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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눈 Apr 28. 2020

9. 퇴근

    금요일은 집에 가는 날.

    업무 걱정은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고, 이렇게 비워진 자리에 설렘을 가득 채워서 가족이 있는 진짜 집으로 향한다.


    '외롭던 날들아 잘 있거라. 비바람이 몰아쳐도, 눈발이 휘날려도, 태풍이 분대도, 나는야 간다.'  


    공항까지 버스와 두 개의 지하철을 이용한다. 버스의 거친 흔들림에서 흥겨운 리듬감 느낀다. 오래 서가는 지하철이 힘들지 않 등에 맨 가방 무겁지 않다. 부푼 마음이 몸까지 붕- 띄우는 것 같다. 발걸음이 가볍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것 같다.


    핸드폰에는 국내 항공사 8개의 앱이 모두 설치돼있다. 공항에서는 미리 발급한 모바일 탑승권으로 항공사 카운터수속 없이 공항 입구를 가볍게 통과해 들어간다. 매주 육지와 섬을 오가는 터라 짐이 많지 않고 딸랑 가방 하나다. 그렇다 보니 카운터에 수하물을 맡길 일이 없어 바로 입구로 갈 수 있다.

    공항 입구를 통과하고 보통 2~30분 후에 비행기에 탑승한다. 이렇게 비행기 출발시간에 딱 맞춰 공항에 들어선다. 이 시간보다 더 여유로운 도착은 사치다. 퇴근 전 최대한 시간을 쥐어짜 일하고 회사를 나서고 있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후 때가 맞으면 날면서 노을을 볼 수 있다.

아래도 구름, 위에도 구름, 그 사이 금구슬

    비행기에서 보는 하늘 풍경은 매 순간 다른 모습이다. 순간마다 색이 바뀌고, 모양이 바뀐다. 또 보는 각도가 바뀜에 따라 보는 마음도 바뀐다. 비행기를 아무리 자주 탄대도 이 풍경은 지루해지지 않을 것 같다.


    이륙 후 1시간 조금 넘게 지나면 착륙한다. 가방 하나 달랑 매고 탔기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공항을 빠져나온다. 버스정류장에서 급행 버스를 기다려 탄다. 달리는 버스의 창 너머로 펼쳐지는 제주의 모습을 4일 만에 다시 마주한다. 기분 탓이겠지만 제주의 하늘은 더 파랗고, 구름은 더 두텁고, 해는 더 눈부시며, 달은 더 선명하다. 또 별은 더 총총하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기다리면 곧 아내가 차로 나를 데리러 온다. 가끔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버스정류소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을 땐 한바탕 짧고 굵은 환영식이 열린다. 버스 안에서부터 아빠를 부르는 아이들의 거침없는 외침이 들려온다. 버스를 내리면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내 두 아이가 경쟁하듯 달려와 안긴다.


    '그래 너희들 덕에 이 긴 퇴근길이 하나도 힘들지 않아. 지난 며칠 우리 아이들 자라는 모습 못 본거 미안해. 이번 주말엔 아빠랑 더 재밌게 놀자!'


    금요일 저녁, 거의 항상 이런 다짐으로 주말을 시작하곤 한다. 그런데 일요일에는 거의 매번 아이들과 티격태격했던 어제오늘을 반성하곤 한다. '성질부리지 말걸. 또 못 참았구나.'  아이들을 못 본 며칠, 커졌던 애틋함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욕심도 커졌던 걸까?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나도 아빠로서 바르게 성장해야 함을 느낀다. '다음 주에는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그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리라.'하고 다시 또 다짐해본다.


    가끔 일찍 퇴근해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날에는 식사의 참맛을 맛본다. 작은 솥에서 금방 지어내어 보슬보슬하게 퍼담은 찰진 밥과 김치냉장고에서 갓 꺼내 아삭하게 씹히는 생생한 파김치가 주린 배를 메울 때 그 맛남에 다문 입안에서 탄성이 절로 다. 아내가 만들어준 밥과 반찬이 참 맛있다. 어찌 어제 먹던 구내식당의 그것과 비교가 될까. 단언컨대 일주일 식사 중 금요일 저녁밥이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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