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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Jul 25. 2023

정명, 내 차선 찾기

내 주제를 알아야지! 내 주제가 뭔데?




 7. “차선”이란 차로와 차로를 구분하기 위하여 그 경계지점을 안전표지로 표시한 선을 말한다.
 7의 2. “노면전차 전용로”란 도로에서 궤도를 설치하고, 안전표지 또는 인공구조물로 경계를 표시하여 설치한 「도시철도법」제18조의 2 제1항 각 호에 따른 도로 또는 차로를 말한다.




 대형트럭을 자전거전용도로에서 몰고 오토바이로 인도를 다녀서는 안 됩니다. 자전거가 대형트럭에 짓밟히고 보행자가 오토바이에 치일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다닌다면 자전거전용도로와 도보전용도로가 왜 있나요? 전용(用)은 말 그대로 오로지(專) 특정 대상만 쓸(用) 수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는 찻길로, 사람은 보도로 다녀야 합니다. 이름에 걸맞은 자리에서 '이름값'하고, 자리에 걸맞은 '꼴값'을 해야 정명(正名)입니다. 내가 운전해야 하는 차선을 찾아야 합니다. 차가 막힌다고 역주행하고, 틈이 생겼다고 불법유턴하는 마구잡이식 난폭운전은 도로 위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자신의 역할을 반듯하게 하고 서로의 자리에서 할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야 말로 도가 있다고 할만합니다. 훌륭한 사회에는 꼭 정명이 있습니다. 어지러운 사회는 몇몇의 탈선으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탈선이 흔하고 마땅해져서 사회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노릇이 됩니다. 지금까지 멸망한 모든 나라와 사회는 망하기 전에 꼭 정명이 사라졌습니다. 사회구성원이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과 책임에 무관심하고 불만을 가지게 되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하게 됩니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 '아무나 해도 되는 일', '아무도 안 해도 되는 일'이 되는 순간 정명은 무너집니다. 군자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이름과 자리에 걸맞게 하고,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정명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자로 3, 

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자로가 말하였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하려고 하시니,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겠네.”

안연 11, 

齊景公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니. 公曰 善哉라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하는 것입니다.” 경공이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옹야 23

子曰 觚不觚 觚哉觚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난 술그릇인 고가 모나지 않으면, 그것이 고이겠는가?”


 이름과 실재(在, 진짜 존재)가 맞아떨어져야 정명입니다. 사람의 이름은 단 하나이지만 역할과 책임의 이름은 여럿입니다. 나와 너,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상급자와 하급자 등 정명은 나는 나답고 너는 너다워야 합니다. 상급자는 상급자답게 하급자를 이끌고 하급자는 하급자답게 상급자를 밀어줘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고 자녀는 부모를 모십니다. 스승은 가르치고 제자는 배웁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너처럼 굴고, 너는 나처럼 굴면 이름과 실재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제자가 가르치려고 들고 스승이 꼼짝없이 듣고만 있는 꼴에 이르러 교권이 무너집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지 않고 자식은 스스로 자라기 시작하면서 가족이 무너집니다. 하급자가 상급자의 자리를 넘보고 상급자가 하급자보다 못하게 되면서 하상(上, 윗사람을 꺾고 름)이 펼쳐집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다면 사회구성원 하나하나가 이름값과 꼴값을 제대로 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정명이 사라지면 사회는 무너집니다.




이인 14,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위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는지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실상을 갖추기를 구해야 한다.”

태백 14, 헌문 27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헌 문 28, 

曾子曰 君子 思不出其位

曾子가 말하였다. “군자는 생각이 자신의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공야장 5

子使漆雕開 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공자께서 제자인 칠조개에게 벼슬을 하도록 권하셨는데, 그가 대답하였다. “저는 벼슬에 대해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자 공자께서 기뻐하셨다.


 내 주제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꼭 주제 파악 안 되는 사람들이 일을 그르칩니다. 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바라는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난 다음 바꿔야 합니다. 승용차를 타고 철도로 뛰어든다고 해서 승용차가 갑자기 기차로 변신하지 않습니다. 오징어심리학과를 전공한 교수가 자신이 마치 우유배달학에도 전공지식이 많은 것처럼 말을 하고, 두덕리 이장이면서 고려시대 호족인 것처럼 굴면 정명을 어지럽히는 일입니다. 군자는 내 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언제나 말과 행동을 삼갑니다.

 

 누구나 한 번에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정명을 따르기 위해서는 부모로서는 자녀의 행복을 바라고, 자녀로서는 부모의 건강을 바라고, 정치인으로서는 사회를 생각하고, 사람으로서는 도덕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내 부모에 대한 효를 떠넘기고, 뒷돈을 받아 내 욕구를 채우는 부정축재(不正蓄財)를 저지른다면 자녀로서도, 부모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실격입니다. 부모의 일은 부모가, 자녀의 일은 자녀가 해야 합니다. 정명은 도로 위 차선처럼 우리의 역할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합니다.




계씨 2, 

孔子曰 天下有道 則禮樂征伐 自天子出 天下無道 則禮樂征伐 自諸侯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팔일 1, 

孔子謂季氏 八佾 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께서 노나라의 대부 계손씨를 평하여 말씀하셨다. “천자의 춤인 ‘팔일무’를 자기 집 뜰에서 추니, 이런 짓을 차마 한다면 무슨 짓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

선진 16, 

季氏富於周公 而求也 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 鳴鼓而攻之 可也

季氏가 周公보다 부유하였는데도, 계씨의 家臣인 염유가 그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 재산을 더 늘려주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염유는 우리 무리가 아니니, 제자들이여, 북을 울려 그의 죄를 聲討함이 옳다.”

만장 하 50

曰 君有大過則諫 反覆之而不聽則易位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간(諫)하고, 반복해서 간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의 자리를 바꿉니다.”

양혜왕 하 8

曰 臣弑其君 可乎? 曰 賊仁者를 謂之賊 賊義者 謂之殘 殘賊之人 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신하가 그 임금을 죽여도 되는겁니까?”하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이르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이르고, 잔적 한 사람을 일개 지아비인 ‘일부(一夫)’라 이르니, 일부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정명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합니다. 부모가 부모답지 않다면 그에게서 아이를 데려와야 하고, 스승이 스승답지 않다면 교단에서 내쫓아야 합니다. 국민이 국민답지 않다면 나라 밖으로 추방해야 하고, 공직자가 공직자답지 않다면 파면시켜야 합니다. 술에 취해 자녀에게 마음대로 손지검하는 부모는 부모가 아니며, 촌지를 받고 제자를 따돌리는 스승은 스승이 아닙니다. 의무를 무시하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며, 자신을 귀족으로 아는 공직자는 공직자가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덕이 없는 둥 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금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간실격이라는 뜻은 금수합격이라는 뜻도 됩니다. 정명이 없는 사람은 더한 짓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는 군자는 반드시 정명을 위해 옳지 않은 이름을 바꿉니다(혁명). 부모답지 않은 사람을 모시지 않는다고 패륜이 아니며, 스승답지 않은 사람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고 교권 침해가 아니며, 국민답지 않은 사람을 내쫓는다고 독재가 아니며, 공직자 답지 않은 사람을 끌어내린다고 반역이 아닙니다. 정명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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