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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연 Jul 16. 2021

죽림칠현 방구석 매력녀








육아만 하다 늙어 죽을 것 같았던 시절.     




정신 없는데 지루하고 

피곤한데 절대 자기는 싫고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어디론가 증발 되고 싶기도 했던 아이러니가 늘 함께 하던 시절. 


    

세상을 왕따시키며 아이와 둘이 지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자의로 선택한 삶이었다. 내 아이는 예민했다. 누군가와 함께 지내도 괜찮을 만큼 무난하지 않았다. 아이의 컨디션을 온전히 챙기기 위해서 홀로 있길 택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모임이 엉망이 되거나, 내 아이가 엉망이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면 아이를 섬세히 돌볼 수 없었기에, 핵인싸의 자리를 겸손히 탈퇴했다. 모두 나를 그리워할지라도 그리했다. (맞다. 과거라 좀 더 미화했다. 그 정돈 아니였다.) 소위, 자발적 아싸가 되었다.     


어느날 독야청청 지내는 내 모습을 보며 죽림 칠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죽림칠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자연에 은거해 청담을 나누던 도가적 사유방식을 지닌 현자들.      



그렇다. 난 유배를 당한 것이 아닌, 스스로 은거를 택한 것이다. 

이렇게 아이와 둘이 산에서 들에서 천에서, 자연을 논하고 사유하는 것이 기쁘지 아니한가.     



실제로 아이와 도가의 현자들처럼 살았다. 오전에 아이와 숲에 가면, 정말 통째로 숲을 빌린 것처럼 아무도 없었다.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말없이 몇 시간이고 땅을 팠다. 개미 뒷꽁무니를 마음껏 쫓아다녔다. 흙 바닥에 드러누워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쉴새 없이 구경하기도 했다. 아주 큰 구름이 지나갈 때, 시원한 그늘이 만들어지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다.     



외롭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결코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단연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 지나가서 일지, 추억은 으레 미화되기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립고 달콤하다.      



천하가 어지러울 때 벗끼리 어울려 청담, 즉 맑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키우던 죽림 칠현처럼 그때 너와 나는 세상과 벗어나 홀로 고요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가 끼어들 수 없었고, 

현실이었지만 현실적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정한 시간표를 벗어나, 예교(禮敎)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죽림칠현으로, 웅녀처럼 살았던 그때의 시간을 견뎠던 것은 아주 작은 내 믿음이었다.     



내 비록 지금은 단 벌 신사로 아이와 흙 파고 구르고 비비탄 주으며 땅거지처럼 살고 있지만,

내 원래는 학식과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오. 

내 비록 지금은 방구석에서, 숲에서, 들에서, 천에서 육아만 하다 곧 노파가 될 것 같소만

내 원래는 학식과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란 말이오.

(점차 울컥 해진다. 울분이 차오른다.)     



어쨌거나, 밑도 끝도 없었던 믿음에 보답하듯 그때 했던 나의 망상을 이렇게 책으로 전할 수 있어 무척이나 기쁘다. ‘방구석 죽림칠현 매력녀’는 여전히 방구석에서 컴퓨터 화면이나 노려 보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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