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살이풀이 죽은 자리에 다시 한해살이풀이 자라는 둑과 단단히 살을 굳힌 자갈과 공중을 깨며 부리를 벼린 새들의 천변을 마주하면 적막도 새삼스러울 것 없었다 다만 낯선 소리라도 듣고 싶어 얇은 회벽에 귀를 대어보면 서로의 무렵에서 기웃거렸던 우리의 허언들만이 웅성이고 있었다
박준, 우리의 허언들만이 (全文)
아무 일도 아니라니.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니다. 그게 아무 일이라면 그건 말 그대로 아무 일인 것이고, 그게 아무 일이 아닐지라도 구태여 그렇게 말할 일이라면 그것 역시 아무 일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아무리 흔치 않은 일도 모아 놓고 보면 흔하다는 말은 이젠 어떤 식으로 말하더라도 흔한 말이 되지 않았는가.
쾌락으로 두개골이 깨지는 너의 밤과 사랑으로 늑골이 부러지는 나의 밤.
그러나 뒤따르는 秒에 드는 생각은 이렇다. 나는 금붕어를 좋아한다. 어항이 깨진다. 금붕어가 몸을 뒤집는다. 어항이 붉게 충혈되어 간다. 츕츕, 어디선가 사탕을 빠는 소리가 들린다. 금붕어는 여전히 몸을 뒤집지만 그 속도는 이제 뼈가 붙어 가는 속도, 딱 그 정도다. 그러다가 어항에는 물이 차오른다. 그렇지만 금붕어는 헤엄치지 않고, 츕츕, 사탕 빠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