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를 잔뜩 입에 털어 넣고는 하필 연탄불 옆에 쓰러져 손가락을 잃은 남자를 생각한다. 그가 눈을 떴을 때도 연탄은 재가 되지 않고, 솥에 든 곰국은 졸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은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검지는 물처럼, 중지는 농처럼, 약지는 묵처럼.
잠에 든 동안 그는 아프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고도 없어진 손가락은 없어진 손가락이니 물론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기 위해 그 후로도 그는 몇 차례 연탄불을 지펴놓고 수면제를 먹었다. 손이 없어지고, 손목이 없어지고, 팔이 없어지고, 팔꿈치가 없어질 때까지. 그래도 아픔은 녹아 나오지를 않았다.
연탄을 두 장 올리고, 세 장 올리고, 네 장 올리고, 다섯 장 올려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수면제를 많이 먹는 날이면 어쩌다 연탄은 재가 되고, 솥에 든 곰국은 졸았다. 그러나 아픔은 녹는점이 높다. 그는 이제 물이 되고, 농이 되고, 묵이 되었다. 어떻게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베이지색 연탄재는 쓸려 갔고, 시커먼 솥은 팔려 갔다.
그의 아픔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의 아픔? 이제 사라진 그는 사라진 그이니 이건 누구의 아픔이라 해야 할지. 좀처럼 식지 않는데 이를 어쩌면 좋을지. 대체 누가 나서서 치울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