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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Aug 24. 2023

정상가족이 뭔데? 애초에 가족이 뭐야?

유교와 가족

영화 '헬로우 고스트'


 가족은 세상의 근본입니다.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입니다. 가족이 모여 마을이 되고, 마을이 모여 국가가 되며, 국가가 모여 세상이 됩니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대학』에서는 나를 닦아 가족을 가지런하게 하는 것(修身齊家, 수신제가)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기초라고 말합니다. 훌륭한 정치를 펴는 나라와 평화로운 세상(治國平天下, 치국평천하)의 배경에는 언제나 가지런한 가족이 있습니다.


 유교(儒敎)는 스스로를 갈고닦아 성인(聖人)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나 홀로 우뚝 서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내려다보는 권의주의적이며 폭력적인 지배자나 통치자가 아닙니다. 소인에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유교적 이상형인 군자는 수많은 사람을 맞닥뜨립니다. 성인으로부터 배우고, 군자와 함께하며, 소인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며, 그렇기에 군자의 길은 가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연도별 전국 신혼부부 통계 (KOSIS, 2022)
합계출산율 (지표누리 국가지표체계, 통계청「인구동향조사」참조, 2023)
연도별 1인 가구 비율 증감 (KOSIS, 2023) 네이버 검색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은 점점 붕괴되어가고 있습니다. 당장 주변을 돌아봐도 이혼 가정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혼인 건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으며, 2022년 기준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습니다.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수의 34.5%를 차지합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이혼하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을 기피합니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부모와 자녀는 함께 살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붙어살며 정을 나누던 전근대적 대가족은 고사하고, 핵가족도 보기 드문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정상가족(正常家族, normal family)의 형태가 드문 지금, 유교적 가치는 희미한 것이라고요. 그러나 저는 말합니다. 가족의 모습이 바뀌어도 가족의 본질은 바뀌지 않으며 가족을 핵심 가치로 갖는 유교적 가치 역시 빛을 바래지 않을 것입니다.



후지타 사유리 씨와 아들 젠 (사유리 인스타그램)


오직 정상가족이어야만 할까? : 안징재와 맹자의 어머니


 '정상적인'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정상가족이 있다면 '비정상(非正常, abnormal)' 가족도 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 매체에서 보이는 가족의 기본형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어와 부양의 의무를 지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며 가사와 자녀양육을 책임집니다. 흔히 ‘정상가족 이데올로기(normal famliy ideology)‘라고 부르는 사회적 고정관념 아래에서 정상가족은 바람직하고 옳으며 비정상가족은 어정쩡하고 그른 것으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사마천 『사기』 공자세가

孔子生魯昌平郷陬邑. … 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 … 丘生而叔梁紇死, 葬於防山. 防山在魯東, 由是孔子疑其父墓処, 母諱之也

공자는 노(魯)의 창평향(昌平鄕) 추읍(陬邑)에서 태어났다. … 흘은 안씨(顔氏)의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 구(공자)가 태어나고 얼마 뒤 숙양흘이 죽어서 방산(防山)에 묻었다. 방산은 노의 동쪽에 있었다. 공자는 아버지의 무덤이 어딘지 몰랐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말하길 원치 않았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孔子)는 가족의 정의나 범주에 대해 말이나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교가 오로지 정상가족 안에서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해 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자 자신조차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과 어머니인 안징재 사이의 결혼에 대해 그 시대 사람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결합이라는 뜻으'야합(野合)'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태어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숙량흘은 죽습니다. 안징재가 숙량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둘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아가 친가가 아닌 외가의 지원을 받아 살았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논어』 양화21

"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故, 不爲也. 今女安則爲之"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해라! 무릇 군자는 상중에는 음악을 들어도 기쁘지 않고 집에 있어도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 못하는 것이야. 지금 네가 편안하다고 하니 그렇게 해라!"


  공자의 탄생과 얽힌 가정상황에는 여러 말이 많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공자가 설령 정상가족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오로지 정상가족만이 옳다!"라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자 재아(我)와의 대화 속에서 재아가 삼년상의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집에 있어도 불안하다”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울컥’했던 공자입니다. 이런 그가 비정상 가족을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와 보낸 유·청소년기를 부정하는 일이니까요.


 한부모가정에서 자랐던 성인 공자의 어린 시절을 의식한 것인지 후대 유학자들은 아성(亞聖, 성인에 버금가는 사람) 맹자(孟子)를 공자와 같은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세 번 이사한 맹모삼천지교나 맹자가 배움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자 베틀의 실을 끊어 혼냈다는 맹모단기지교가 그러한 예입니다. 그렇기에 유교인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의 ‘정상가족’을 가족의 완성형이며 이상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사뭇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완성형이자 이상적인 인간인 성인에 도달한 두 인물, 공자와 맹자가 이러한 비정상가족에서 태어났으며 그들이 주창한 가족원리인 효제자(孝悌慈)가 정상가족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안 됨)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 가족다우면 가족이다


『논어』 안연11

齊景公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제경공이 공자께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됩니다."


『논어』 위정6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하시네."

『논어』 양화21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자식은 태어나 3년은 지나야 부모품을 떠난다. 무릇 3년상은 하늘 아래 두루 통하는 상례이다."


