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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Sep 08. 2016

(단편소설) 구름 위의 만찬 2화

구름 위는 지상과는 180도 다르다. 기압이 80%까지 떨어지고, 산소농도가 낮아지니까 음식의 맛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음식 속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재료들을 켜켜이 쌓아둔다. 그녀는 소고기를 마무리하고 최근 인기 메뉴인 포두부 보쌈을 만들기 시작했다. 얇은 포두부를 찜기에 쪄낸다. 증기가 모락모락 한 포두부가 여러 장 겹쳐있고, 보쌈용 야채도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려있다. 공기와 닿는 면적을 최대한 줄여서 수분이 증발하지 않도록 한다. 이것 역시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기내식 중에 소스를 뿌려 먹는 메뉴다. 그래야 물기가 덜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혼자가 되기 전 할머니와 엄마가 알려주었던 요리들을 기억 속에서 꺼냈다. 어떻게 해야 음식이 맛있어지는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것들을 넣어야 음식이 조화로워 지는지를 되뇌었다.


자신이 오늘 맡았던 음식들을 다시 한 번 체크한 그녀는 ‘디시업 방’으로 향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수공업으로 음식을 담는 시스템이다. 20여개의 긴 식탁에 7~8명이 서서 손으로 일일이 음식을 담는다. 이코노미 석, 비즈니스 석, 퍼스트클래스 석에 따라 용기가 다 다르고 양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일은 기계가 할 수 없다. 온몸을 흰옷과 모자로 둘둘 감아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는 새하얀 직원들 사이로 으슬으슬한 찬 기운이 스민다. 벽조차 하얀 그 곳에 붙은 온도계는 ‘16도.’그녀의 작은 한숨에도 입김이 퍼진다. 


공간 모서리 기둥에는 작은 모니터가 보인다.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예약손님의 숫자가 껌뻑인다. 지희는 그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숫자가 바뀔 때마다 큰소리로 다른 이들에게 알렸다. 그녀는 지희가 말한 숫자를 상기시키며 차갑게 시린 연어를 뚝뚝 잘라 용기에 담았다. 


지희는 아직 진급전인데도 마치 이미 이곳을 진두지휘하는 장수처럼 굴었다. 그녀는 훈제된 연어의 비릿한 냄새가 역겨웠지만 연어를 계속해서 담았다. 그녀는 디시업방이 싫으면서도 좋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같은 음식을 담기만 하면 되는 반복적인 일이라 좋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담기는 사랑 없는 이 음식들이 혐오스러웠다. 그녀는 끝없이 올라가는 모니터 화면의 숫자를 멀리서 바라보며 지금 이 시간이 멈춰버리기를 바랐다. 2시가 되자 교대자들이 들어왔고, 차디찬 연어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오늘 올꺼죠?


뭐? 라는 의미로 그녀는 지희의 화려한 핑크 쉐도우가 덮여진 큰 눈을 쳐다본다. 그녀의 표정 속엔 어딜? 이라는 질문이 들어있다.


-오늘 회식이잖아요. 매번 빠지고. 오늘은 꼭 와야 해요. 저 진급도 축하해 줘야죠.


5년째 일하고 있는 그녀보다 이제 막 3년차에 접어든 지희가 먼저 진급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저 이 조용하고 잠잠한 하루가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발버둥 쳐서 돈을 더 많이 번다고 할지라도 고작 얼마 안 되는 차이에 더 행복해지지 않을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저 주어진 하루 그리고 현실에 안주한다. 누군가를 책임지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지 않는 혼자의 삶. 미래를 희망과 꿈에 버무리지 않고 지금 이대로를 바꾸지 않는 것을 원한다. 여자는 요리를 사랑했고 요리를 나름 잘했지만 기내식 일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노동 속에서 의미 없는 인스턴트식품을 만드는 일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고 원했던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게 무의미 하고 욕심일 뿐이라고 되뇌었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꿈이라고.


누군가는 오해하고, 미워하고, 착각하고, 욕할 수 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평가를 신경 쓸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욘 없지만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싫은 그녀였다. 하지만 오늘도 회식에 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의심할 수도 있다. 그녀가 억울해 한다고, 더 노력한 다른 이를 축하해 줄줄 모른다고 지들 마음대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여자는 5년 동안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회식을 가기로 했다.


-진짜죠? 언니 온다고 했어요?


그녀는 짙은 쌍꺼풀에 속눈썹까지 붙여진 화려한 지희의 눈을 보며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늘 오후시간엔 집에서 목욕을 하거나 책을 읽던 여자의 오늘 오후는 달랐다. 5년 만에 처음 참석한 회식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말을 붙여준 지희의 진급을 축하하기 위해서 회식에 왔다. 허나 그녀는 그렇다고 해서 지희를 다른 직원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우연히 회사에서 말을 섞게 된 사람이라 생각할 뿐이다. 지희는 누구에게나 활기찼으며 싹싹했고 화려했으며 시끄러웠다. 여자에게 지희는 그저 말이 많은 과하게 엔돌핀을 소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할머니와 엄마가 죽은 후 시끄러운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대화도 잘하지 않았으며 손님과의 대화도 싫어 대대손손 내려온 가게도 다 처분에 버렸다. 밥알이 익는 소리, 치익치익 무언가를 볶는 소리, 촤악- 튀겨지는 소리 외에 귓가로 들리는 모든 말들을 싫어했다. 그렇게 조용하게 일할 곳을 찾아 들어온 것이 하필 음식을 만든 회사였을 뿐이다. 회식은 회사 근처 곱창 집이었다. 회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른 시간인 오후 3시. 하지만 이미 그녀가 오기 전 몇몇 회사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와우. 이게 누구야? 여긴 웬일이래?

-오늘 저 축하해준다고 왔어요.


정신 사납고 화려한 걸 싫어하는 그녀가 지희를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그녀의 대답을 늘 지희가 대신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가장자리에 앉는다. 그리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금 안심한다.


선홍색 핏기가 도는 곱창이 앞에 있다. 그 곱창의 모습이 다소 흉물스러우나 다 익고 난 뒤에 입으로 들어오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노릇노릇함과 가득 차있는 곱. 구수하고 부드러운 곱이 알싸한 마늘과 함께 들어오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모든 것들이 한 대 섞인다.


-곱창을 기내식으로 먹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러면 한국 사람만 먹을걸요.


그녀를 빼고 모두가 웃는다. 곱창이 익기 전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다. 첫째는 위생, 둘째가 창의성일 정도로 기내식은 위생이 관건이다. 절대로 곱창 같은 건 기내식이 될 수 없다. 기내식은 조리 직후 바로 배식이 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기내식은 비행기 출발 4~6시간 전에 조리를 마친다. 따뜻한 음식의 경우 72시간 이내, 차가운 음식의 경우 48시간 이내 소진해야한다. 인스턴트식품 따위가 참 까탈스럽다. 이질적인 모습으로 태어난, 위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이 곱창은 절대로 하늘 위로 갈 수 없다. 곱창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듯하다.



작가say: 네.. 그래요.. 들켰네요.. 제가 곱창을 사랑한다는 걸. 곱창은 무조건 철산역 곱창집! 사랑합니다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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