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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태 Jun 12. 2022

독서, 나를 발견하는 여행

© truthseeker08, 출처 Pixabay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지혜로움이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명철함이다.

- 노자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오랫동안 인류는 이 세 가지 문제를 갖고 씨름해왔다. 역사적으로 인간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고 파스칼은 정의했다.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자아에 대해 탐구하는 존재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린다. 육체는 동물과 비슷하지만, 동물에게 없는 사고력과 이성을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뛰어난 감성과 상상력, 창의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찬란한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인류가 남긴 예술작품을 보면 정말 아름다우며 문명과 과학기술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인류의 존재에 대해 답을 제시하는 분야가 있다. 인류의 정신적 유산이라고 불리는 책이다. 책 속에는 인간과 세상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이 들어있다.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책은 인류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책을 통해 우리는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고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은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을 알아간다.


© Pexels, 출처 Pixabay


나는 독서를 하면서 자아를 발견했고 세상을 탐구하고 있다. 읽은 책이 쌓여갈수록 배움에 대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인문학, 철학,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공통된 주제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나는 다양한 독서를 통해 가치관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진리라고 여기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양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기본적인 식욕과 성욕, 물질 욕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은 이유는 생존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할 수 없다. 가족은 우리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첫 번째는 생리적인 욕구이다.

 대표적으로 식욕과 수면욕, 배설 욕이 있다. 식욕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 다음에는 수면 욕구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지 못하면 수명이 단축되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 식욕과 배설 욕은 생존에 관여한다. 먹는 즐거움도 크지만 배설할 때 느끼는 쾌감도 꽤 높다고 한다.


두 번째는 성욕이다.

인류의 종족 유지에 있어 피할 수 없는 본능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도 사춘기 시절,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가슴이 설레곤 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이성이 있게 마련이다. 남녀 간의 육체적 성욕은 인류의 역사를 지탱해온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다.

돈에 초연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돈 앞에 약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은 권력이요, 신처럼 추앙받는 존재다. 돈이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고 사람들은 돈을 숭배의 대상으로 본다. 이런 의식이 바로 물질 욕에 속한다. 남보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물질적 욕구의 기본이다.


누구나 부자를 꿈꾸고 풍요롭게 살려고 한다. 우리가 직장에 매일 출근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요즘 이혼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부부싸움의 1순위가 돈 문제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돈이 없으면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물질에 대한 욕망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네 번째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자기의 의지대로 움직이려는 욕구가 있다. 인간은 권력을 좋아한다. 권력처럼 달콤한 것도 없다. 하다못해 학창시절 반장이라도 하면 평생 자랑거리가 된다. 누구나 우두머리가 되어 군림하려는 욕구가 숨어있다. 군락을 이루며 사는 동물들도 우두머리 싸움이 치열하다.


선거철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명함을 내밀곤 한다.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평소에 아무리 조용한 사람도 정치에 대해서는 한 마디씩 의견을 낸다. 누구나 마음속에 권력에 대한 욕망이 숨어있다. 권력에 대한 욕구는 그 이면에 권력의 달콤함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가장 고차원적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자아실현에 속한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욕구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자신의 꿈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한가지 재능은 있다. 다만 그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무덤에 가는 이가 대부분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현실을 이겨내고 자아를 실현한다. 이들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아실현은 최고의 목표이다. 누구나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의 동기 중에 사회에 공헌하려는 소명의식이 있다. 사람은 동기가 충분하지 않으면 자아실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면의 위대함을 끄집어내려면 그에 걸맞는 동기가 필요하다.


독서는 자아실현을 위한 최선의 도구이다.


지식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호기심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나는 어렸을 때 위인전을 통해 화가의 꿈을 품게 되었다. 인간은 책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소망을 갖는 존재다. 어린 시절 본 한 권의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꿈이 될 수도 있다. 위인들의 삶을 보면 독서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고정관념을 가진 채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았을 것이다. 독서의 가치는 돈으로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기존 관념의 노예가 된다. 책을 읽으면 필연적으로 가치관에 변화가 생긴다. 고정관념을 깨는데 독서처럼 좋은 도구는 없다.


