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넘지 마라...!
25. “바퀴 잠김 방지식 제동장치”라 함은 바퀴의 회전량을 감지ㆍ분석하여 바퀴의 제동력을 조절하여 줌으로써 제동시 바퀴의 미끄러짐량을 자동적으로 조절하여 주는 장치를 말한다.
25의 2. “주제동장치”라 함은 주행 중에 주로 사용하는 제동장치를 말한다.
신호등이 황색등이면 브레이크를 살살 밟고 서서히 속력을 줄이다가 적색등에 정차해야 합니다. 방지턱에서, 커브길에서, 내리막길에서, 또는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돌발상황을 대비하며 언제라도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도록 발을 페달 주변에 둬야 합니다. 경(敬)은 브레이크입니다. 공경(恭敬), 존경(尊敬), 근신(謹愼, 삼감)입니다. 이를테면 '섬김'과 '삼감'입니다. 섬기며 삼가지 못하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제대로 들지 않는 자동차에 탄 운전자처럼 매우 아슬아슬합니다. 부모님을 섬기지 못하고, 자녀 앞에서 삼가지 않으면 덕을 해치게 됩니다. 가깝고 허물없이 함께함도 좋지만 최소한의 거리는 둬야 합니다. 허울 없는 것과 무례는 다릅니다. 그렇기에 경은 예의 기초가 됩니다.
군자는 사람을 가깝게 사랑하지만 또 떨어져서 삼갑니다. 선생이나 부모로서 아이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지만, 원치 않는데 시키고 부려먹으며 막대하면 경이 아닙니다. 친구끼리 서로 놀리며 짓궂게 장난치면서도 사이좋게 지낸다면 좋겠지만, 선을 넘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겨도 경이 아닙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대하기를 친구처럼 하고 섬기지 못하면 크나큰 불효이자 불경입니다. 사람 사이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경은 신분고하와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서로 경해야 합니다. 나보다 높고 늙었는데도 경하지 않거나, 나보다 낮고 어리다고 경하지 않으면 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는 서로 지켜야 하기에 상호보완적(相互補完,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줌)이며 상호의존적(相互依存, 서로에게 의지하여 존재함)입니다. 내 경으로 남의 불경을 경으로 바꿀 수 있고, 내가 경했기에 남도 경할 수 있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늘 브레이크에 신경 쓰듯, 군자가 되려는 사람은 경을 곁에 두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헌문 45
子路問君子 子曰 修己以敬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人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 其猶病諸
자로가 군자에 대하여 여쭈니,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군자는 경으로써 자신을 닦는다네.” 자로가 여쭈었다. “이와 같을 뿐입니까?” “자신을 닦아서 남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하네.” “이와 같을 뿐입니까?” “자신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하니, 자신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요순임금께서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기셨네.”
남을 존경해서 섬기고, 존중해서 삼가는 마음이 있어야 남을 편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경은 남보다 내가 낫다는 우쭐함을 버리고, 남을 나보다 높게 떠받드는 마음가짐입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주변에 서있는 사람은 얼마나 안절부절못할까요? 경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로지 액셀만 세게 밟고, 기어 단수를 올릴 줄만 알아서 두렵습니다. 군자가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는 이유는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서입니다. 예가 있어도 경이 없다면 사납게 으르고 억지로 바꾸게 합니다. 군자는 오로지 경이 있기에 사람이 나를 섬기고 삼가게 해서 세상을 좋게 만듭니다.
위정 20,
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 子曰 臨之以莊則敬 孝慈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
노나라의 대부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들에게 윗사람을 경하고 충하게 유도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대하기를 엄하게 하면 백성들이 경하고, 효도와 사랑을 베풀면 백성들이 충하고, 선을 배워서 그렇게 못하는 사람을 가르치면 됩니다.”
공야장 15,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공자께서 자산(당시 정나라의 재상)을 평하셨다. “군자의 도 네 가지가 있었으니, 몸가짐이 공손하였고, 윗사람 섬김이 공경스러웠고,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웠으며, 백성을 부림이 의로웠다.”
선생님과 부모님, 웃어른과 윗사람을 경해야 합니다. 스승은 나를 가르쳐준 사람이고, 부모는 나를 낳고 키운 사람입니다. 웃어른과 윗사람은 나보다 앞서간 사람으로서 배울 점이 있고 도움받을 수 있으니 걸맞은 예를 차려야 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허울 없거나 부모와 자녀가 가까운 건 좋지만 너무 경우 없고 무례하다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웃어른이 연장자로서 보듬어주고, 윗사람이 상급자로서 이끌어준다면 마땅히 보답해야 합니다. 아래로 향하는 내리사랑에는 위로 향하는 경이 있어야 합니다. 스승, 부모, 웃어른, 윗사람에게 제자, 자식, 족하, 아랫사람으로서의 예를 다해야 경입니다.
공야장 16,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안영)은 남과 사귀기를 잘하는구나! 사귄 지 오래되어도 공경한다.”
친구 간에도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선이 있습니다. "너 선 넘지 마"라는 말, 요즘 자주 보이는 표현입니다. '선을 넘지 않음'이 경입니다. 오랫동안 사람을 사귀다 보면 첫 만남의 어색하고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없어집니다. 긴장이 풀리고 서로 편해집니다. 그렇다고 친구를 뒷마당 노비처럼 막대해서는 곤란합니다. '친한 친구'가 아니라 '친했던 사람'이 되겠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서로 모습은 다를지라도 꼭 예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에는 경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경은 인의와 마찬가지로 예의 알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섬기고, 사람에게 삼가니 경은 인의의 다른 모습입니다. 군자의 경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습니다.
옹야 1,
子曰 雍也 可使南面 仲弓 問子桑伯子 子曰 可也簡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雍之言 然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염옹은 임금이 되게 할 만하다.” 중궁(염옹)이 노나라 사람 자상백자에 대하여 여쭈니,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의 간략함도 괜찮네.” 중궁이 말하였다. “경에 바탕을 두고 간략함을 행하여 백성들을 대한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간략함에 바탕을 두고 간략함을 행하면 너무 간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다!”
브레이크 없이 '급발진'과 '사이다'만을 원하는 세상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매드맥스'나 '분노의 질주' 같은 영화에서 자동차가 풀액셀로 달리고, 부딪히고, 뒤집어지고, 폭발하는 모습을 보며 뭇사람은 희열을 느낍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날이 갈수록 자극만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싶습니다. 사람에게 솔직게 다가가면 좋지만 그렇다고 도를 넘을 정도로 무례할 필요는 없잖아요? 군자는 소인이라고 해서 속 시원하게 골탕 먹이고, 어려움에 처하게 하며, 함정에 빠뜨리지 않습니다. 군자와 소인이지 '톰과 제리'가 아닙니다.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는 사람은 나아가면서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군자의 바람은 '유쾌한 반란'이 아니라 개인에서 세상으로의 도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