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제자에서 자효제로, 세상을 바꾸는 가족애로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11조
1. 원동기 각부의 작동에 이상이 없어야 하며, 주시동장치 및 정지장치는 운전자의 좌석에서 원동기를 시동 또는 정지시킬 수 있는 구조일 것
위정 21,
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子曰 書云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어떤 사람이 공자께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정치를 안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경에 효에 대해 ‘오직 효제로서 정치에 베풀 수 있다.’고 했소. 이게 곧 정치요. 꼭 벼슬만이 정치겠소?”
대학 전문 3장
爲人子 止於孝 爲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문왕께서는) 자식이 되어서는 효에 그치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에 그치고, 나라 사람들과 사귀면서는 신에 그치셨다.
대학 전문 9장
所謂治國 必先齊其家者 其家 不可敎 而能敎人者 無之 故 君子 不出家而成敎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衆也
이른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하게 함에 있다.”는 것은 자기 집안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고서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룬다. 효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고, 제는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고, 자는 여러 백성들을 부리는 것이다.
정치(政治)는 올바르게(正) 채찍질해서(攵) 물 흐르듯(氵) 기쁘게(台)하는 일입니다. 봉우리에서 졸졸 흐르는 물줄기가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나라와 세상을 바르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와 가족입니다. 부모의 자는 자녀의 효로, 자녀의 효는 친척에게 제로, 이웃에게 미더움으로, 뭇사람에게 사랑으로 쭉쭉 뻗어갑니다. 정치는 꼭 국회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 집에 있습니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치는 것이지 바다가 홀로 움직여 파도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오대양에 비해서 초라해 보이는 빗방울이 온 바다의 뿌리이듯 가족은 온 세상의 뿌리입니다. 좋은 세상은 좋은 가족을 낳고, 좋은 가족이 도덕을 낳고, 도덕은 좋은 세상을 낳습니다. 자효제는 '집안일'에 그치지 않고 '바깥일', '큰일'에 이릅니다.
자효제는 덕의 첫 시동이며 운전, 주행입니다. 차고 안을 벗어난 자동차에게는 샐 수 없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산을 오를 수도,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갈 수도, 국토대장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뻗어나갈 길을 수없이 찾아냅니다. 가족을 향한 깊은 사랑을 연인에게 품으면 연애, 형제에게 품으면 형제애, 벗에게 품으면 우애, 나라에는 애국이며, 인류에는 인류애입니다. 자효제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집단이 개인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지시하는 사회는 결코 바뀔 수 없습니다. 바뀐다 하더라도 잠깐이지 스프링처럼 띠요용하고 돌아와 말짱도루묵입니다. "민족을 위해,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라 외쳐대면서 시킨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노력이라야 도덕이 있습니다.
학이 6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 行有餘力 則以學文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집 안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하고, 집 밖에 나가서는 친척에게 제하고 ••• 글은 효제를 실천하고 남은 힘으로 배우는 게야."
이루 상 40
孟子曰 道在爾而求諸遠 事在易而求諸難 人人親其親 長其長而天下平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도는 가까이 있는데 멀리서 구하고 쉬운 일도 어렵게 구하는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피가 이어졌으면 가족답게 지내고 나이 든 사람은 어른으로 모시면 세상이 평화롭게 되겠지.”
학이 2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 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유약이 말했다. “효제하는 사람치고 윗사람을 업신여기기 좋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윗사람을 업신여기기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을 어지럽히지 않습니다. 군자는 알맹이에 힘씁니다. 알맹이가 바로 서야 도를 낳습니다. 효제는 인의 알맹이입니다.”
가족은 말하자면 '나'는 아니지만 '남'도 아닙니다. 가족을 남이라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자효제는 나에 대한 사랑이 남에 대한 사랑으로 가는 다리가 됩니다. 그렇기에 효제가 깊은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가족을 아낄 줄 알기에 남도 아낄 수 있습니다. 도가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론보다도 실천입니다. 매일 불경을 외고 성당을 들락거려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없다면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교과서에 있는 글 한 줄 외우기보다 직접 한번 해보는 게 더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도로교통법 전문 변호사라고 반드시 모범운전자일 수는 없습니다. 자효제는 책 속의 단어가 아니라 실천의 이름입니다. 무엇보다 다그칠 행동입니다.
