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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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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Dec 14. 2019

시작되기 전

연애 이전에


어처구니없지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들은, 그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은, 연애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떠한 형태의 애정을 불문하고, 남녀를 상관하지 않고 죽거나, 혹은 이미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혼자 죽거나 둘이 살아남았고 그 가운데 회색 지대는 전혀 없이, 오로지 나만 남아있는 셈이다.


내가 가장 사랑한, 지극히 사랑한,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어느 낯선 도시에 숨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지하철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많은 환승역 플랫폼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 그 소매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꿈을 꾼다. 나머지 꿈들에는 연예인이 나오는 도중에 그 꿈은 가장 현실적이고 손에 잡힐 듯 생기 넘치는 형태로, 탱탱한 물방울처럼, 살아 있다. 그리고 서로 애매한 관계의 그와 또다시 나 혼자 애매한 관계의 그를 남겨두면 더 이상 사랑했던 시람의 목록은 만들 수 없다. 아니, 죽은, 남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살아있다고 믿는 너, 그리고 누구의 눈에도 살아남아 이제는 퇴색되어 있는 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릴 수 없다. 나는 별로 많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냥 이 사람과 저 사람과 그 사람들을 이래저래 만났으며 그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나에게는 나의 공간, 나의 고통, 나의 변덕, 나의 취향, 나의 것들이 그리도 중요했을까? 오래지 않아 나는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대신 그냥 그들에게서 사라졌고 나의 회색 지대로 돌아왔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심한 상처를 주는 방법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로서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방법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의 나쁜 유전자가 허락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차라리 즐거움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나쁜 유전자가 한번씩 몸을 꿈쩍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알려오는 신호를 받는다. 나 역시 타의적으로는 두 번, 자의적으로는 몇 번 죽을 뻔 했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을 인생의 덤으로 생각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나쁜 것들과 좋은 것들, 색이 진하고 향이 강하고 아주 지독했던 것들을 상당수 잃어버렸다. 애정의 강도, 중독의 세기, 그런 것들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사람이 그 지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그토록 열심히 했던가, 간혹 다시 돌이키는 순간이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영화를 보다 보면, 몸을 움직이다 보면 그 한정적인 중독의 세계를 다시 찾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사랑했던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찾지 못하리라,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다섯만큼 사랑할 때 열만큼 사랑한다고, 일곱만큼 사랑할 때 열둘만큼 사랑한다고, 육십만큼 사랑할 때 백십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형태가 아니었으므로, 어리석은 나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대신 상처를 입는 사람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멍청한 짓이었다, 삼 년 동안 내가 내 스스로 속엣것을 무참히 짓밟고 무시하면서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결국 나는, 이렇게 십 대의 마음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나는 그를 사랑한 적이 없었음을, 나의 노력은 어디에도 가닿지 않았음을 참, 괴롭게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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