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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 YU Mar 24. 2017

코스타리카에 산다는 것

PURA VIDA_032




Parque La Sabana



  코스타리카의 모든 것에 대해 써 보겠다며 야심 차게 시작한 브런치고, 작가 신청에도 한 번에 성공했지만 처음의 계획과는 너무 달라졌다.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글을 올리려고 했건만 벌써 3월이 다 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은 자주 올리는데 이런 긴 글을 써서 올리는 건 어렵다.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는 것부터가 힘들다.



  12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대략 한 달 간을 한국에서 보내다 왔다. 꿀처럼 달았던 휴가였지만 시간은 물처럼 빨리 흘렀다. 한국에 다녀오고부터 나는 외국 체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오만하게도 코스타리카에 오기 전부터 외국 체질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년 정도 살아 보니 그게 아닌 거다. 한국에서 휴가를 보낼 때는 추운 날씨 빼고 모든 게 다 좋았다. 거꾸로 말하면 코스타리카는 더운 날씨 빼면 다 별로인 게 되는 건가. 흠....물론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초반보다 부정적인 느낌이 더 짙어진 건 맞다. 코스타리카에서 산다는 건, 더군다나 한국인이 코스타리카에서 산다는 건 살만 하지만 살기 좋지는 않다는 것. 많은 한국인들이 '코스타리카'하면 국민 행복지수 1위인 나라, 커피가 맛있는 나라를 떠올리며 살기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먼저 국민 행복지수 1위인 나라, 이건 나쁘게 말하면 우물 안 개구리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코스타리카 사람들을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렇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잘 살다 보니 더 이상 발전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지 현재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잘 지낸다. 뭐 어떻게 보면 걱정도 없고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



  두 번째, 코스타리카 커피가 맛있다는 오해. 이건 정말 오해다. 아, 한국에서 코스타리카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시면 맛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니다. 카페 열 군데 중 일곱 군데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다.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아메리카노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그냥 집에서 커피메이커로 내려 마시는 커피를 카페에서 돈을 받고 판다. 처음에 와서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방식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걸 확인하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이미 내려놓은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내오는 거다. 아메리카노는 방금 내린 에스프레소의 크레마가 생명인데. 그 뒤로 웬만해서는 처음 가는 카페에서는 커피를 잘 시키지 않는다. 물론 늘 예외는 있듯 정말 커피가 맛있는 카페도 있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99%가 커피 맛보다는 설탕 맛으로 커피를 마시기에 커피를 뭘로, 어떻게 내리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참고로 세 살짜리 아이도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신다. 물론 아이들이 커피를 마신다는 것 자체도 참 충격적이다. 코스타리카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원두를 사서 직접 내려 마시는 게 낫다. 그래도 원두는 신선할 테니.




  

  코스타리카에서 살기 좋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인종차별이다. 나에게는 그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한 번도 인종차별을 당해 본 적이 없었는데 코스타리카에 와서 질리도록 인종차별을 당했으니. 사실 어느 나라에나 인종차별은 있다지만, 이곳에서는 하루에 세 번도 인종차별을 당한다. 우선 동양인들은 모두 싸잡아서 chino(치노; 중국 남자) 아니면 china(치나; 중국 여자)다. 길거리를 지나가면 하루에도 몇 번씩 china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발끈해서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그것도 지치고, 자주 가는 식당 종업원 아주머니나 가게 아저씨한테만 얘기한다. 계속 얼굴 볼 사이인데 볼 때마다 계산하고 나갈 때 중국인 소리를 듣는 건 기분 나쁘니까.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고 끝내면 될 것을 꼭 '고마워, 중국 여자.' 이렇게 덧붙이는 게 너무 웃긴다.



나를 중국인이라고 칭해서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이건 동양인을 싸잡아 무시하는 태도이기에 기분이 나쁘다. 중국, 일본, 한국 중에 한국이 가장 덜 알려져서 한국인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 한다 쳐도 부르기 전에 저 사람이 진짜 중국인일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 거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그런 배려 따위는 없다. 며칠 전에는 학교 화장실에서 날 보고 대뜸 '니 하오'라고 말하는 여자한테 '나 한국 여자야.'라고 나도 모르게 째려보면서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아, 오케이.'. 물론 분명히 이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내가 받을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충격이 컸고 여전히 스트레스도 심하다. 오죽하면 길거리에서 받는 인종차별 때문에 걸어 다니기가 싫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나는 코스타리카의 모든 걸 좋아할 수는 없다. 그나마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내 일이 재미있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풍경들이 있기에. 그렇게 버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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