위정 7
子游問孝한대 子曰 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자유가 효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즘은 부모님께서 진지 잘 잡수시게 해 드리는 걸 효로 쳐주더라. 섬기지 못하면 개나 말에게 먹이 먹이고 기르는 거랑 똑같지."
위정 8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가 효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낯빛을 곱게 하기가 어려울 테야(표정에는 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식이나 조카한테 떠넘기면서, 술이랑 밥만 먼저 잡수시게 하면 그게 어떻게 효겠느냐?"
자효제는 사람의 도입니다. 금수의 새끼가 어미 꽁무니를 졸졸 쫒거나, 어미가 새끼의 털을 핥아주고, 같은 어미가 낳은 새끼들이 커서 같은 무리를 이룬다고 자효제가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금수는 모두 동물이지만 자효제가 있기에 비슷하되 다릅니다. 사람만 자녀를 가르치고, 부모의 말을 따르고, 사회를 이루는 게 아닙니다. 날짐승도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들짐승도 어미에게 배를 드러내 보이고, 무리 지어 서로 지저귀고 짖어댑니다. 돈을 들여 어린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늙은 부모에게 용돈을 보내고, 명절날 허울뿐인 덕담을 나눈다고 자효제가 아닙니다. 자효제의 알맹이는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사랑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기계처럼 행동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위정 5,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어긋나지 말아야 하오.”
이인 18
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고칠 점은 조심히 말씀드려야 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시더라도 어긋나지 않게 모셔야지. 힘들더라도 미워하지 말아야지.”
가족은 어긋나지 말아야(無違, 무위) 합니다. 사이가 틀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위(違)는 말(口)때문에 하나의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이(五, 㐄) 천천히(辶) 어긋나는 일입니다. 가족 간에 옳고 그름을 떠나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긴다면 위입니다. 자효제를 위해서는 가족이 서로 가깝고 꼭 맞아 엇갈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족이 그릇된 길로 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긋나지 말라는 게 "부모의 말은 곧 하늘이어서 꼭 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어"서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라는 말도 아닙니다. 옳은 건 옳다 그른 건 그르다고 말하되 서로에게 상처 주고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이 없으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끼리 가까워야 합니다. 데면데면하면서도 부모의 명령을 듣고, 자식의 요구를 들어주고, 친척끼리 의무적으로 모인다면 남과 다를 게 없습니다. 겉치레로만 가족인 사이에서는 아주 작은 일로도 어긋나기 쉽습니다. 마치 폭탄 심지에 붙인 불꽃처럼 타올라 펑하고 터집니다. 격식 없고 가깝지도 않다면 버릇없는 가족이겠지만, 격식이 없어도 가깝다면 허물없는 가족, 화목한 가족입니다. 가족끼리 말과 뜻을 나누고 마음을 함께한다면 어긋날 일이 없습니다.
이인 20,
子曰 三年을 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적어도 3년 동안은 아버지의 방식을 고치지 말아야 효라고 할 수 있지.”
자장 18,
曾子曰 吾聞諸夫子 孟莊子之孝也 其他 可能也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
증자가 말했다. “제가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맹장자의 효는 다른 건 몰라도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책을 고치지 않기 쉽지 않구나.'라고."
학이 11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뜻을 잘 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하신 바를 봐야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 동안 아버지의 방식을 고치지 말아야 효라 말할 수 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부모님의 방식(도, 道)을 잘 따르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부모님의 방식을 고치지 않아야 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방식을 물려받는다면 부모자식끼리 가깝고 어긋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물림'을 위해서는 부모의 도가 '도'에 맞아야 합니다. 남을 등쳐먹고 거짓말을 일삼는 게 부모의 도라면 따라서는 안됩니다. 도에 맞아야 효입니다. 무도(無道)를 따르는 물림은 효가 아닙니다. 부모의 도를 따르는 일은 자녀의 노력에만 달려있지 않습니다. 도가 아니면 자효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진정한 자는 자식을 도로 이끌며, 진정한 효는 부모를 도로 밀어줍니다.
