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A VIDA_023
엠마누엘(이하 엠마)이라는 학생이 부활절 연휴 기간에 뭘 할 거냐고 물어봤었다. 3월 21일부터 3월 27일까지 일주일 동안이 코스타리카의 부활절 연휴 기간이었는데, 엠마가 월요일에 자기 집에 초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동료 선생님과 함께 가기로 했다. 엠마는 Heredia(에레디아)라는 지역에 사는데, 내가 사는 Alajuela(알라후엘라)보다 훨씬 시원해서 살기 좋은 곳이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엠마가 내리라고 한 Faseo de las flores(빠세오 데 라스 플로레스)라는 몰 앞에서 내렸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갔을 뿐인데 온도가 확 달라서 깜짝 놀랐다. 바람도 시원하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에레디아에 살고 싶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곳 사람들은 보통 부활절 기간이 가장 더운 때라고 이야기한다. 이 기간에 다른 지역에 간 건 잘한 일이었다.
엠마가 같이 empanada(엠빠나다)를 만들자고 해서 아침 일찍 출발을 했다. 엠마가 마중을 나와서 집에 도착하니 9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사실 엠마가 마중을 나온 게 아니라 '우버 택시'가 마중을 나왔다. 요즘 외국에서 유행하는 택시인데 한국의 카카오 택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엠마네 집은 아담하게 잘 꾸며진 가정집이었는데 이층 집이었다. 엠마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와인을 선물로 드렸다. 딱히 살 게 없어 와인을 사 갔는데 할머니께서 와인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다행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빵과 커피를 대접해 주셨다.
엠마는 집 군데군데에 한국어를 써서 붙여 놓았다. 나름대로 공부하려고 했나 보다. 냉장고 옆에 붙어 있던 '맛있다'의 철자가 틀리긴 했지만 뭐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준다고 넘어가려는 찰나, 난 계단 앞에 붙어 있던 '내려'를 보고 빵 터지고 말았다.
부활절 연휴 때 먹는 전통음식 중 하나라는 empanada de chiverre(엠빠나다 데 치베레)를 만들기 위한 치베레. 엠빠나다는 스페인 음식으로 빵 반죽 안에 속을 채워 굽거나 튀긴 건데, 속에는 주로 다진 고기, 야채, 과일 등을 넣는다. 남미에서도 많이 먹는다. 내가 먹어본 엠빠나다 중엔 파인애플을 넣은 게 가장 맛있었다. 엠빠나다 데 치베레는 속 재료가 치베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속 재료를 만들기 위해 치베레를 잘라야 했다. 치베레는 호박과 조금 비슷하게 생겼지만 껍질이 엄청 단단하다. 치베레를 망치로 두드린 후에 커다란 칼로 조금씩 벗겨 냈다. 솔직히 껍질을 벗겨내면서 진이 다 빠져버려서 힘들었다. 진짜 크고 단단했다. 농담이 아니고 이제 다시는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기는 했다.
껍질을 다 벗겨내고 반으로 가른 치베레.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다. 속에 있는 씨를 다 꺼내고 하얀 줄기 같은 것만 발라내야 한다. 속이 엄청 미끌미끌했다. 껍질 벗기고 속을 발라내는 작업만 한 두 시간 걸린 것 같다.
치베레의 속을 발라내서 흑설탕을 넣고 조린다. 한동안 푹 조리면 속 재료 완성이다.
엠빠나다 반죽을 해서 만드는 건 엠마의 어머니가 거의 다 하셨다. 옆에서 지켜보니 거의 만두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엠마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이라서 우유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엠마의 엠빠나다는 따로 만들었다. 반죽에 속 재료를 넣고 엠빠나다 모양을 내고 오븐에 구우면 엠빠나다 완성!
완성된 엠빠나다. 점심을 먹은 후에 커피와 함께 먹었다. 생각보다 많이 달지 않아서 맛있었다. 커피에는 우유를 탄 게 아니고 두유 가루를 탄 거다. 우유를 안 마시는 엠마 때문에 사둔 것인 듯했다. 먹어 보니 맛있었고 설탕도 전혀 들어있지 않아서 나중에 마트에 가서 한 통 사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커피를 많이 마시지 않으니....
요리하는 엠마의 뒷모습. 앞모습이 아니니 올린다. 우리가 치베레와 씨름을 하고 있을 동안 엠마는 할머니와 점심을 만들었다.
점심으로 먹은 plátano verde(쁠라따노 베르데) 튀김. 노란 쁠라따노는 단맛이 나고 초록색 쁠라따노인 쁠라따노 베르데는 단맛이 전혀 안 난다. 개인적으로는 쁠라따노 베르데 쪽이 좋다. 쁠라따노를 한 번 튀긴 후 저렇게 틀에 찍어 내서 모양을 내고 다시 튀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소금을 뿌리고 밥을 올려 함께 먹는다.
엠마네 집에서 거의 하루 종일 먹기만 하다 온 것 같다. 엠마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잘 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잠시 쉬었다. 엠마네 집에는 고양이 다섯 마리와 개 두 마리가 산다. 고양이는 다 보지는 못 했고 세 마리 정도만 봤다.
오후에는 자매인 초급1반 학생들과 약속이 있어서 에레디아에서 돌아와서 바로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과 토요일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추울 거라고 해서 시티몰에 가서 옷을 사기로 했었다.
후드 집업을 하나 샀다. 그리고 기념품 샵에서 지난부터 사고 싶었던 보석함을 샀다. 비싸지만 눈에 밟혀서 그냥 샀다. 그리고 목걸이를 넣어둘 보석함이 정말 필요하긴 했다. 코스타리카라고 써 있는 투칸 뱃지도 사서 가방에 달았다. 기념품 샾에서 알라후엘라 엽서를 줬다. 마음에 들어서 방 벽에 붙여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