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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t to Frame Aug 07. 2016

[Cine]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

미스터 노바디 (Mr.Nobody,2009)


주사위 놀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여기에서 신은 자연의 섭리, 주사위 놀이는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세계가 원인에 따라 결과가 단일하고 확정적이며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인과관계를 철저히 분석하면 현재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여겼다. 


        같은 시기 양자역학은 아인슈타인에게 반기를 들었다. 양자역학은 확률론을 기초에 둔다. 확률은 결정된 것이 아니다. 수차례의 결과로 얻어지는 느슨한 법칙일 뿐이다. [미스터 노바디]는 양자역학에서 파생된 평행이론, 초끈이론을 영화의 바탕에 둔다. 생소한 과학 이론들은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현란한 편집으로 설명된다. 설명한다기보다는 소개하는 것에 가까운 이러한 시퀀스들은 영화가 주사위 놀이를 긍정하는 선언이다.


      초끈 이론이 무엇인지, 평행이론이 무엇인지 등 난해한 과학이론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에 관객이 집중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주인공 니모의 삶과 주사위 놀이(우연의 세계)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9개의 사랑 


  보통 과학은 전문가들의 것으로 생각된다. 하드 사이언스의 대표 격인 물리학은 더욱 그렇다. 게다가 양자역학은 현대 과학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삽입된 강의 장면이나 상징적인 은유로 초끈이론이나 평행이론은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더욱이  2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이 난해한 이론을 한 사람의 인생과 연결시키는 일은 영화의 작업은 많은 논리적인 공백을 낳는다. 



      영화는 공백을 메우기‘사랑'을  적극적으로 내세운다. 가장 보편적이고 거부감이 없는 정서여 서다. 주인공 니모의 삶은 선택에 따라 세 개로 나뉜다. 세 가지 선택에서 다시 파생되어 만들어진 총 9개의 삶. 니모가 선택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랑’이다. 이러한 설정은 개인의 삶과 과학 이론 사이에 빈약한 논리적 인과관계에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중간에 삽입된 상징과 은유를 읽지 못하더라도,‘사랑'의 정서만 느낄 수 있으면 관객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미스터 노바디] 속 '사랑'의 정서는 측량되고 계량화된 성격을 띤다. 니모의 삶을 나누는 첫 분기점은 세 여성이다. 이들은 평면적이다. 1번은 지고지순한 첫사랑, 2번은 신경증적이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사랑, 3번은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공허한 사랑. 


      영화는 이러한 선택들 사이에 나름의 위계가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정신적 욕망에 충실한 선택일수록 니모의 감정은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경제적인 조건과 정신적 욕망 사이에서 움직이는 ‘사랑’ 코드는 끊임없이 재탕되어 온 이야기이다. 정신적인 가치를 막연히 우위에 두는 일은 익히 접해온 서사의 답습이다. 영화는 개의치 않고 식상한 길을 다시 걷는다.


 니모의 선택의 기준이 되는 세 여인은 이야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미스터 노바디]는 본질에 다가가는 게 아니라, '사랑'을 편의적으로 활용하는데 그친다. 이는 선택에 있어 우열을 가리는 것을 거부하는 영화의 태도와 충돌한다. 또한 9개의 사랑, 9개의 인생 그 이상을 관객이 상상하고 질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하고 만다.  '사랑'을 그리는 모습은 [미스터 노바디]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무너지는 세계 


      2092년, 죽음을 앞둔 118세의 니모. 인터뷰를 하는 기자에게 말한다.


 "지금 순간도 모두 가짜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순간은 아홉 개의 니모의 삶 중 어떤 것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인가.  아홉 중 하나가 연결이 되어 있겠지만, 영화 속 숨겨진 설정들이 연결선 역할을 하고 있을 테지만. 몰라도 크게 문제가 없다. [미스터 노바디]는 시종일관 그랬던 것처럼 논리적 공백을 메우며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료하게 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니모가 죽음을 맞이하며 세계는 되감아진다. 9가지 이야기는 중간중간  끊어졌지만, 관객은 나름대로 받아들인 원인과 결과를 통해 떨어졌던 이야기를 합치고, 다른 이야기들은 걸러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은연중에 판단해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관객은 영화를 보며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는 영화 초반의 선언을 부정하고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차근차근 구축되어온 인과의 세계를 무너진다. 필연적인 인과 관계로 이루어진 세계가 무너지는 것은 사실 공포스럽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로 가득한 혼돈의 상황은 인간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더욱 여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혼돈 속에서 웃는 얼굴들을 클로즈업한다. 무너지는 세계 앞에서 영화는 웃음을 권하는 것이다. 삶 속에서 선택들은 재단되고 원인과 결과의 자리에 놓인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하기를 주저하고, 스스로를 제약한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세상은 그저 뒤죽박죽일 뿐이데. 영화는 삶에 닥치는 우연에 대한 두려움은 뒤로 미뤄두고 우연이든 필연이든 삶을 긍정하자고 말한다. 


      흩어졌던 담배연기, 뒤섞인 케첩들이 다시 질서 정연한 상태로 돌아간다. 무질서로 여기고, 정돈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일들이 역설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연을 긍정하는 일은 곧 삶을 긍정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연 아래에서 옳고 그름과 같은 절대적 가치 기준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래서 우연을 긍정하면 선택을 망설이고 피할 필요가 없어진다. 제각기 갖는 좋고 나쁨을 기준으로‘좋음’을 향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미스터 노바디]는 그러한 태도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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