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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Jan 08. 2023

내가 가짜 배고픔에 속는 이유

밥을 먹었다. 심지어 배도 불렀다. 근데 왜일까. 왜 배가 고픈 걸까. 사실 안다. 지금 이 배고픔은 가짜 배고픔이라는 걸. 나는 안다. 배고프지 않다. 머릿속에선 라면을 끓이고 있는 나와 배고픔에 괴로워하며 잠 못 드는 내가 번갈아가며 내 신경을 건드리고 있지만, 나는 배고프지 않다. 분명 배고프지 않은데 왜 배고픈 상황만 보여주는 걸까. 라면을 끓이는 것도 귀찮으니 인스타그램을 켰다. 그새 내 생각이 공유됐나. 피드에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 사진이 많았다. 갓 구운 따듯하고 바삭한 빵이 똑똑 머릿속에 노크했다. 저는 주문한 적이 없는데요. 지금 안 먹으면 식을 거 같은데 그냥 드세요. 이걸 그냥 먹어도 된다고요? 죄송해요. 저는 지금 배가 고프지 않아요. 문을 닫았다. 문구멍으로 배달원이 돌아갔나 봤더니 이걸 어쩌지 하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빵을 받았다. 아무리 배고프지 않아도 빵 먹는 배는 따로 있잖아. 냉동실에 있던 냉동 크루아상을 구워 한 입 먹었다. 어쩜 이렇게 맛있을까. 내가 생각한 따듯함과 바삭함이잖아. 새벽시간에 먹는 빵은 낮에 먹는 빵보다 더 달콤하고 맛있다. 살찌는 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지만, 유혹이 강렬해 그 소리도 음악처럼 들린다. 룰루랄라. 일단 먹고 나서 생각하자.


이 가짜 배고픔은 저녁에만 찾아오는 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다가올 타이밍을 본다. 그 마음을 잘 알지만 나는 늘 가짜 배고픔에 속는다. 뱃살이 늘고 몸이 둔해져도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이럴 때 물을 마시면 잠잠해진다는데, 물과 함께 그 마음을 내려보내기 어렵다. 그 마음은 음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라고 생각하니까. 잘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은 마음이니까. 배고픔에 속더라도 잠시의 따듯함이 필요하다면 먹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잠시의 따듯함이 소화불량으로 잠을 설치게 만들기도 하고 맞지 않은 바지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따듯한 무언가가 먹고 싶다. 언제 가짜 배고픔이 생기는지 생각해 봤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마지막 화를 달릴 때, 하루가 알차지 않을 때, 회사를 그만뒀을 때. 무언가의 끝이 보이거나 무언가의 아쉬움이 남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할 때 배고팠던 것 같다. 따듯한 음식을 먹으면 그 따듯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소화될 때까지 헛헛한 마음은 잊을 수 있었다. 외로움과 공허함의 범위는 넓다. 이는 친구, 연인, 일, 가족 등에게 나의 일부처럼 붙어있다. 그래서 내가 관계에 있어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껴 헛헛하다면 그 안쓰러운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서 난 늘 가짜 배고픔에 속는다. 그래도 매일 찾아오는 건 아니라 다행이다. 또 속아줘야 하니까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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