인간은 기본적 욕구만으로는 살 수 없다.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한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나는 왜 태어났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정답이 없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고통을 겪으며 자아를 돌아보게 마련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인생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다.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 사는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은 남과 다른 생각을 한다. 남과 다른 차별성을 갖게 된다. 독서를 하면 정확한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설정된다. 무질서한 카오스의 삶에서 정돈된 카이로스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답 없는 인생에서 지혜로운 답을 구하기 위함이다. 목적 없는 독서는 오래가지 못한다. 목적 없는 독서도 마찬가지다. 필사를 해서 어떤 것을 얻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필사하는 것이 좋다.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서도 좋고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도 좋다.”


- 김시현, 『필사, 쓰는 대로 인생이 된다』   


생각하지 않으면 남의 생각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독서를 하면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TV를 보고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고차원적인 생각은 할 수 없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뿐이다. 독서를 하는 사람은 사고력과 통찰력이 생긴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천하무적이라는 뜻이다. 책은 그런 면에서 최고의 병법서라고 할 수 있다.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의 답을 대부분 알려주기 때문이다. 책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준다. 주위에 좋은 스승이 없다면 독서가 대안이다.


우리는 손쉽게 남이 쓴 책으로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독서로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마음의 아픔까지 해결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글쓰기의 경지까지 가게 되면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로부터 독서는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인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고싶다면 책을 자신의 친구로 삼아야 한다.



“나는 이 사람보다 현명하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알지 못하기에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 조그만 차이 때문에 나는 그보다 현명해 보이는 것이다.”


-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대화』




© GDJ, 출처 Pixabay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무지에 대해 탐구했던 철학자다. 그는 자기 자신의 철학을 증명하기 위해 독배를 마셨다. 그가 살던 시대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는 오히려 서양철학의 근원이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존재는 우리가 사는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릇 성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죽음을 사랑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애써 그것을 무시한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현실의 고통을 다른 것으로 잊으려 한다. 그러나 죽음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신은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고난을 통해 겸손을 강요한다.

평소에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급하게 가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일찍 유명을 달리한 가족과 지인의 죽음은 허무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초라하다. 인간은 생전에 아무리 화려하게 살았다 해도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금기어다.


누구도 죽음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망자 앞에서 빨리 떠나려 한다. 자신도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천년을 살 것처럼 살아간다. 역대 왕들의 화려한 무덤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목격한다. 피라미드에 깔린 망자들의 영혼이 그것을 대변한다. 한 사람의 영면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흔적이 고대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허무한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성찰해야 한다.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영혼이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 동물과 같은 존재라면 죽음에 대해 그다지 고민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소중한 영혼을 가진 존재다. 애써 부정하려 해도 영혼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 한 가지만 봐도 우리는 내면에 숨겨진 영혼을 깨닫게 된다.


동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먹고 마시고 마음껏 즐기는 사람들의 삶은 공허하다. 나도 그런 생활을 하면서 수십 년간 살아왔다. 나의 영혼은 그 시간 속에서 죽어버렸다.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 뒤 나의 영혼은 되살아났다. 나는 먼지처럼 사라지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전능하신 신의 피조물임을 깨닫고 자아를 회복했다.

우리의 영혼은 모두 소중하다. 죽으면 잊혀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영혼은 원래 태어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는 사랑의 근원인 신의 피조물이다. 소중한 나를 사랑해주고 이웃도 사랑해야 한다.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 khaledaljaber500, 출처 Pixabay


인간이 왜 존중받아야 하는지 누구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진화론으로 따지면 우리는 아메바의 후손일 뿐이다. 그런데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의 권리가 소중하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나는 되묻고 싶다. 인간처럼 위선적인 존재도 없다. 겉으로는 올바르고 친절한 사람도 들춰보면 추한 내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서로 사랑 해야 한다고 영혼이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주의자들은 다르게 이야기한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단백질 덩어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따지면 우리는 한 줌 흙에 불과하다. 오랜 연구 끝에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이다.


물질로 구성된 인간이 소중한 이유는 우리에게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은 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사랑 없이 이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사랑으로 지구의 역사가 이어져 왔고 수많은 전쟁 속에서도 다시 이어지고 있다. 인류의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이다. 사랑의 힘이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각박해진 것은 유물론적 가치관이 사랑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사랑은 결코 물질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한 줌의 채소와 물만 먹고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사랑은 무시한 채 끝없이 탐욕을 부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 때 우리는 비로소 존귀한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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