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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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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Dec 14. 2019

허무한 끝의 뒤편


보통 연애가 끝나면 잘 지내길 바란다, 라든지 비난할 생각은 없다, 라든지 그저 잘 안 맞는 사람이 만났을 뿐, 이라고 무마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라는데 나는 연애가 정상적인 형태로 끝난 적이 없어서 그런 식의 마무리가 얼마나 보쳔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방적인 단절과 사라짐으로 끝나는 것이 과연 연애였던가,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잘 지내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이 무심한 회색 지대로 돌아와, 그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분노를 터뜨리면서, 잘 안 맞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 하나밖에는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 맞지 않는다, 라는 말로 핑계를 대는 것은 어쩐지 공평하지 못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실험하는 미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로서는 최선을 다해 사랑을 표현했다. 오 내지 육의 마음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으므로 구에서 십, 심지어 십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굴었다. 만약에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칠을 갖고 있을 때 칠 정도 표현하는 것이 족하다고 믿는 사람과 오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팔과 구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믿는 사람의 만남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 표현을 인정할 것이다.


나는 영에서 시작해 천천히, 노력하여, 꾸준히, 대체 왜 그렇게 노력했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육 내지 칠, 때때로 팔까지 올라갔던 반면 그는 칠점오에서 시작해 결국 사에서 계속 머물렀던 것 같다. 칠점오의 삼개월 이후 나머지 이년 칠개월 동안 내 일기는 온갖 비탄으로 가득차 있다. 헤어져야지, 그만해야지, 이제 그만 만나야지, 이렇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않아야지, 라는 후회와 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왜 그러지 않았는지 물어본다면 그렇게 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나는 익숙한 상황과 안정을 필요로 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번 대답한 적이 있었다, 내가 관계에서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안정성, stability, stabilité. 부연설명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는 짓을 하지 않는 것.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반드시 저녁에는 돌아오는 것. 죽거나 아프지 않고, 죽을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는 사람의 그러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없는 그 단어가 어떻게 다가갔을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모든 경우에 있어, 나는 그저 그가 최악의 형태로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가능성과, 최선의 형태로는 이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능성만이 결국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나는 이미 끝났다는 가능성과, 만의 하나로 내가 안정성을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너무나 명백하게 나는 혼자 예전에 내가 머물던 그 회색의 지대에 돌아와 있고, 그에 대해서는 오로지 억울함만이 남아 있으며, 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움을 갖고 있다.


그 많은 순간에 나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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