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Nov 06. 2023

요즘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나는 근무할 땐 일만 하는 편이다. 몰래 다른 걸 하며 마음 졸이는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내 일이 좋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중하는 것 같다. 처음엔 몰입하는 자세가 나의 큰 장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집중력이 나를 가둔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 방향인지 헷갈릴 때가 있고 동료들과 동 떨어진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모르기 때문에 더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제시간에 일을 끝내려고 일을 찾아서 하기도 하고 내 의견이 반려되더라도 꿋꿋하게 다른 의견을 말하면서 해결히려 했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사람의 말을 듣고 당연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걸 알았다.


요즘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나를 보고 미련하다고 말했다. 본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알아주는 사람 없고 오히려 일을 더 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적당히 일 하고 적당히 놀아야 똑똑한 거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고 성격에 맞지 않는 걸 하며 마음 불편하게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주변을 보니 정말 다들 눈치껏 일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아직까진 억울하지 않았다. 난 일에 대한 욕심이 있고, 내 시간을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근데 노는 모습이 너무 잘 보였다. 조금씩 억울함이 생겼다. 내 템포대로 일하다가 이렇게 균형이 깨지는 말이나 사건이 생기면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지금처럼. '아, 나만, 또...'라고 말하자 동료는 내 멘털이 약하다고 걱정했다. 그걸 왜 또 본인 탓을 하냐고. 같은 팀인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지 고민한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근무시간에 논다는 게 좋다는 건 아니고 동료가 잘했고 똑똑하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좀 씁쓸했다.


 상사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한 그 사람은 칭찬받고 상사의 의견에 우려스러움을 말한 나는 바보 취급받았다. 내가 말로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이라 우려스러움을 상처받지 않게 말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렇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비꼬는 말들이었다. 한 번은 트렌드 리포트 정리 후 데이터 기반으로 내 의견을 말했지만, 여전히 예전 마케팅 방식을 고집했다. 2019년 이후로는 마케팅으로 성공한 적 없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면서 변하려고 하지 않는 게 조금 답답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마케팅 전략안과 브랜딩을 고민했다. 잠깐 머물다 가는 기업이 아닌 꾸준히 사랑받고 인정받는 기업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브랜딩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 계속 미뤄두고 있다. 물론 제품에 따라 중요하지 않을 순 있다. 그렇지만 우리 제품은 프리미엄급으로 비싼 편이다. 내가 말하는 브랜딩은 TV 이미지 광고를 말하는 게 아닌데. 소비자가 우리를 어떤 기업으로 기억하게 했으면 좋겠는지, 소비자가 우리를 통해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 그것들만 정의하고 관련 마케팅을 하자는 건데. 회사와 나의 가치관이 많이 다른 걸까.


 내가 입사한 지 1년이 된 요즘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당연히 매출은 떨어지고 있고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마이너스로 회사는 점점 힘들어 보였다. 한번 크게 성공한 적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말을 듣고 색다른 시도를 하는 게 어려울 순 있다. 이런 걸 눈치챈 직원들은 상사의 의견에 무조건 좋다고 반응하고 뒤에선 별로라고 말했다. 잘못된 걸 바로 잡고 싶은 내 성향 때문인지, 요즘 상사를 설득하기 위해 준비하는 자료가 많아졌다. 나 혼자만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러다 어차피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쯤 주변 동료들에게 눈치껏 일해라 그게 똑똑한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쯤 다시 토스 다큐멘터리를 봤다.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의견을 말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잘못된 걸 바로잡고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견을 말하는 모습. 우리 회사랑은 다른 분위기였다. 말은 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회사 분위기를 아는 직원들이 따라줄 리 없었다. 회의시간만 되면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끔 내가 선이 넘은 건 아닌지 걱정될 때도 있다. 상사의 말이고 나보다 경력이 많기 때문에 믿어주는 것도 필요한데,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건 아닌지. 그럼에도 내 상사는 전문가가 아니라 마냥 좋다고 하기 어려웠다. 상품군이랑 어울리지 않는 광고를 진행하고 매출을 기대하니 답답할 뿐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면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스트레스받는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내 의견을 말하고 내 의견을 거절하면 거절한 대로 일을 한다.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적당히 일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계속 스트레스 받을 순 없으니까. 받아주지 않으면 아직 뒤쳤네, 하고 넘겼고 일이 없으면 적당히 재미있는 것들을 제안하면서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럼에도 현타는 여전하다.


 열심히 한 만큼 따라오는 성취감이 없어 의미없다고 느껴질 때 번아웃이 온다고 한다. 어쩌면 나도 번아웃이  온 걸지도 모른다. 한숨 쉬는 날들이 많아졌고 불면증도 생겼으며 스트레스로 위장약을 먹고 있다. 어딜 가나 그렇다면 이미 익숙한 곳에서 일하는 게 편할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나는 내 시간이 중요하고 일을 효율적으로 잘하고 싶다. 아직 내 의견을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해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나도 여기를 떠나지 않을까 싶다. 일을 또 찾아야 한다는 사실, 그 일에 적응하기까지의 감정노동력까지 하나둘 생각났다. 일어나지 않는 일에 벌써부터 지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가짜 배고픔에 속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