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인이 한국인이 되었다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인의예지는 현대에 다른 이름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운전면허학원에서 배워서 운전면허증을 못 따는 사람은 거의, 사실 아예 없습니다. 도덕도 똑같습니다. 핸들을 잡을 손과 페달을 밟을 발만 있으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듯이, 덕을 가진 마음과 도를 따를 몸만 있으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도덕운전면허학원, 유교 드라이브』의 원장은 공자, 부원장은 맹자입니다. 둘 다 일타강사로 당대에 이름을 떨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학생을 잘 가르치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공부를 베울 여러분입니다. 저는 두 사람 밑에서 배운 도덕으로, 여러분이 책을 읽는 잠시 동안 도덕에 대해 설명해줄 보조강사입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의 첫발 딛기를 도울 뿐입니다. 자, 이제 슬슬 강의를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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