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 문학관

by 노준성

도시의 소음은 늘 날카롭고 거칠다. 쇳소리처럼 겹겹이 포개진 자동차 경적과 전광판의 빛, 목적지를 잃은 채 회전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 도시가 앓고 있는 만성 질환처럼 느껴진다. 빌딩 숲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나의 방랑자적 고독은, 80여 년 전 오장환이 노래했던 ‘병든 서울’의 풍경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나는 그 병증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인이 끝내 도달하지 못했지만, 평생 그리워했을 그의 고향, 충북 보은 회인으로 길을 잡았다.
‘인을 품다’라는 뜻의 회인. 이름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시구처럼 다가오는 이 마을은, 비운의 천재 시인을 어떤 방식으로 품고 있을까. 그의 고향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온순해지고, 생각은 느려졌다. 도시에서 벗어나는 이 과정 자체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호흡과 닮아 있었다.
오장환에게 서울은 문학의 무대였지만, 동시에 병의 원인이었고, 회인은 떠나야 했던 고향이자 끝내 돌아갈 수 없었던 마음의 원형이었다.

보은 읍내를 지나 한참을 더 들어가자 회인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흐르는 듯한 이곳에는 불필요한 것이 없다. 낮은 지붕, 굽은 골목,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는 담장들. 문학관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오장환의 시 구절들이 벽화처럼 피어 있었다. 글자는 풍경 속에 스며들어 있었고, 마을 전체가 하나의 시집처럼 펼쳐졌다.
“나 사는 곳 담장 너머로 해바라기가 웃고 서 있는 곳”
시 〈나 사는 곳〉의 이 구절을 따라 걷다 보면, 월북 이후에도 그가 가슴에 품고 살았을 고향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의 시가 지닌 힘은 화려한 수사에 있지 않다. 투박하지만 정직한 언어, 삶의 바닥에서 길어 올린 체온이 독자를 붙든다.
문학관 앞마당에 들어서자, 동상으로 남은 시인이 벤치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외투 자락은 바람에 스치듯 굳어 있고, 눈빛은 여전히 어딘가를 향해 있다. 34세, 너무도 이른 나이에 멈춰버린 생애가 이 적막한 공간 속에서 오히려 더 크게 울린다.

문학관 전시실의 문을 여는 순간, 오장환의 삶은 연대기적 서술이 아닌 ‘시의 온도’로 다가온다. 어쩌면 문학관은 한 시인이 시대와 어떻게 부딪히고 변모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지층인 듯했다.
전시된 시집 [성벽]과 [헌사]의 초판본 앞에 서자, 종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는 관훈동에서 ‘남만서방’이라는 양복점을 운영하며 당대의 유행을 선도하던 댄디스트였다. 멋과 사유, 언어와 삶을 동시에 연출하던 시인.
초기 시편들에서 감지되는 도시적 우울, 퇴폐적 감각, 존재의 불안은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이 감당해야 했던 정신의 압력을 보여준다. 서정주와 이용악이 그의 재능을 인정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단순히 유행을 좇은 모더니스트가 아니라, 시대의 균열을 예민하게 감지한 감각의 소유자였다.
전시실 한쪽 벽면에는 그의 대표작 〈종가〉가 크게 새겨져 있다. 봉건적 가치와 가부장적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을 냉소적이면서도 서사적으로 그려낸 이 시는, 개인의 가문사를 넘어 조선이라는 거대한 ‘종가’의 몰락을 은유한다.
그의 시가 특별한 이유는, 체험과 역사가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된 친필 엽서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그의 삶이 하나의 긴 유랑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다시 북으로 이어진 이 이동의 궤적은 곧 그의 시가 이동한 방향이기도 하다.

문학관 바로 옆에는 그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나지막한 초가와 소박한 마당은 가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서자라는 출생의 아픔, 시대의 가난, 정착할 수 없었던 삶의 조건은 그를 더욱 언어의 내부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자니, 이곳에서 그가 품었을 최초의 세계 인식이 떠오른다. 스승 정지용에게 보냈던 존경과, 동료 시인들과 나누었을 문학적 열망, 그리고 끝내 풀리지 않았을 존재의 질문들. 회인의 흙과 바람은 그에게 서정만을 준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의심하는 힘 또한 길러주었을 것이다.

