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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연 Jul 16. 2021

벤 다이어그램의 중간점

너를 재우기 위한 조건들



네가 상 아기였던 시절 너를 재우기 위해서는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야 했다.     

일단 초 정밀하게 딱 맞아야 하는 온도와 습도. 조금도 더워도 추워도, 건조해도 안된다. 적절한 습도와 촉촉함과 윤기를 머금은 공기는 필수였다. 없으면 만들어내야 한다. 우주선에서 모든 환경을 동일하게 맞춰 살아야 하듯, 너에게도 동일한 환경이 늘 필요했다.  

    

아기가 배가 너무 불러도 고파도 안된다. 너무 더부룩해도 속이 비었어도 안된다. 

너무 피곤해서도, 너무 잠이 안 와서도 안 된다. 나노 단위의 딱 알맞은 각성과 피곤함 사이에서야 잠을 잤다.      

재우는 엄마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도 안된다. 재우고 나서 다른 뭔가를 하고 싶다거나, 다른 할 일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재우고 이따 인터넷으로 장 좀 봐야지.

작년에 신겼던 샌들 작아져서 올해 새로 하나 사야 하는데.

전집 새로 하나 사야 하는데.

재우고 찾아봐야지.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가득 찼을 때는 네 옆에 누워 아무리 잠을 재워보려 해도 안 잔다.     


옆에서 코를 골면 어떨까? 

안 잔다.

‘짱구는 못말려’에 봉미선의 아이디어처럼, 아기와 호흡을 맞춰 숨을 쉬면 어떨까?

실패다.

죽은 듯이 조용히 옆에서 누워 있으면 어떨까? 

소용 없다.      

나에게는 오직 초점 맞춰진 돋보기가 종이를 태우듯, 너를 향한 사랑만이 오롯이 충만해야 했다. 나의 초점이 너를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너는 블루투스에 연동되어 나의 어지러운 속세의 마음을 독파하고 절대로 잠이 들지 않았다.      


그 어떤 속세에도 물들지 않고, 오직 너를 향한 사랑으로만 불타는 마음. 네가 자든 안 자든 전혀 상관없는, 배려 깊은 사랑을 넘은 숭고한 사랑의 정신만이 나를 지배할 때, 그 마음이 몇 시간이고 지속될 수 있을 때야 너는 잠을 잤다.     


내 마음을 어찌나 그리 귀신 같이 잘 아는지. 어찌나 잘 읽어내던지. 

때로는 얄밉고 야속하기까지 했다.      


정말로 아기가 안 자고, 잘 깨는 엄마들은 안다. 이 세상은 내가 조절 할 수 없는 소리로 늘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아무리 스스로 모든 소리를 차단하려 해도, 의도치 않게 늘 어떤 소리가 나게 되고 네가 깨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아무리 절간처럼 조용히 있으려 해도 냉장고 냉각기 돌아가는 소리와 불시에 들려오는 아파트 안내 방송을 인간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한 100가지 벤다이어그램의 중간점을 찾았을 때, 정말 기적적으로 온 우주의 기운이 도와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모든 바깥 환경과, 각성에 이르지 않을 너의 적절한 피곤함과 엄마의 절대 무욕의 궁극의 사랑이 합일되는 순간, 이무기가 승천해 용이 되듯 그제서야 너는 잤다.   

  

그렇다.      

신생아 때부터 ‘안 자도 안 자도 어쩜 저렇게 안 잘까’ 라는 한 마디 탄식을 이렇게도 길고 정성스럽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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