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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Feb 16. 2023

내가 읽지 않을 책을 구매하는 이유

헌책방, 동네 책방, 알라딘에 가는 걸 좋아한다. 구매할 책이 없더라도 심심하면 책방에 들러 눈에 띄는 책을 펼쳐보다 괜찮은 게 눈에 띄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별 수확 없이 책방을 나온다. 목적 없이 찾은 책방인데도 책을 구매하지 않으면 버스에 물건을 놓고 내린 것처럼 마음에 걸린다. 류시화의 책 <지구별 여행자>에 나오는 문구,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우연이 바쁘게 움직인다는 사실이 뭔가 로맨틱하다. 우연히 만다는 것들이 꼭 사람만은 아닐 거라 생각하기에 내가 어떤 이유로 이 책방까지 오게 된 건지, 책방엔 어떤 답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며 찾게 되는 거 같다. 뭘 찾는지 모르면서도 맘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내가 좀 더 현명했다면, 내가 찾아야 할 질문에 더 집중했다면 운명적인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에 책방을 나서면서도 계속 뒤돌아보게 된다. 


여행지에서도 시간 내서 동네책방에 가는 편이다. 관광지가 아닌 동네 구석구석을 거니는 모습이 진정한 여행자처럼 느껴진달까. 언젠가는 동네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지 서점의 큐레이션, 인테리어, 프로그램 등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갈 때도 있다. 이런 마음으로 책방에 가면 심심할 때 들렀을 때보다 오래 책방에 머문다. 빈 손으로 나올 수 없다는 각오 때문일까. 낯선 동네에서 산 책을 호텔 침대에 누워서 읽거나 버스 안에서 읽으며 좀 더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잠시뿐. 책을 펼치면 책 말고 다른 재미가 눈에 보여서 금세 책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창문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쏟아지는 잠. 이런 것들에 밀려낸 책은 집에 오자마자 책꽂이행이다. 책꽂이에 있는 책을 보면 씁쓸하게도 완독 한 책이 별로 없다. 읽다가 취향에 맞지 않아 버리기도 선물하기도 애매해서 꽂아놓은 책도 보인다. 이럴 거면 차라리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게 훨씬 현명할 텐데, 나는 왜 굳이 돈을 주고 사는 걸까. 


아마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와 이를 풀어내는 작가의 서술 방식이 부러워서 소유욕이 생기는 건 아닐까? 읽으면 간접으로나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생각을 하게 되니까. 당장 읽진 않아도 일단 갖고 있다 보면 읽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하는 것 같다. 책꽂이에 꽂힌 책만 봐도 그 책을 사던 날의 기분, 나와 몇 마디 대화 끝에 그 책을 추천해 준 사장님이 생각난다. 사진 찍어 그날의 나를 기억하는 것처럼 여행지에서의 감정을 책으로 대신 기억하는 습관이 있어 책을 버리기 쉽지 않다. 이런 마음 때문에 책을 정리하지 못하고 읽지 않은 책이 쌓여서 문제다. 물론 독서에서도 적절한 시기가 있으니까 나중에 읽었을 때 공감되는 책도 있지만 말이다. 


좋아하는 책 <경찰관 속으로> 작가가 말했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는데 저장 공간이 부족해서 동영상을 찍을 수 없다는 알림을 받았다, 품고 있는 과거가 많으면 현재를 기록할 힘이 없다, 때때로 과거를 정리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과거의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묵묵히 나아가려면 미래를 보기보다 지금을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오랜만에 책 정리 좀 해야겠다. 나와는 맞지  않은 책도 주인은 있기 마련이니, 책을 중고책방에 내놓는 것도 누군가에게 우연을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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