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싫은 연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즐 Dec 15. 2019

솔직한 욕설

아직까지 하지 못했던 말


한때 나는 입이 매우 걸었는데, 지금도 한번씩 화가 나는 메시지를 받으면 뭐라고 씨발아? 라는 말이 음성으로 먼저 튀어나온다. 뭐라고 개새끼야? 라는 말을 할 일이 없어졌던 것은 내가 아팠던 동안에 그 정도로 사교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의 입은 저절로 얌전해졌고 대신 화가 나면 영어로 말을 하는 습관이 더 강해졌다. 외국어라는 것은 하나의 여과 과정을 필요로 한다. 프랑스어는 욕을 하기엔 별로 적당하지 않은 언어인데, 내게는 그 구조가 명징하고 단순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은 뼈대로만 집을 짓는 것과 같으므로, 최대한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되었다. 프랑스어로 말을 하는 것은 잎새로 덕지덕지 붙인 집을 짓는 것 같고, 한국어는 그냥, 구름을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에 와서는, 그에게 너는 정말 개새끼였어, 라고 웃으면서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나에게는 정말 함부로 굴었던 사람이었다고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고 싶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로,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이, 그 자체로 그런 느낌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물론 아무 소용이 없다. <겨울왕국>의 트롤들도 말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그리고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에 대해 굳이 바뀌기를 기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역시 한번은 말하고 싶다. 여전히 나의 몸에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유전자가 남아 있기 때문에, 내가 놓쳤던 그 많은 기회들에 통탄하는 유전자들을 대신해서, 말하고 싶다. 그때 헤어져야 했어, 그때 화를 내야 했어, 그때 공격을 해야 했어, 라고 나를 비난하는 유전자들은 오늘도 억울해서 가슴 언저리에 갑갑하게 모여 있다.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분명 서로에 대해, 적어도 나에 대해 이상한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친구이자 선배로서는 좋은 사람인 것은 틀림없고, 결국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ㅡ 결국 나에게는 굉장히 좋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 오해를 그냥 넘겼다. 네가 먼저 나한테 꼬리를 쳤잖아, 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고 너무나 놀랐다. 역시,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단지 내 말은 그가 처음부터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혹은 그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 나이 차이 때문에, 그는 어른이고 나는 아이이기 때문에, 그 별 것 아닌 몇 년의 세월 차이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언제나 모든 선택권을 주도하고 있었다.


먹는 것과 듣는 음악 따위는 사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보는 영화까지도 괜찮다. 나는 내 입맛이 보편적이지 못한 것을 알고 있고, 거의 모든 취향의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을 새로 알게 되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그런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나는 것이었다. 나는 한번쯤은 차 안에서 무슨 음악 들을래? 라고 물어보는 사람을 원했다. 돌이켜 보니 술을 마시면서 한 번쯤은 네가 좋아하는 음악 하나 듣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의 절반 이상은 될 것 같은데 한 번도 없다는 것이 더 놀랍다. 나는 그의 저녁 세계에서 술과, 음악과, 영화와 동급의 객체였을까?


내 자신을 지나치게 격하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니, 아니, 이런 것도 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아직 나에게는 거의 삼년에 가까운 상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욕을 하고 싶고, 그런 상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