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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Sep 11. 2016

(단편소설) 구름 위의 만찬 5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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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DDM 빌딩 18층, 많은 기자들 앞에 서있는 여자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들고 일어섰다. 그녀는 비행기 내에서는 높은 고도로 인해 미각이 둔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입맛을 돋울 수 있는 향과 맛으로 메뉴들을 구성한 점이 이번 기내식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 전채 요리로 이탈리안 전통의 맛을 한국식으로 모던하게 재해석한 ‘파르메산 치즈를 곁들인 제동한우 카르파치오’ 등을 즐길 수 있고, ‘청양 고추와 매운 돼지고기 살라미가 들어간 가르가넬리’로 청양고추 특유의 매콤한 맛을 살린 파스타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메인 요리로는 신선한 채소에 구운 잣과 바질 잎을 올리브 오일에 버무려 만든 페스토 드레싱을 곁들인 ‘농어 필레, 후식으로는 쑥 티라미수로 구성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시빌레 쇤버거는 기내식 개발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손님들의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이 요리가 지상에서 조리된 후 항공기 기내에서 최소한의 조리 공정만을 거쳐 서비스되는 제한적인 조건에도 훌륭한 품질 유지가 가능한 메뉴라고 말했다. 시빌레 쇤버거는 이 메뉴가 그런 메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시빌레 쇤버거의 말을 듣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낱 인스턴트식품이라고 여겼던 기내식을 자신이 만들게 될지 몰랐다는 듯한 그녀의 얼굴은 씁쓸하면서도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 증조할머니께서 조선시대 마지막 주방 상궁이라고 하시던데 사실입니까?

- 네, 맞습니다. 증조할머니께서 궁중 조리인 이셨고 할머니, 어머니께서 대를 이어 음식장사를 하셨습니다.


그녀의 입 꼬리가 비릿하게 말아 올라갔다. 자신도 그 피를 이어받은 것 같다며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수상소감을 말한 후 고대하던 시빌레 쇤버거와 이야기를 하는 시간.

그녀는 시빌레 쇤버거에게 인사를 한 뒤, 입을 뗐다.


-왜 기내식을 선택하신 거예요?


정말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시빌레 쇤버거에게 물었다.

그러자 시빌레 쇤버거는 하늘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음식이잖아요, 했다.


-아..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준비해둔 질문들을 연이어 물었다.


-호텔 음식도 하셨잖아요? 호텔 음식과 기내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호텔 음식이 라이브 음악이라면 기내식은 녹음한 음악을 라이브처럼 들려줘야 하는 일이죠. 어쩌면 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 말을 듣고 여자는 마음속 잔잔한 파문이 일며 무언가가 부서짐을 느꼈다. 하늘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음식. 그 말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며칠 뒤 회사에 휴가를 낸 그녀는 여행을 갈 짐을 챙겼다. 커다란 캐리어에 여벌의 옷과 속옷을 넣었다. 세면도구들과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욱여넣곤 뚜껑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여권을 챙긴 여자는 집을 나왔다. 하늘은 어두웠고 무서웠다. 그녀는 공항까지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공항버스 안은 여행객들로 화려하고 활기찼다. 들떠있는 공항에선 행복감이 가득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둥둥 떠다녔다. 여자의 입술은 긴장감으로 잔뜩 짓눌리고 뜯겨 있었다.


- 손님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잠시 후 이륙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매셨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Ladies and gentlemen. We will be taking off shortly. Please make sure that your seat belt securely fastened. Thank you.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더니 곧이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렇게 하찮게 생각했던 첫 하늘 여행길에 올랐다. 지상 위 구름과 파란 하늘이 일직선상으로 펼쳐지자 여자의 눈에선 생동감이 올라왔다. 잔뜩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자 그녀는 나른함을 느꼈다. 그녀는 도착할 곳의 정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어디를 둘러볼지, 무엇을 먹을지. 그녀는 사소한 행동들 속에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알아갔다. 그녀 옆에는 5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아이 때문에 시끄러운 비행이 될 것 같아 여자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있는 그대로를 즐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 고기와 생선 중에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손님?


그녀가 여행 정보에 대해 검색을 하는 동안 승무원이 다가와 그녀와 아이 엄마에게 차례대로 물었다. 그녀는 고기로 주세요, 했다. 아이 엄마는 자신은 생선을 달라고 했고, 아이는 아동식으로 달라고 말했다. 이윽고 기내식이 그녀의 눈앞에 놓여졌다. 처음으로 하늘에서 먹는 기내식에 그녀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여자는 그동안 자신이 기내식을 한낱 인스턴트식품에 비교하며 비하했던 것을 후회했다. 눈앞에 있는 음식은 너무나 훌륭했고, 입안에 넣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로지 하늘 여행길에 오르는 여행자만이 즐길 수 있는 음식, 하늘 위에서만 느끼는 밥상에 그녀는 여행의 설렘이라는 양념이 가득 뿌려진 기내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자신이 구름 위의 만찬을 즐기는 것이 꼭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여자는 여행의 일부인 이 구름 위의 만찬을 느긋하게 음미했다.



작가 say: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글 때문에 기내식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요. 참, 신기하고 맛있는 기내식들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늘 소설을 쓰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주인공이 마치 제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글을 마칠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듭니다. 연애소설도 그리고 단편소설 주인공도 어쩌면 제 한 부분의 조각일 듯해요. 조각조각 글들을 맞춰 더욱 발전하고 매력 있는 글쟁이가 되고싶네용 :) 주저리주저리.. (결론은 제 부족한 습작을 읽어쥬서서 감사하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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