이루 상 55,
孟子曰 事孰爲大 事親爲大 守孰爲大 守身爲大 不失其身而能事其親者 吾聞之矣 失其身而能事其親者 吾未之聞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섬기기 가운데 무엇이 가장 크겠나? 어버이 섬기기가 제일 크지. 지키기 가운데 무엇이 가장 크겠나? 내 몸 지키기가 가장 크네. 내 몸을 잃지 않고서 어버이를 잘 섬긴 사람은 내가 들었지만, 몸을 잃고서 어버이를 잘 섬긴 사람은 들어본 적 없네."
태백 3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증자가 병이 들자, 뭇 제자를 불러놓고 말했다. “이불을 걷고 나의 발과 손을 보게. 시경에 이르기를 '전전긍긍하며 깊은 연못에 가까이 있듯이, 살얼음판을 밟듯이 한다.’했네. 이제 두려움에서 벗어나겠구나 제자들아."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드려야 합니다. 나의 성공, 건강, 행복입니다. 나 자신을 아끼는 일은 둘도 없는 효로 이어집니다. 예로부터 부모를 위해 제 몸을 희생한 자식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야기인양 이어져내려 오지만 도를 벗어나는 일이 많습니다.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이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인당수에 몸을 바쳐서 심봉사가 눈을 뜨더라도 인생을 바쳐서 키운 딸이 사라진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부모를 위해 내 몸을 바치는 일은 부모가 바라지 않으니 효가 아닙니다. 효자라면 부모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는 만큼 부모를 사랑합니다.
위정 6,
孟武伯이 問孝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
맹무백이 효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께서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하시오.”
이인 21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연세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지.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려우니.”
양화 21,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재여는 어질지 않구나! 자식은 태어나고 삼 년이 지나야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네. 그래서 뭇 세상사람이 삼년상의 예를 지키지. 재여도 부모님께 삼 년 동안의 사랑을 받았을 거 아닌가?"
진심 상 35
曰 舜 視棄天下 猶棄敝蹝也 竊負而逃 遵海濱而處 終身訢然樂而忘天下
“순임금께서는 천하를 버리는 것을 마치 헌신짝을 버리듯이 여기시어,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하여 바닷가에 살면서 종신토록 즐거워하면서 천하를 잊으셨을 것이네.”
안연 5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 商 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사마우가 걱정하면서 말하였다. “남들은 다 형제가 있는데 나만 홀로 없겠구나!” 자하가 말하였다. “죽느냐 사느냐는 명에 달려있고 부하고 귀한가는 하늘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군자는 삼가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하지요. 천하 사람들이 다 형제이니,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다고 걱정하겠습니까?”
효의 뿌리는 자입니다. 자가 없다면 효가 피어나지 않습니다. 자식사랑이 없다면 부모사랑도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고 삼 년 동안 보살피며, 품을 벗어난 뒤로도 자식이 병들까 걱정합니다. 그렇기에 자녀는 부모남이 늙어갈수록 건강하심이 기쁘고 언제라도 내 곁을 떠나가실까 두렵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득했던 부모님의 사랑이 생각나 삼년상을 치르며 슬퍼합니다. 자식의 삼년상은 부모의 보살핌에서 비롯됩니다. 부모가 자식이 어렸을 때 보살피지 않고 버리듯 했다면 삼년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부모답지 않다면 아무리 나를 낳아주었다고 한들 부모가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내 몸을 위해 자녀가 몸을 해치기 바란다면 자가 아닙니다. 자에게 효로 돌려주고, 불자(不慈)에게는 불효(不孝)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부모답지 않은 부모, 형제답지 않은 형제, 자녀답지 않은 자녀는 피가 이어져있더라도 가족이 아닙니다. 반대로 피가 이어져있지 않더라도 부모답고, 형제답고, 자녀답다면 가족입니다. 만약 나를 보살피고 사랑해 준 보육원 선생님과 나를 버리고 떠나간 부모가 함께 물에 빠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부모다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도덕에 맞는 효는 나를 낳아주기만 한 부모에게 무턱대고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지 않습니다. 자효제의 알맹이는 유전자와 DNA에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도덕에 있습니다. 핏줄에 마음을 쏟으면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깝습니다. 효제자가 사람의 도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면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