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린 산천어 Aug 14. 2023

꼰대와 MZ, 나이는 벼슬일까?

유교와 세대갈등

유튜브 <꼰대희>


 어리고 젊은 사람을 자제(子弟)라고 하고, 나이 많고 늙은 사람은 부형(父兄)이라고 합니다. 자제는 유(幼)이며, 부형은 장(長)입니다. 유교의 대표적인 서적 ≪중용(中庸)≫에서는 장유유서(長幼有序)라고 합니다. 젊은이와 늙은이의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습니다. 늙은이는 젊은이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며, 젊은이는 늙은이에게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젊은이를 MZ라고 하고 늙은이를 꼰대라고 하면서도 사뭇 이 호칭이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신세대를 특정하던 MZ는 모든 젊은이를 비하하고 깔보는 말이 되었고, 일부 몰지각한 기성세대를 특정하던 꼰대는 모든 늙은이를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제 MZ와 꼰대는 단순 명칭이 아니라 혐오 섞인 멸칭입니다. 늙은이가 늙은이답지 못하고 젊은이가 젊은이답지 않은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장유유서라는 하나의 구절을 보고 뭇사람은 꼰대의 탄생을 유교와 깊게 연관시킵니다. 권위주의의 폐단이 유교에게 있다고 지적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공자는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높이고, 나이가 적다고 말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적더라도 배울 점이 있고, 나이가 많은 만큼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로의 역할에 맞게 행동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장유유서입니다.




 꼰대는 귀인오류, 인지경직성, 자기중심적 소통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귀인오류는 자신을 평가할 때 긍정적 결과에 대해서는 내부귀인 방식을 사용하고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는 외부귀인을 하지만, 타인의 평가에 있어서는 특히 부정적 결과에 있어 상황적 요소는 고려하지 않고 내부귀인을 하는 자기중심적 귀인 경향을 말합니다.


 인지적 경직성은 일방향적 사고방식으로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소통을 통해 자기 인식을 바꾸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일반화하고 절대화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자기중심적 소통은 심리적인 융통성 부족이나 일방향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부정적 반응이나 소통 문제를 말합니다.


 꼰대는 나에게는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엄격하고, 남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지만 내 말은 무조건 맞다고 우기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내로남불, 답정너, 벽창호의 화신입니다.


1) 이지연, 고동우, 최경찬, "꼰대 척도의 개발 및 타당화"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19.




 군자는 성인 다음으로 유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입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군자가 되는 길을 제시하는 하나의 큰 가이드라인입니다. 유교가 꼰대를 양성하는, 꼰대적인 사상이라면 유교가 제시하는 군자라는 인간상 역시 꼰대의 표본이어야 하며 공자 역시 꼰대여야 합니다. 그러나 논어의 어느 구절을 읽어봐도 꼰대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남의 말을 경청하고 내 말을 고집하지 않는 신중한 '참어른'만이 있을 뿐입니다.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따르는 사람이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다면 가르침마저 욕먹게 됩니다. 공자와 유교인, 예수와 기독교인, 부처와 불교인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일부 종교인의 탈선이 해당 종교에 대한 반종교 정서로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던 유교는 전근대의 문화습속과 깊이 결부되어, 봉건제와 가부장제가 폐습으로 지목되자마자 함께 뭇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언행을 살펴보며 "꼰대 같다"라고 인식되어 온 유교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 보려고 합니다. 군자는 꼰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꼰대를 질타하고 배격하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유교를 따르면서도 꼰대 같다면 꼭 공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따르는 사람입니다. 앞서 언급한 꼰대의 세 가지 특성, 귀인오류·인지적 경직성·자기중심적 소통, 과 대조해 보며 과연 유교가 '꼰대 탄생의 죄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삼성생명 광고 중 "라떼는 말이야!"


 귀인 오류 : "나 때는 말이야!"


 꼰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귀인 오류, '내로남불'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아전인수식의 사고방식입니다. 꼰대는 자신이 받은 사회적 혜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나한테 뭘 해줬는데?", "내가 국가를 위해서..."를 연호합니다. 기성세대가 누렸던 성공의 뒷면에는 분명 경제적 호황 같은 시대적인 영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꼰대는 오로지 노력만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대의 무기력함과 좌절, 실패에는 외부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근성이 부족해서"라는 간편한 마법의 말로 힐난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짜밥 먹는다고 핍박하고, "세상 참 좋아졌다"며 국민연금도 못 받게 될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과열 경쟁 사회의 과오를 직방으로 맞고 있는 아이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라고는 안보입니다. 젊었던 당시의 어두운 면이나 본인의 잘못 대해서는 자기 입장에서의 윗세대나 당대의 현실을 탓합니다. 요즘 것들이 괴로워하는 건 꼰대의 책임이 아닙니다. 내가 잘난 건 내 덕이고 내가 못난 건 남 탓입니다. 네가 잘난 건 내 덕이고 네가 못난 건 네 탓입니다.


위령공 20.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는 나에게서 얻고 소인은 남에게서 얻는다."

학이8. 

"잘못은 바로 고쳐야 한다."

