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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Sep 09. 2016

(단편소설) 구름 위의 만찬 3화

어느새 자리는 무르익고 얼큰하게 취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녀는 곱창과 물김치를 계속해서 먹었다. 이 자리에 곱창의 존재보다 더 작은 존재가 자신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우울과 안도를 반복한다. 중간에 들어온 허인식이 그녀 옆에 앉아 있다는 점만 빼면 나름 나쁘지 않다고 느끼는 그녀다. 허인식은 새빨개진 전형적인 술톤 얼굴빛을 하곤, 멀리 떨어진 지희에게 들릴 정도로 큰소리로 말했다.


-지희씨 정말 축하한데 말이야,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그 말에 옆에 앉아있던 남자직원이 아부적 멘트를 날린다. 당연히 위생, 맛 그리고 개발이지요, 했다. 그들은 사실 언제보아도 윗사람을 너무 경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다시 속이 메슥거렸다. 이미 넘어간 곱창들이 꿈틀대는 것 같아 물김치 국물을 마셨다.


-그것도 그거지만 메뉴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단 말이야. 이번에 그, 누구냐 시벌레 버거?

-시빌레 쇤버거.


그녀가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이 되었다. 그녀는 그 시선들에 당황해 고개를 푹 숙였다. 여자는 시빌레 쇤버거를 호텔셰프 때부터 좋아했지만 그가 단순노동인 기내식을 만든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녀는 시빌레 쇤버거가 성의 없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기내식을 만드는 셰프 중에서 그나마 나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다채로운 색깔로 눈으로 아이들과 아이들의 마음을 가진 어른들을 사로잡는 기내식을 만드는 셰프. 다양한 맛을 추구했던 그녀의 어머니처럼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한 시빌레 쇤버거는 재미와 맛 그리고 상상력과 정성까지 더하는 그런 기내식을 선보였다.


허인식이 험험- 헛기침과 함께 그 시선을 자신에게 가져왔다.


-그래 시빌레 쇤버거. 웬 패스트푸드 이름 같은 그 요리사가 작품을 만들었단 말이야. 이젠 기내식도 작품이 되는 시대가 왔어. 우리 기내식에도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새우 넣은 뇨케티 파스타 샐러드를 뭐라고 지었더라.


허인식은 그녀를 팔로 툭툭 치면서 말해보라고 종용했다. 셰프 이름도 알고 있는데 음식 이름도 알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녀는 설레는 이름에 괜히 아는 척한 것을 후회했다. 그녀는 그녀에게 다시 포커스 된 시선들을 거두며 작게 읊조렸다.


-나비의 꿈..

-그래 그거! ‘나비의 꿈’이니 ‘감자 일몰’이니 이름에 스토리를 담아야 잘 팔리는 시대가 온 거라고. 역시 비행기는 못타봤어도 뉴스는 보나봐?


그녀 빼고 모두가 웃었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녀 밖에 없을 거란 말에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남은 네손가락으로 꽉 쥐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돈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굳이 여행이라는 걸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을 왜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해야 하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이곳에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데 굳이 인스턴트식품 같은 기내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비행기 좀 태워죠? 첫 여행으로 홍콩 보내줘?


허인식은 그 말을 하면서 두툼하게 살이 오른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쓸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감쳐물었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눈앞의 곱창이 철판에 눌어붙고 있었다. 그 공간에 있던 곱창 냄새가 그녀의 옷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지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반동에 앉아있던 파란색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지희는 두 손으로 테이블 위를 쾅- 하고 강하게 한번 내리쳤다. 그리곤 허인식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펼쳤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법?


지희의 목소리는 술에 의해 많이 꼬여있었지만 분명하게 귓가를 때렸다. 가운데 손가락은 굽혀지지 않은 채였고 그녀를 제외한 모든 이가 당황으로 얼룩져 지희를 말릴 틈이 없었다.


-그거 너 같은 새끼랑 홍콩 가는 거잖아.


지희는 작은 비웃음에서 큰 폭소로 소리를 변경했다. 허인식은 철판 바닥에 붙어 타버린 곱창보다 더 딱딱해진 굳은 모습으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까지 양껏 마신 소주가 증발해 버린 듯 했다. 술 때문에 원래도 붉었던 허인식의 얼굴이 김칫국물보다 더 달아올라 있었다.


-그 돼지 같은 몸으로 홍콩은 무슨, 제주도도 못가 더만.


정적이 흐르다가 양옆에 있던 직원들이 서있는 지희를 잡고 말렸다. 곱창은 그새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완전히 검게 그을리고 있었다. 다들 똑같은 인간들이라며 옆에서 말리는 직원들을 밀쳐낸 지희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푸릇푸릇한 초록색 고추를 집어 들었다.


-적당히 해. 이것보다 작은 주제에!


지희는 그 고추를 된장에 푹 찍더니 우걱우걱 씹었다. 그녀는 지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희 자신이 원해서 허인식과 관계를 가진 게 아니었나? 왜 화를 내는 거지? 그 순간 여자는 울렁이던 속이 잠잠해졌다. 어지러웠던 머리도, 답답했던 명치가 편안해, 했다. 이율배반적인 몸뚱아리였다. 그녀는 단지 시끄럽고 화려해서 지희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자신보다 먼저 진급을 한 게 배알이 꼴렸을지도 모른다. 늘 기내식 자부심으로 가득해 열변을 늘어놓던 허인식이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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