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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Sep 10. 2016

(단편소설) 구름 위의 만찬 4화

4:00 또랑또랑한 알람에 그녀가 눈을 뜬다. 밖은 아직도 새카만 밤이지만 창문을 열고나니 시원한 새벽 공기가 아침을 깨운다. 그녀는 커피포트에 커피를 내렸다. 하루아침의 시작으론 커피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부엌에 있는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었다. 4:15분 개운해 보이는 몸짓으로 화장실로 간 그녀는 4:20분 화장실에서 나와 화장을 시작한다. 화려한 핑크 빛 펄 쉐도우가 그녀의 눈에 안착한다. 체리를 머금은 듯한 빠알간 립스틱이 그녀의 입술위에 칠해진다. 4:50분 집 밖으로 나온 여자는 4:56분 회사에 도착한다. 그녀는 큐빅이 박힌 파란색 머리망을 하고 흰색 모자를 목까지 덮는 위생모를 착용한다. 진공청소기, 먼지제거 테이프를 거쳐 에어 샤워기까지 통과한 후에야 그녀가 담당하는 핫 키친 파트로 들어선다.


- 어~ 좋은 아침~


허인식이 철재 문을 통과한 그녀에게 인사를 한다. 그녀는 입은 멈춰 있는 채 눈웃음으로 화답하며 네 좋은 아침이에요, 했다. 그러자 허인식이 다가와 그녀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잘 잤어?, 했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덕분에요, 했다. 그녀는 하얀 옷은 겹겹이 입은 직원들에게 오늘 만들어야 할 메뉴와 양을 말했다. 그녀는 오늘 메뉴와 양을 확인한 뒤 디시업방으로 향했다. 오슬오슬한 공기 속 하얀 벽 한쪽 구석 모니터에 숫자가 계속해서 바뀐다. 그녀는 모니터를 확인하며 일렬로 서서 손으로 음식을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해야 되는 양이 많으니까 파이팅해요, 우리.


그녀의 입에선 줄지어 서있는 직원들을 향한 응원의 멘트가 나왔다. 차가운 방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디시업방을 나갔다.


-지희년 보다 더해 저년은, 아주 소름이 끼친다니께

-그러게나 말이에요. 지희씨가 회사를 관둔 것도 있지만, 이번에 저 여자가 진급한 건 십중팔구 허인식이랑..


그때 다시 문이 열렸고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두 팔을 휘저으며 앞으로 가더니 모니터 옆에 놓여 있던 검정 펜을 집어 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제가 펜을 두고 가서요, 했다. 기시감이 한기처럼 느껴지는 디시업방 안엔 정적과 눈이 굴러가는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핫 키친과 콜드 키친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메뉴들을 체크한 후, 퇴근 전 올려야할 보고서를 쓰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 벽 초록색 게시판에는 온갖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녀는 보고서를 쓴 뒤에 게시판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개월 전 회식이후 지희는 회사에 오지 않았다. 차마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겠지, 그래서 회사에 못 왔겠지 생각할 뿐이다. 여자는 조용해진 환경에 기뻐하며 미소 지었다. 보고서를 쓰던 중 무수한 종이들이 들러붙어있던 게시판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그녀는 게시판으로 다가가 떨어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 종이를 여자는 보이지 않는 입으로 조용하게 읽어 내려갔다.


- 퓨전 기내식 메뉴 공모전..


종이에는, 이메일을 통해 출품 레시피를 접수 받고 공모된 레시피 중 우수작 10개를 선정해 출품자가 직접 레시피를 조리하는 형식으로 본선을 진행되는 공모전이라고 적혀있었다. 출품된 메뉴는 세계 아름다운 기내식 1위를 차지한 ‘시빌레 쇤버거’ 밀레니엄 루트 호텔 총주방장이 직접 심사를 하며 공모전 1등에게는 부상으로 유럽 왕복 비즈니스 항공권이 제공되고 유러피언 스타 시빌레 쇤버거 셰프와 직접 만나 요리에 대한 그의 비전을 듣는 멘토링 기회도 제공된다고 큼지막하게 써져 있었다.


그녀는 이 내용을 두 번 세 번 읽고 또 눈으로 읽었다. 그녀의 눈에는 시빌레 쇤버거라는 셰프와 함께하는 멘토링이란 단어가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죽기가 두려워 살았었다. 바꾸어 생각하면 살고 싶었다. 여자는 잃을게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소유하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허나 자신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내재되어있던 욕망들이 스믈스믈 벌레처럼 올라왔다. 하루를 살아야하는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무기력하고 힘들었던 삶, 단하나 놓을 수 없었던 음식이라는 이름을 마주하기로 했다. 여자는 이것이 자신의 손끝으로 자신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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