헌문12. 義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


 군자는 '나에게서 얻는(君子求諸己)' 사람입니다. 군자는 자신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명확하게 압니다. 소인, 꼰대라면 내 잘못임에도 문제의 사유를 '남에게서 찾기(小人求諸人)' 급급하겠지만, 군자는 내가 실수한 것은 없는지, 나의 책임은 꼭 없는 것인지 신중하게 살핍니다. 그리고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過則勿憚改). 내가 얻은 혜택을 보고 단순히 "나는 받을만해서 받았다"라고 치부해버리지 않습니다. 사회적 혜택이란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의 피와 땀이 담긴 것입니다(見利思義). 나아가 사회공동체에 위기가 도래했을 때는 내가 받은 바를 생각하고 나 역시 피와 땀을 흘리며 공공을 위해 노력합니다(見危授命).




 인지적 경직성 :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다!"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 역시 꼰대의 특징입니다. 유교는 그동안 '보수적인 사상'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우습게도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는 시대에 다른 사회통념의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입니다.


자한3 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 拜下 禮也 今拜乎上 泰也 雖違衆 吾從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베로 만든 관이 예에 맞지만 지금은 생실로 만든 관을 써서 검소하구나! 나는 요즘사람을 따르겠다. 당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에 맞지만 지금은 당 위에서 절하니 거만하구나! 비록 요즘사람과 어긋나더라도 나는 아래에서 절하는 걸 따르겠다."


 군자는 보수주의자인 동시에 계몽주의자입니다. 계몽이란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치는 일입니다. 인습이란 예전의 풍습, 습관, 예절 따위를 그대로 따르는 일입니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바꿔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습니다. 현대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인습은 마땅히 버려야만 합니다. 시대적 맥락을 무시하고 옛 선비들의 언행을 곧이곧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경직된 관점에 갇혀 대화하기 어렵습니다.


위정 17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해야 옳은 앎이다."


 군자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인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가지고 있기에 가치관의 변화에도 빠르게 적응합니다. 자신의 의견, 사고,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재고하는 인지적 유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식은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지식만을 가지고 새로이 닥쳐오는 상황에 대해 합리화를 거듭하기만 한다면 모르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앎이 실제 지식과 일치해야만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군자는 유연하게 사고합니다. 1)단장취의하지 않고 2)채장보단합니다. 인류가 지켜온 사랑의 가치를 보전하되 전통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은 점차 줄여나갑니다. 유연한 사고를 발휘하여 사회적 갈등을 미연에 막아내고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유교의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1) 남이 쓴 문장이나 시의 한 부분을 그 문장이나 시가 가진 전체적인 뜻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인용하는 일. 또는 그 인용으로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합리화하는 일. 네이버 사전.

2) 장점(長點)은 취(取)하고, 단점(短點)은 보완(補完)함. 네이버 사전.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노구(신구 역)


 자기중심적 소통 : "내 말에 토를 달아?"


자장22 學 有(學師, 배우는데 정해진 스승은 없다.)

"선생님께서 어디선들 배우지 않으셨겠으며, 또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었겠습니까?"

술이22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의사소통은 상호존중을 기초로 하기에 경청이 중요합니다. 공자는 젊었을 때부터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온갖 사람과 만나며 배웠고(學無常師), 이런 경험을 통해 어디에서건 누구에게나 꼭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必有我師焉). 현대사회에서도 인간관계형성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경청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만 꼰대는 공자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행동합니다. 나이에 따른 서열을 곧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잣대로 세워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반하는 말을 한다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권위적으로 일축합니다.


위령공23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죽을 때까지 따를만한 한마디가 있을까요?" - "바로 서(恕)다! 내가 바라지 않는 걸 남에게 베풀지 말거라"


 서(恕)는 유교의 탁월한 공감능력입니다.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기에, 군자는 꼰대와 달리 경청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처해있는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보고 나를 미루어보아(己所不欲)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勿施於人) 공감능력이야말로 꼰대가 군자에게 배워야 할 점입니다. 서가 있고 나서야 '나 때'의 어려움을 미루어보고 '너 때'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함을 내려놓는 것과 더불어, 연장자로서 상대방이 처해있는 상황이 곧 자신이 지나왔던 길임을 인지하고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 공감이 다시 "나도 너만 할 때는 그랬어"라던가, "나도 겪어봐서 다 아는데..."가 되면 곤란하겠지만 말입니다.


 서론에서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서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본론에서는 오직 꼰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뤘습니다. 꼰대에는 나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귀인오류, 인지경직성, 자기중심적 소통의 세 요소는 오직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신세대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대한민국의 세대갈등, 꼰대와 MZ의 갈등은 얼핏 보면 고리타분한 늙은이들과 버릇없는 젊은이들의 의견충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의 충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대갈등은 결국 서로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아니면 풀어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는 고집과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소통의 자세를 갖춰야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유교는 반꼰대의 가르침입니다. 권위를 긍정하지만 권위주의는 아닙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유연한 변화를 지향하고, 공감과 소통을 통해 조화를 바라는 가르침입니다. 유교가 꼰대에 부역하는 도구가 아닌 꼰대에 대항하는 논리로서 자리매김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21화 예, 교통규범 지키기 (brunch.co.kr)

22화 경, 브레이크 밟기 (brunch.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