『맹자』 양혜왕 下

"曰, “賊仁者謂之‘賊’ , 賊義者謂之‘殘’ . 殘賊之人謂之‘一夫’ .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말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말하니, '적잔'인 사람은(임금이라 할 수 없고) '한낱 보통사람(一夫)'에 불과합니다. '한낱 보통사람에 불과한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제나라의 왕 경공(齊景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부모다움, 자식다움이란 부모 된 도리, 자녀 된 도리입니다. 부모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고, 자식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정명이 임금과 신하까지 이어져야 올바른 정치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맹자는 이곳에서 착안해 임금답지 못한 임금은 혁명(革命), 즉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도적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와 달리 부모자식의 관계는 천부적이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공자 또한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삼년상을 치러야 하는 근거에 대해 "부모는 언제나 자식이 병들까 걱정하기 때문", "자식이 태어나고 3년 동안 품 안에서 길렀기 때문"이라는 명확하고 보편적인 근거를 제시합니다. 즉 부모답고 자식다워야 부모자식이지 단순 혈연만으로는 가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친족과 가족은 다릅니다.


『논어』 안연5

"君子何患乎無兄弟也"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근심하겠소?"


『논어』 선진10

"子曰 回也 視予猶父也 予不得視猶子也"

"회는 나 보기를 아버지처럼 했는데, 나는 아들처럼 보지 못했구나!"


 공자와 그 제자들은 말뿐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가족의 기준을 DNA 바깥의 것으로 넓혔던 것 같습니다. 가령 공자가 애제자 안연이 죽자 “회는 나를 아버지처럼 대했거늘 나는 회를 아들처럼 대하지 못했구나!”라며 통탄하는 모습과 공자의 제자 자하가 “군자가 행동을 공경하게 해서 사람을 잃지 않고 공손함으로 사람과 함께해 예의가 있다면 세상 사람이 모두 형제입니다.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걱정하겠습니까?”라고 반문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혼인, 혈연관계라 하더라도 가족이 아닐 수도 있고, 거주지와 생계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가족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가족은 도의를 따라야 합니다. 내가 어버이로 모시면 어버이이고, 내가 자식으로 어여뻐하면 자식이 될 따름입니다. 어찌 DNA와 경제적 상관관계가 가족이 되는 여부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어버이를 따르는 게 꼭 나를 낳으시고 한 집에 살기 때문일까요? 내가 입양된 자식이라면 부모를 내팽개치고 떠나며, 부모가 늙어 가난하고 궁핍해지면 버리는 게 진정 효라면 그런 효는 없느니만 못합니다.




영화 '업'


독신자, 딩크족도 부모처럼 :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중용』 12장

君子之道造端乎夫婦及其至也察乎天地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시작되니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천지에 드러난다.


 옛날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을 미혼이라고 했습니다. 미혼의 미는 아직이라는 뜻으로 결국은 결혼을 할 것이며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비혼주의라는 말은 미혼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생겨난 말입니다. 자신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시입니다. 또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고 서로의 취미나 개인생활에 집중하며 사랑을 나누는 딩크족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유교의 가르침은 부부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할 만큼 결혼과 가정에 대해 중시합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성장하여 다시 결혼을 하는 연결고리가 끊긴다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유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논어』 향당 12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마구간이 불이 났다. 조정에서 퇴근하시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느냐?"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경제학자들은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늙은이는 우후죽순 늘어나 생산인구는 줄고 부양인구가 늘어나 경제적인 관점에서 악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기계 부품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면 수식상으로는 맞을지언정 '사람보다 먼저인 것은 없는' 유교에서 허용할 수 없는 가치관입니다. 그러나 전근대 전통적인 관점에서도 사람을 온전히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제사를 지내고 자신의 자식에게 제사를 계승시키는 과정에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는 것 역시 사람은 조상과 제사를 위해 전락한 무언가로 보기 쉽습니다. 옛 예를 따른 유학자들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 보건대 유교와는 맞지 않습니다. 


『예기』 예운 편

"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

"내 부모만 부모로 삼지 않고 내 자식만 자식으로 삼지 않는다."

『맹자』 양혜왕 上

"老吾老以及人之老 幼吾幼以及人之幼天下可運於掌."

"우리집 노인을 섬기듯 이웃집 노인을 섬기고, 우리집 아이를 아끼듯 이웃집 아이를 아끼는데 미치게 되면 세상을 손바닥 안에 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쉽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유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에서 얻을 수 있는, 더불어 출산율 감소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하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육아를 권장하여 사회를 유지시켜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절충해야 합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中庸)입니다.  무작정 인구를 늘리기보다도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잘 자라날 수 있는, 부모가 아이의 성장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부모자식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 정반대 편에서 나온 말치고는 다분히 유교적인 말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더라도 내 자식처럼 사랑하는 사회, 유교에서 말하는 대동사회(大同社會)야 말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안입니다.


 아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이 없애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렇다고 전국 식당, 카페 사장님들에게 공문을 내려 노키즈존을 없애지 않으면 벌금을 부여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건 공권력의 횡포이자 불화이죠. 사회구성원 하나하나가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는 어버이로서 아이를 자상하게 양육해야 하지만 동시에 아이로 하여금 다른 이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기 싫은 비혼주의자와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하는 딩크족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이웃아이의 양육에 동참해야 합니다. 국가와 행정기관에서도 나서 부모와 아이를 지원해야 합니다.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개개인의, 위에서부터 내려오려는 사회의 노력이 중간에서 맞물리지 않는 이상 저출산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 살펴본 바, 유교는 오로지 정상가족 안에서 한정된 가르침이 아닙니다. 가족은 오로지 친족만이 아닌 친밀감을 느끼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현대사회에서 구성들에게 출산과 육아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양육의 책임은 공동으로 지어야 합니다. 맹자와 중용에서 분명히 전하건대 상급자와 하급자,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 친구는 온 세상 어디에나 있는 관계이며 사람은 이 관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기 살기 위해서는 서로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나 이외에 사람에게 드는 자연스러운 호의의 감정을 가족으로부터 확장시켜야 합니다. 유교는 시대가 변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지녀야 하는 아주 근원적이고 기초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교가 세상에 맞춰 겉으로 내보이는 형식이 아닌 그 속에 있는 본질이라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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