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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an 27. 2020

장거리 비행과 애드 아스트라

그리고 지금은 남반구에 왔다



나는 비행기를 아주 무서워한다. 비행기는 내게 나의 힘으로 도저히, 절대,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고 또 타개할 수 없는 막막하고 압도적인 상황의 상징이다. 좁은 공간에 갇힌 채로 난기류가 오면 난기류가 오는 대로 견뎌야 한다. 지루함을 이길 길이 없다. 엔터테인먼트 기기가 제공되지 않는 비행기, 그러니까 어정쩡한 거리를 비행하는 어정쩡한 크기의 비행기에서는 정말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핸드폰에 저장된 몇 개 되지 않는 음악을 반복해 듣고 재미 없는 전자책을 읽곤 한다. 하지만 전자책의 재미도 음악의 감동도 절반으로 줄어든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공간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지간한 장거리 비행, 여섯 시간 반 이상의 비행 거리를 다니는 대형 비행기는 대부분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어서 지루함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대체로 잠은 자지 못한다. 대신 영화를 보는데, 새로운 영화에는 별로 끌리지 않는다. 집중력 역시 긴장하는 탓인지 반감되기 때문이다. 귀로 틀어놓을 수 있는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기내식을 먹고 음료를 마셔도, 승무원의 삶을 상상하거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공항에 내린 후 어디로 갈까 상상해 보더라도, 비행기가 급작스럽게 흔들리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꼼짝없이, 비행기에 물리적으로 부착되어 있다. 비행기의 바퀴나 엔진, 날개처럼 나는 비행기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땅을 떠나는 순간부터 다시 땅에 내리는 순간까지 나와 이 답답한 철물은 하나이다. 내가 비상구를 열고 뛰어내리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상상력이 통제되고 탈출구는 봉쇄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삶을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 그런 불가항력과 무기력함의 부조리를 절실하게 깨닫는 공간이 바로 장거리 비행의 항공기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거리 비행을 꽤 좋아한다. 사실 거리가 네 시간 내지 다섯 시간 되는 비행기들, 그래서 적당한 고도에 머무르며 여기저기 바람에 휩쓸리다 내리는 비행기에 탔을 때가 가장 처절하다. 먼 거리를 내달리는 비행기들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아예 체념하게 하기 때문에, 장거리 비행에서의 난기류는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승무원들도 모두 착석하세요, 라는 방송이 나와도 별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할 시간을 아주 많이 준다. 사실 우리는 땅에서오 모두 무기력한데 유독 이 멀고 추운 하늘 위에서 무기력을 통감하는구나. 그러므로 장거리 비행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들은 우주 영화들이다. 애드 아스트라,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항성과 행성에 대한 미지의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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