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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남편이 우연히 내게 흰머리를 발견했다며 몇 가닥을 뽑아줬다. 모든 인간은 세월이 지날수록 늙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섭리는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깨닫게 되니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놀란 가슴에 인터넷에 '흰머리'라고 검색하자 흰머리는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정상적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내 나이 고작 삼십 대 중반인데 벌써 흰머리가? 한동안은 충격에 휩싸여 헤어나오질 못했다. 흰 머리카락의 우연한 발견은 오롯이 나의 노화 과정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작년에 같은 워킹맘인 직장 동료가 내게 수줍은 고백을 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동료의 신체 이야기였다. 과장님의 머리카락 겉에는 흰머리가 없지만, 안쪽으로 흰머리가 많아 더운 여름에도 머리를 묶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를 묶으면 귀 뒤편에 집중된 흰 머리카락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여자 과장님은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작년 여름에도 단 한 번도 머리를 묶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긴 생머리를 고수하며 긴긴 여름을 지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흰 머리카락을 반기는 이가 있을까? 사람들은 노화의 상징인 흰머리의 흔적을 어떻게든 지우려고 감추려고 애쓴다. 흰 머리카락을 골라내든 혹은 염색으로 진행 중인 신체 변화를 감추려고 노력한다.
사실, 고백하건대 작년에 직장 동료의 고백까지만 해도 흰머리는 타인의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 젊다'며 소심하게 자위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만은 이내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이틀 전 남편이 이번에 또 흰 머리카락을 발견했다며 나의 두피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남편은 몇 번이고 흰 머리카락을 뽑아냈다. 마치 원숭이 두 마리가 털 고르기로 애정 표현을 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자세로 말이다.
남편 손에서 내 손으로 길고 하얀 머리카락이 자꾸만 한 가닥씩 쥐어질 때마다 내 머리가 백발노인으로 금세 진행되는 건 아닐까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빛에 반짝이는 흰 머리카락을 보자 당장 할머니가 된 마냥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남편 손에서 확인되는 노화의 증거가 이렇게나 많다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 PICNIC_Fotografie, 출처 Pixabay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마흔 넘은 남편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던 나였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남편도 신경이 쓰였는지 흰 머리카락을 뽑아달라고 했다. 처음과 달리 한두 가닥이 아닐 정도로 늘어나게 되자 순리를 인정하듯 지금은 뽑아달라는 말이 없다. 자연의 섭리를 아니, 지나온 자신의 인생 역사를 인정하는 것일까? 겪어 보니, 그때의 남편 마음이 이해되었다. 남편보다 여섯 살 어린 나는 삼십 대 아줌마라고 농담으로 남편을 노인 취급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아내였을까?
한동안은 남편이 나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 줘야 할 듯하다. 지나온 내 인생의 역사를 실감하면 나도 자연스럽게 흰 머리를 숨기든 받아들이든 할 테지.
아이들을 커가는 만큼 상대적으로 우리 부부는 늙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우리 부부의 눈가 주름도 늘었고 젊음도 사라지는 중이다.
두 아이를 낳고도 유지되었던 미혼 시절 몸무게는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손실한다더니 자칫 방심하면 훌쩍 넘어선다. 그동안은 체중을 줄이기 위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다짐했건만,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미용을 위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건강보험 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 검진을 받았었다. 갑자기 갑상선 의심 결과가 나타나 추가 정밀 검사를 받으셨다. 수술이나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이상 없음으로 판정받자 가족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부모의 건강 또한 자식에게는 큰 자산은 물론 행복이 되지 않던가?
흰 머리를 발견한 이후 나의 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비록 늙어간다는 서글픔은 당분간 받아들여야겠지만, 이젠 나를 위한 미용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건강을 찾아야겠다. 나는 건강하게 늙고 싶으니까.
원본 출처 링크 : https://blog.naver.com/keeuyo/221603346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