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에 출발할 때는 분명 입고 있던 옷이 더웠다. 구파발천을 지나 창릉천을 걷고 뛸 때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고 후드티 안에 입고 있던 티셔츠는 이미 젖어 있었다. 창릉천을 지나면서는 뛰는 경우보다는 걷는 경우가 많아서 그동안 젖어있던 티셔츠는 대충 말라 있었다.
11시쯤 원당역을 지나며 온도가 급격히 내려감이 느껴졌다. 일교차가 심해진 것도 있었고 위치가 북쪽으로 자꾸만 이동하는 것과 도심지를 벗어난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약간 땀에 젖어있던 옷도 문제였다. 아까 더울 때는 벗어던지고 싶었던 후드티가 지금 와서 보니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걷다가 다리 아파 죽기 전에 도로변에서 바람 맞다가 추위에 얼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걸으면 몸에 열기는 일정 부분 유지가 되니 나는 갑자기 소중해져버린 후드티의 끈을 질끈 동여 메고서 몸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걸었다.
횡단보도가 빨간불일 때는 어쩔 수 없이 멈춰 섰어야 했는데 이제 4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걷고 나니 잠시 앉을 때에는 허리에 온갖 통증이 모두 밀려왔다. 계속된 직립보행으로 인해 허리가 많이 눌렸는지 쭈그려 앉기기가 나무늘보급 슬로모션을 취해야만 앉을 수 있었다. 앉은 후에는 최대한 다리도 스트레칭하고 허리도 스트레칭하며 컨디션을 유지했다.
가는 동안 계속 걱정되었던 핸드폰도 충전하고 쉬면서 밥도 먹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에 24시 식당 간판도 간간히 찾아봤지만 결국에는 계속해서 걸었다. 왠지 배가 부르면 다시 걸을 때 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장 걱정되었던 구간인 외딴곳에 위치한 원당중학교 구간은 다행히 인도가 끊어져있지도 않고 가로등도 있고 그때까지 핸드폰도 살아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그때에는 원당중학교가 보이지 않았다. 주택이나 상가의 흔적없이 도로만 보였기 때문에 온갖 상상을 하며 걱정하다가 잘 가고 있는지 지도를 체크하던 중 왠 중학교가 외딴곳에 홀로 위치해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는 많이 안심이 되었다. 중학교가 위치해 있는데 인도와 가로등이 없을리 없으니까..... 나는 무사히 그 구간을 통과하며 일산 구도심에 들어서고서야 내 상상속의 괜한 불안들이 정말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밤 한밤중 걷기의 매력적인 요소 한 가지를 발견했다. 자동차들이 쌩쌩달리는 도로가의 매연과 소음 속에서 걷는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날 한밤중에 걷는 그 길은 달랐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산책길에서 또는 도심지에서 또는 주택가에서는 할 수 없었을 고성방가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아래 지나다니는 차들 외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는 마스크 안으로 열심히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원 없이 질렀다. 원당역의 간판을 뒤로하고 걷기 시작할 때부터 생긴 [이제는 반드시 언니집에 가기]라는 특명 아래 어둠 속을 걸으면서도 두려움보다는 마음속에서 용기가 생겨남이 느껴졌다. 그 용기를 담은 샤우팅은 한밤중 아무도 없는 도로변은 정말 최적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노래방외에는 집에서도 산에서도 길에서도 소리를 마음껏 지를 수 있는 환경이 주변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밤의 기억이 더 특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4시간째 걷고 있지만 지친 기색보다는 처음 걸을 때보다도 팔다리에 힘이 있었고 무언가를 향한 거침없는 질주 같은 걸음걸이였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고서는 그 템포에 맞춰 나는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지금 목적지에서 자고 있을 행복한 영혼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고요히 잠들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정말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저벅저벅 힘찬 발걸음으로 전진해 가고 있었다. 특히 이 구간에서 내 모습이 그랬다. 힘차게 저벅저벅 걷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단잠을 방해한 방해꾼이 될까 아니면 간밤에 느닷없이 보아도 반가운 얼굴일까...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걸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에게는 연락을 지금이라도 해놓는 게 양심상 조금 예의가 있을까..... 아까는 혹시나 내가 원당역에서 집으로 갈 수도 있어 그 시간까지 잠도 못자고 걱정하고 기다리고 있을 언니 생각에 연락을 못했는데 지금은 해야 한다. 나는 언니집에 반드시 도착할 것이므로... 지금은 해야 한다. 다만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 되었고 언니는 자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조심스런 어조를 담아문자를 보내 보았다.
"자고... 있겠지?"
........ 언니는 역시나 답장이 없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므로 나는 언니의 자고 일어난 짜증 섞인 얼굴도 마음 한편에 후보군으로 심어놓고선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갔다. 언니가 놀랄지 당황할지 짜증 낼지를 상상하는 건 또 다른 재미이기도 했다.
쉬지 않고 걸은지 4시간을 훌쩍 넘어서자 이제부터는 다리에 진짜로 통증이 시작됐다. 발바닥이 제일 큰 문제였고 발가락들 쪽에서 쓸리지 않던 부분이 쓸리기 시작했다. 일산 구도심에 들어서면서 나는 또다시 본능적으로 버스 노선을 눈으로 쫓기 시작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는 경기도 따릉이나 전기자전거도 계속 눈으로 들어왔다. 막차 같아 보였던 버스의 뒷모습을 좀 애잔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누가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런 규칙도 없었지만 내 마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걸었다. 걸으니 계속 걸어졌다.
이제 새벽 1시가 되었다. 일산의 구도심을 지나 파주시에 거의 근접할 때쯤 멀리서 눈에 띄는 멋진 건물 하나가 보였다. 전시관 같은 외관의 모습에 나는 배터리때문에 아껴보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파주시에 근접했다는 것은 이제는 핸드폰이 없이도 길을 물어물어 찾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므로 나는 사진을 한 장을 남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