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날 영영 이별을 하였어요.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이별을 하지 않은 것만 같아요. 당신이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아요. 더 많이 당신을 생각하고 더 많이 당신을 느낍니다.
나는 억지로라도 당신을 잊으려고 노력했어요. 당신으로 인한 괴로운 기억은 내 20대를 집어삼키기도 했었습니다. 당신의 기억은 여린 잎사귀 위에 무참히 던져진 잔해더미들 같았어요. 기억의 잔해들 속을 하나하나 들춰보다 나는 이내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날카로운 잔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지만 괜히 헤집었다 이내 손가락에 시뻘건 피가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곤 했어요. 나는 핏빛의 기억으로부터 괴로워하며 뒹굴며 당신을 내게서 떼어내려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은 말간 시냇물에 쓰라린 손을 넣어 그 핏물을 말끔히 씻은 것 같았지만 다시 수면 위로 건져 올린 내 손에는 이내 다시 피가 스며 나오곤 했어요. 나는 내 몸속에 피가 남아있는 한 새어 나오는 피를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더 괴로워하며 뒹굴었어요. 그렇게 오랜 괴로움의 시간 속에 미움은 증오가 되었고 증오는 통째로 나를 집어삼켰습니다. 당신의 어리석음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당신의 행적에서는 어떤 가치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초라함이 곧 나의 초라함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고 그 분노들 또한 당신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당신의 소식을 언뜻 접하게 되면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그때 내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당신과 내게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리고 있을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당신을 내내 놓치었습니다. 그 사실을 당신이 떠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나는 채비를 하실 적에 당신은 내게 말했습니다.
'비석을 하나 세워다오'
그때 당신이 잊히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또한 당신이 살아내는 수많은 시간 동안 얼마나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원했을지 나는 그 말속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병실 한 구석에 누워 지쳐 잠든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내 손길에 설풋이 잠이 깨었어도 당신은 그저 고요히 눈을 감고만 있었지요. 당신과 보낸 짧은 시간 동안 내 안의 서슬 퍼렇던 증오의 밭에는 푸른 잔디가 깔리었습니다. 나는 그 위에다가 당신의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내내 쓰다듬고 가꾸어요. 어느 누구로부터도 훼손되지 않고 흙먼지와 비바람에 괴로워할 일도 없습니다. 늘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할 수 있도록 내가 온기를 불어넣어 줄게요. 저편에 있는 당신에게도 가닿을 거예요. 아버지 따뜻하신가요? 내가 당신을 그렇게 기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