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킬링 디어> 원제는 '신성한 사슴의 살해'이다.
<킬링 디어>는 에우리피데스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미케네 왕 아가멤논이 실수로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사슴을 죽였다. 아가멤논이 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맏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라 하였고, 그는 고민 끝에 딸을 제물로 바친다. 아르테미스가 이를 가엾이 여겨 이피게네이아를 암사슴과 바꿔치기 한 뒤에 자신의 사제로 삼았다. 딸은 죽진 않았지만, 제물로 바친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장이 끝난 뒤 아내에게 살해당했다.
요르고스란티모스 감독은 아가멤논과 이피게네이아의 설정을 토대로 의료과실을 낸 의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이피게네이아의 설정을 이해하고, 영화를 관람하면 영화의 비현실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몰입하게 된다. 또한 아버지가 누굴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을 밑바닥까지 들춰내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소름 끼치는 동시에 불편함까지 느껴진다.
첫 장면부터 사람 심장이 나온다. 보통 동물 심장으로 촬영하는데, <킬링 디어>에 나온 심장은 동의를 얻어 촬영한 진짜 사람 심장이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심장이 뛴다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을 뜻한다. 수술을 마친 스티븐은 동료 의사와 함께 시계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마틴을 만나 그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마틴과 스티븐의 관계인지는 처음부터 밝히지 않는다.
스티븐이 의료사고로 마틴의 아버지를 죽였다. 처음 이 둘의 관계를 보면 화해가 된 상태에서 지속된 만남을 보여주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스티븐은 그의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마틴을 집으로 초대하고, 친절하게 대할 뿐이었다. 마틴 역시 스티븐을 집으로 초대한다. 이는 엄마와 좋은 관계가 되길 바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마치 죽은 아버지의 자리를 맡기려는 것처럼. 마틴이 점차 스티븐의 일상을 침범하고, 전에 비해 자주 찾아오며 스티븐의 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며 마틴을 멀리하려 하자, 그제야 마틴이 본심을 말한다.
내 가족을 죽였으니 선생님의 가족도 죽어야 균형이 맞겠죠?
첫 단계는 사지가 마비되고, 두 번째는 거식증에 걸리고,
세 번째는 눈에서 피가 나고, 결국엔 죽게 될 거예요.
누굴 죽일지 한 사람을 선택하세요.
아니면 앓다가 다 죽을 테니까요
왜 당신의 죗값을 나와 자식이 받아야 하죠?
스티븐은 처음엔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들이 밥을 먹지 않고, 딸도 다리 마비가 걸리면서 마틴의 말을 믿게 된다. 아이들은 의학적으로는 정상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과정에서 안나는 남편을 의심하고, 이유를 찾다가 스티븐의 의료사고가 주원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스티븐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보다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인지가 문제가 되어버렸다.
스티븐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사고이지만, 세 사람의 목숨은 스티븐에게 달려있다. 안나는 스티븐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아들은 자르지 않겠다던 머리카락을 자르고, 딸은 동생과 엄마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모두들 자신이 살기 위해 스티븐에게 잘 보이려 애쓴다. 누나는 동생에게 "네가 죽으면 네 Mp3를 가져도 돼? 제발, 제발 제발"이라고 말한다. 서로 안타깝게 바라보지만, 그 마음보다 자기가 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서로에게 자기가 아닌 네가 죽을 거라며 공포감을 더하기도 한다. 잘못은 스티븐이 했기 때문에 용서를 구할 거라 생각하지만, 스티븐은 선생님을 찾아 둘 중 누가 더 가치 있는지 확인하면서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게 공평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이게 정의에 가까워요.
마틴은 표정이 없다. 자신의 규칙대로 스티븐 가족을 하나씩 무너뜨리려 한다. 안나가 마틴을 찾았다. 스파게티를 먹는 마틴은 자신이 스파게티 먹는 모습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모두 그렇게 먹었다고 말한다. 돌아가신 것보다 이 부분이 더 실망스러웠다면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정의를 얘기한다. 의료사고뿐만 아니라 권력이 있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기사가 떠올랐던 장면이다.
<킬링 디어>의 카메라 촬영기법이 신선하다. CCTV로 그들을 지켜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의 뒤에서 몰래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 같기도 하다. 배우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기묘하고도 메마른 눈빛을 볼 수 있다. 스티븐은 세 사람 중 누구를 죽일지 룰렛 게임으로 운명에 맞긴다. 기괴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살고자 하는 욕망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끝까지 마틴의 비현실적인 힘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스티븐의 고민과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세 사람의 감정표현을 보여줄 뿐이다. 인간의 본성을 집요하게 꼬집는 영화를 찾는다면 <킬링 디어>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