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파먹기, 집밥의 소중함은 물론, 외식의 특별함도
냉장고 파먹기로 집밥의 소중함과 외식의 특별함을 누립니다.
냉장고 파먹기
집밥의 소중함은 물론, 외식의 특별함도 일깨우다.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하면서 우리 부부는 묘한 동질감을 가진 전우가 되었다. 냉장고가 가득 차면 답답함을 느낀다는 것, 반대로 냉장고가 텅장고가 되면 묘한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냉장고를 향해 파고드는
냉파의 전우애랄까?
일주일간 두 녀석들의 생일이 있던 터라 냉장고에 뭔가 가득 찬 느낌을 받았다. 막상 먹을거리는 없는데 뭣이 이렇게 가득 찼을까? 그러다 주 중에 거듭된 냉장고 파먹기 실천 중! 이제는 점차 먹을 반찬이 없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코스트코 탈퇴를 겸하며 마지막 대형 마트 장 보기에서 샀던 메추리알, 그리고 굴 한 팩이었다. 장보고 오자마자 남편이 굴무국을 끓였고, 나는 일요일 메추리알 조림을 만들었다.
두 녀석들은 단짠의 절정 체인 이 장조림을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이미 작은 놈은 소고기 된장국에 쓱쓱 밥 비벼 밥 한 숟갈에 김장 김치 한 점 올려 폭풍 흡입으로 밥 두 그릇을 마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입으로 하나, 둘, 셋, 넷, 몰래 야금야금 집어먹는다. 큰 아이는 뒤늦게 점심 상을 차렸는데 메추리알 조림에 있던 양념간장에 밥 비벼 먹으니 정말 맛있단다. 이 녀석은 메추리알 조림으로 밥 두 그릇을 클리어했다.
남편과 내가 만든 음식이
아이들 입으로 오물오물
맛있게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집밥의 소중함을 느낀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한 남편과 함께 냉장고에 먹고 남은 소량 반찬들을 양푼이에 투하했다. 큰 아이 생일날 만들었던 시금치나물, 민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왔던 미니 깍두기, 등등 소량으로 남은 반찬에다 고추장+참기름+계란 프라이+김가루만 꿀맛 비빔밥이 되었다. 어느새 그만큼 냉장고에 있던 반찬 용기도 한가득 싱크대에 쌓였다. 나는 싱크대 수납장에 반찬 용기가 가득 차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만큼 우리 집 냉장고는 텅장고가 되었을테니까.
그렇게 설거지를 다 끝내고 나서 저녁쯤 남편이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냉장고가 텅 비었네.
텅 빈 냉장고만큼 마치 우리 부부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후련함을 느낀다. 우리가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하면서 집밥의 소중함은 물론, 냉파를 향한 전우애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온갖 핑계와 변명으로
당연했던 외식이
이제는 특별함으로
오랜만에 외식하고 집으로 향하던 어느 날 밤,
바깥바람이 추워 아빠 등에 업혀 가던 막내 민이. 이 녀석도 부쩍 크는 것 같아 아빠 등에 업힐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민이가 너무 무거워서 두 팔로 안지 못한다. 겨우 등에 업힐 수는 있다.
그런데 하필 민이 외투에는 모자가 없어서 귀가 시려울 것 같아 모자를 씌웠다.
어떻게?
아빠 옷에 달려있던 모자를 반대로 뒤집어 거꾸로 씌워 업혀있다는 말씀! 앞이 보일랑 말랑 하니 이녀석은 뭐가 그리 웃긴지 또 깔깔깔 넘어간다.
이 모습이 너무 웃겨서 몰래 사진으로 남겼다. 배부르게 외식하고 기분 좋게 취한 밤,
두 녀석들과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이것 또한 특별하다.
예전에는
밥이 없어서,
피곤해서,
퇴근이 늦어서,
밥하기 귀찮아서,
뭐 해 먹을지 몰라서,
맞벌이하면 다 그러니까,
온갖 핑계와 다양한 변명으로 외식이나 배달음식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평소 냉장고 파먹기로 집 밥이 이어지고, 가끔 하는 외식은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귀찮다는 이유로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마음 저 한구석에는 이달 식비도 카드값도 만만치 않겠다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자책감도 덩달아 손에 들고 오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외식을 향한 특별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로 같은 음식을 향유한다는 든든한 식구라는 이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