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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Aug 26. 2023

어렵다는 건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

'골디락스(Goldilocks)'라는 용어를 나는 아이들 오디오 동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단어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호황을 일컫는 경제용어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골디락스(Goldilocks)라는 소녀가 곰 가족이 끓인 세 가지 수프 중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그리고 적당한 것 중에서 적당한 것을 먹고 기뻐한 것에서 따온 말이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 정책>에서 나오다니... 영국 동화와 경제학이 이어질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용어, 어렵게 느껴지는 용어를 마주하면 우리는 겁부터 먹는다. 그리고 바로 뇌가 지루함을 느끼고 저절로 눈이 감기거나 집중력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 정책>의 서문을 읽었을 때 나의 도피 반응이 바로 그랬다. 검은 것은 글이요, 흰 것은 종이라는 것만이 인식이 될 뿐이었다. 아무리 독서모임 선정 도서를 읽고 서평을 써야 한다는 게 개인적으로 정한 목표이긴 했지만 이렇게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눈으로 훑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뭔가 다른 전략을 써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익숙지 않은 용어들의 향연이었던 서문을 건너뛰고 과감히 1장 대 인플레이션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의외로 읽을 만하다는 것에 놀랐다. 연준(미국의 중앙은행이자 연방준비제도의 약칭, Federal Reserve System)이라는 멀게만 느껴지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다 사람이구나, 자신이 관철하고자 하는 바를 밀기 위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는구나...라는 식의 휴먼 다큐(?) 같은 느낌도 받았다. 이렇게 서문에서 놀란 가슴을 1장부터 시작된 사람 냄새(?)를 통해 나는 점점 통화 정책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공황과 같은 단어는 나를 움츠러들게 하기 충분했다. 경제와 사회, 지리를 싫어했던 게 이과 선택에 한몫했다고 하면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경제 용어보다는 물리나 수학이 더 친숙한 철저히 이과 체질이었다(문과 이과를 나눈다는 게 얼마나 쓸모없는 건지 독서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후 처음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 있고 그렇게 이해하다 보면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벤 버냉키...> 이 책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단어부터 익숙해져야만 했다.


1930년 대공황

2007-2009 대침체

1960년 중반 1980년대 중반 미국의 대인플레이션


먼저 대공황과 대침체는 대체 뭐길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대공황이라는 말을 들어는 봤지만 내 삶에 크게 와닿은 부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영 위키피디아를 번갈아가며 용어에 대해 알아보았다.


대공황(大恐慌, Great Depression1929-1939)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경제위기다. 검은 화요일로 알려진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촉발되었다고 한다. 이제 영어로도 한 번 살펴보자.


The Great Depression (1929–1939) was an economic shock that affected most countries across the world. It was a period of economic depression that became evident after a major fall in stock prices in the United States.The economic contagion began around September 1929 and led to the Wall Street stock market crash of October 24 (Black Thursday). It was the longest, deepest, and most widespread depression of the 20th century.


대침체(大沈滯, Great Recession) 2007년 4월(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또는 2008년 9월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규모의 경제 위기를 지칭하는 용어다. 대침체란 말은 이 경제위기를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빗댄 Great Recession의 번역어로, 대중적으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라고 불린다.


The Great Recession was a period of marked general decline observed in national economies globally, i.e. a recession, that occurred from late 2007 to 2009. The scale and timing of the recession varied from country to country (see map).

World map showing real GDP growth rates for 2009; countries in brown were in a recession.



 At the time,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IMF) concluded that it was the most severe economic and financial meltdown since the Great Depression. One result was a serious disruption of normal international relations.


내가 들어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세계금융위기 등이 나와 반갑기는 했지만 결국 내가 실제로 몸소 그 위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관심도 없다 보니 그저 흘러가는 정보가 되어버린 셈이다.


최근에 홍춘욱 박사님의 <대한민국 돈의 역사>를 읽고 어렵게 생각하고 피하고 싶었던 분야일수록 재미있게 접근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직접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벽돌책이라고 겁먹기보다 일단 관심 있는 부분부터(목차를 보고 가장 익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부터라도) 읽고 발 담가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식이나 금리, 연준에 대한 이야기보다 부동산이 더 친숙했던 나는 <대한민국 돈의 역사> 부동산 파트를 먼저 읽고 나서 첫 장을 이어서 읽게 되었다. 부동산 파트에서 감동을 하다 보니 내가 관심이 덜 있었던 부분에 대한 벽이 한층 낮아진 느낌이었다.


<벤 버냉키...> 또한 마찬가지였다. 골디락스가 익숙하게 느껴지다 보니 대공황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린스펀의 멕시코 긴급구제 과정에서의 활약(p. 111, 114) 부분을 읽으면서는 멕시코와 남미 국가의 채무 위기는 곧 미국 은행 시스템에 대한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채무 문제만 관심이 있던 재테크 초보가, 국가 간의 채무 위기가 어떻게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간접적으로 알게 될 기회를 얻게 되니 새롭게 시야가 뜨이는 기분이었다.


경제알못이었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에는 예민하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게 아무래도 내 돈의 가치가 10년 후에는 같은 가치가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개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는 주제라면 귀를 쫑긋 세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연준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왔는지 안다는 것은 그저 부동산 책 몇 권 기웃대거나 주식고수를 찾아 기웃거리며 수익을 내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먼저 수반되어야 하는 공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 연준의장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자신의 판단을 과신할 수도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의 정책 결정을 아예 배제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도 <벤 버냉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어렵다고, 내 삶과 지금 당장은 연관이 안되어 보인다고 해서 알 필요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모르기 때문에 그 어떤 곳에서 내 삶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어렵다는 건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 한번 익숙해지면 친근해지고 그다음에는 들리게 되어 있다. 나에게 <벤 버냉키 21세기 통화 정책>은 어제보다 조금 더 익숙해진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나의 성장형 마인드셋에 불을 지피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다 보면 600쪽의 벽돌도 이젠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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