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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Jan 19. 2019

푸꾸옥 섬 일상

베트남 한 달 살기 Day 22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아직 날은 밝지 않았다.

핸드폰을 확인하고 창문을 활짝 연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워 아침의 고요한 소리를 듣는다. 

새벽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저 멀리 바닷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명상을 하고 아침 일기를 쓴다. 

오늘의 다짐 3가지. 

글을 쓰는 시간을 많이 갖겠다.
오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일몰을 보겠다.

오늘 아침 일기에 쓴 다짐이다. 다짐이라기엔 소소한 것이지만 이렇게라도 써놓지 않으면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이 배회한다. 매일 이 세 가지는 지키려고 하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숙소에서 나와 근처 옹랑 비치로 간다. 어제 있었던 인파들은 파도에 씻긴 듯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물놀이를 즐기는 현지인 몇 명과 나만이 해변에 있다. 

슬리퍼를 벗고 폭신한 모래 위를 천천히 걷는다. 일정한 운율을 따라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귀에 잘 들어온다. 구름은 솜털 실처럼 가는 모양을 하고 하늘을 떠다닌다. 

걷고, 듣고, 바라본다. 저 멀리서 해가 조심스럽게 떠오르고 있다. 해변의 한 모퉁이를 밝은 색으로 물들인다. 백사장 한 면 한 면을 환하게 비출 때마다 사람들이 나온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침이 준비되어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일과를 보내니 아침을 많이 먹게 된다. 아침을 왕처럼 먹어라, 는 말처럼 한 접시, 두 접시, 세 접시, 많이도 먹는다. 식사 후 진한 베트남 커피를 한잔 하면 이제야 비로소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비치타월을 챙겨 바다로 다시 나간다. 바다가 몸과 마음을 씻겨줄 테니 샤워는 생략한다. 해변에는 오전 8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무 밑 그늘 자리에 비치타월을 깔 수 있다.

자리를 잡고 바다에 몸을 내던진다. 차갑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의 바닷물이 내 안의 걱정을 다 씻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입가에 소금기가 가득할 때쯤 물에서 나와 비치타월을 깐 모래 위에 눕는다. 청명한 하늘과 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물에 젖은 몸으로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파도소리를 듣는다. 파도 소리의 운율이 참 다채롭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이 바닷물에 젖은 몸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지금 이 순간만은 내가 파도의 일부가 된 것 같고, 바람의 일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모래의 일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입은 수영복이 다 말라갈 때 즈음 몸을 일으켜 숙소 수영장으로 향한다. 야외에 달린 샤워 호스로 몸의 소금기를 씻어내고 선베드에 눕는다. 얼음으로 꽉 찬 컵에 맥주를 들이붓고 벌컥벌컥 마신다. 머릿속이, 가슴이 띵해지는 게 상쾌한 느낌을 준다. 누워 있다가 지루해지면 책을 가져와 읽는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삶'을 경험하기도 하고,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몰입하기도 하고, '미와 추 사이에서 고뇌하는 청년 스님'을 소설 속에서 만난다. 

지루해지면 하늘을 보다가 이 책, 저 책을 왔다 갔다 한다. 


오후에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우글거리는 해변 인파를 피해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다른 여행객처럼 일광욕을 한다고 몸을 태우다가 햇빛 알레르기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것도,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데 기여했다.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다가 그날의 할 일을 한다. 눈이 피로해지면 창문으로 비치는 나무들의 초록을 바라기도 하며 오후 시간을 보낸다. 


일몰 시간을 확인하고 일몰 30분 전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해변으로 나간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태양을 바라보다가 눈이 너무 부시면 바닷물 위에 두둥실 떠다니는 사람들을 본다. 일몰에는 사람이 자꾸 빠져들게 하는 묘한 어떤 것이 있는듯하다. 하염없이 지는 해를 바라보다 태양이 색깔을 계속 바꾸며 침잠할 때 즈음 바닷물로 들어간다. 바다에서 지는 해를 보며 태양이 있는 쪽으로 수영을 하기도 하고, 바닷물에 선 채로 일몰을 감상한다. 해가 완전히 침잠할 때까지. 해가 지고 달이 고개를 든다. 일몰의 잔향이 하늘을, 바다를, 사람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하염없이 바라보다 완전히 어두워지면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이 시간이 되면 꼭 배가 고프다. 샤워를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라 음식의 고유함은 떨어지지만 값싼 해산물 요리와 해산물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푸꾸옥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칵테일을 마시는 재미도 있다. 현지 맛집이라고 하는 곳을 방문하려면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해서 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장 구경도 가지 않았다. 그냥 내가 있는 곳에서 하염없이 쉬고, 읽고, 생각하면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므로. 가끔 더 많은 걸 해야 한다는 강박이 도지긴 하지만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만 해도 하루하루 그 인상이, 느낌이 다른데 유명 해변과 관광지를 '찍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숙소에 돌아와서 하루를 정리한다. 책을 읽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안부를 주고받기도 한다. 11시가 가까워지면 졸음이 밀려온다. 나는 절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은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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