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 Mar 12. 2020

올레길 5코스: 여행의 감각

남원포구-위미동백나무 군락지-쇠소깍다리

올레길을 걷기 위해 다시 제주를 찾았다. 한시라도 빨리 제주의 바람과 공기를 느끼고 싶어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 편을 예약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날씨 앱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제주 날씨는 '맑음', 미세먼지도 '좋음'이다.


공항에 내려 서귀포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는 핸드폰과 책에만 집중해서 가기로 한다. 유리창 밖 경치는 보지 않는 걸로. 나는 자연의 좋음과 감동을 배로 느끼고 싶을 때 종종 이렇게 한다. 버스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가는 것도 너무나도 좋지만, 책이나 핸드폰에 집중하다가 목적지에 딱 내리면 내가 제주에 있구나, 라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이곳 제주에 오기 위해서는 도시의 차나 지하철 안과 기내, 그리고 다시 버스까지 좁고 밀폐된 공간을 거쳐야 하는데, 서귀포에 다다를 때까지 참다가 한 번에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한 순간에 도시에서 바다가 있는 곳으로 순간이동 한 느낌이랄까, 여행의 느낌이 두 배가 된다.



지난번에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남원포구에 도착했다. 염소탕과 오리탕 맛이 나는 이곳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범일분식의 순대 백반으로 속을 채우고 5코스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둘이 걷는 여행이다. 두 명이서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 명이서 길을 걷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혼자 걸을 때는 내면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곱씹는 데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반면, 둘이 걸을 때는 올라온 생각을 바로 말하거나 내 생각이 아닌, 같이 걷는 사람의 말을 곱씹게 된다. 혼자 걷는 것이 생각의 깊이를 더해준다면, 둘이 걷는 것은 생각의 부피를 넓혀준다. 



시작점에서 조금 걷다 보면 나오는 큰엉 산책로를 비롯해 5코스 길은 전반적으로 잘 정비되어있다. 아직은 겨울을 머금은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조금 더워지려고 하면 바람이 몸을 식혀주고, 약간 추워지려고 하면 햇빛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무엇보다 햇빛에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석 같이 예쁘다. 



이따금씩 맡게 되는 풀 내음도 좋다. 특히 날이 좋은 날에는 햇빛으로 풀을 찐 것 같은 냄새가 밀려올 때가 있는데 나는 이 냄새가 너무나도 좋다. 도시에서는 맡기 힘든, 저 멀리 열대 국가에서 맡을만한 이 냄새를 맡을 때면 비로소 '비일상'의 시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이 냄새와 더불어 어딘가 모르게 정지되어있는 듯한,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주변 풍경도 내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가끔 도시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가 있는데, 거리에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에 이따금씩 과일장수 기계음이 들릴 때가 그렇고, 학교나 직장을 빼먹고 아침 시간을 보낼 때가 그렇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다른 바쁜 것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나는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하며 묘한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일종의 진공 상태인, 그런데 그 진공 상태가 마음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해 주는... 이런 느낌을 이곳 올레길을 걸으며 받는다.




올레 5코스 Tip: 

- 코스 곳곳에 먹을 곳, 쉬어갈 곳이 많아서 계획 없이 편하게 걸어가도 괜찮아요.

- 특히 공천포로에 아기자기한 식당, 카페들이 많았어요.


작가의 이전글 올레길 4코스: 옆을 보며 걷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