오장환의 이름 앞에는 오랫동안 ‘월북 시인’이라는 낙인이 따라다녔다.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그의 시는 교과서에서도, 서점에서도 지워졌다. 그러나 문학관에서 만난 오장환은 이념의 상징이 아니라, 시대를 끝까지 고민했던 한 인간이었다.
그가 해방 이후 선택한 길은 단순한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시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박한 응답이었을 것이다. 〈병든 서울〉은 선동이 아니라, 상처 입은 도시와 민족을 향한 진단서이자 기도문에 가깝다.
전시실 끝자락에서 만난 그의 말년은 쓸쓸하다. 병마와 싸우며 고향 보은을 그리워했을 시인의 얼굴이 유리 너머로 겹쳐 보인다.

문학관을 나서며 다시 해바라기가 그려진 담장을 지난다. 오장환은 잊혀진 시인이 아니라,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문학사의 한 중심이다. 그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서정과 참여를 모두 통과한 시인이었다.
이번 기행을 통해 나는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 너머의 오장환을 만났다. 진흙탕 속에서도 끝내 시를 포기하지 않았던 한 청년, 시대의 모순 앞에서 언어를 무기로 삼았던 한 인간.
보은 회인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가 남긴 문장은 뜨거웠다.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시 그의 시집을 펼친다. ‘병든 서울’로 돌아가지만, 이제 나는 안다. 회인에서 건너온 그의 시 정신이 아직도 이 도시를 향해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敵)의 치하(治下)에서 내가 앓던 것은 무슨 유행병도 아니었다. 나의 수척(瘦瘠)한 몸매와 더욱 수척한 나의 마음이 오히려 부끄러워질 때 나는 나의 무너진 성벽(城壁)을 끼고 도둑처럼 서울로 기어들었다. 서울아, 사치한 너의 성문이 열렸을 때 나는 도둑처럼 너의 품 안으로 기어들었다. 오오, 병든 서울, 너의 얼굴은 참으로 수척하는구나.

종로(鐘路)엔 다시 깃발이 날리고 북새를 치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 나는 너의 파괴된 심장을 만져 보았다. 어느 놈은 애국자(愛國者)라 이름하고 어느 놈은 혁명가(革命家)라 칭하며 너의 피를 빨아먹는구나. 어제는 일제(日帝)의 발치에 붙어서 구두창을 핥던 놈들이 오늘은 또다시 저마다의 깃발을 들고 애국의 소리를 높이는구나. 오오 가련한 서울, 나의 가련한 서울아.

너는 지금 병들었다. 네 몸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왜놈들의 구린내 나는 자취가 남아 있고 네 가슴속에는 아직도 동족을 팔아먹던 자들의 음모가 들끓고 있다. 나는 보았다. 굶주린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화려한 양복을 입은 자들이 미제(美製) 담배를 피우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을. 어느 녀석은 벌써 미국(美國) 춤을 추고 어느 녀석은 벌써 그들의 흉내를 내어 껌을 씹으며 너의 거리 거리를 더럽히고 있구나.

- 詩 병든 서울 중








작가소개:

오장환(1918~1951)은 충북 보은 회인 출신의 시인으로,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관통하며 식민지 청년의 내면, 도시 문명의 병리, 이념의 비극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 한국 현대시의 핵심 작가입니다. 일본 유학 시절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감각적이고 파격적인 언어 실험을 선보였으며, 첫 시집 『성벽』과 대표작 『병든 서울』에서 식민지 도시의 불안, 청년 지식인의 분열된 자아를 날카롭게 그려냈다. 해방 이후에는 개인적 고뇌를 넘어 민족과 현실에 대한 참여 의식을 강화하며 시적 방향을 전환했으나, 좌우 이념 대립과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의 폭력 속에서 요절했습니다. 오장환의 시는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은 기록으로, 한국 현대시가 도달한 가장 고통스럽고도 진실한 내면의 증언으로 평가됩니다.


문학관 정보:

시인 오장환을 기리는 문학관으로,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문화 공간입니다. 시인의 생가 옆에 위치해 찾아가는 길 자체가 문학 여행이 됩니다. 문학관 내부에는 시인의 대표 시집, 육필 원고, 사진, 영상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어, 모더니즘 시인이자 식민지와 해방기의 격랑을 살아낸 한 시인의 감성적이고 실험적인 언어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 요금은 무료입니다.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에는 휴관이므로 방문 전에 휴관일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관람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로, 조용히 작품을 읽고 오장환의 문학적 여정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문학관은 지역 주민과 여행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작은 문화 공간으로,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 오장환의 업적을 기립니다. 주변에는 회인향교 등 역사적 명소도 있어 함께 둘러보며 보은의 풍경과 문학적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습니다.

주소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 5길 12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