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경 Jul 19. 2021

정말 아무 일도 아니야

박준 - 우리의 허언들만이


  한해살이풀이 죽은 자리에 다시 한해살이풀이 자라는 둑과 단단히 살을 굳힌 자갈과 공중을 깨며 부리를 벼린 새들의 천변을 마주하면 적막도 새삼스러울 것 없었다 다만 낯선 소리라도 듣고 싶어 얇은 회벽에 귀를 대어보면 서로의 무렵에서 기웃거렸던 우리의 허언들만이 웅성이고 있었다


박준, 우리의 허언들만이 (全文)



  아무 일도 아니라니.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니다. 그게 아무 일이라면 그건 말 그대로 아무 일인 것이고, 그게 아무 일이 아닐지라도 구태여 그렇게 말할 일이라면 그것 역시 아무 일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아무리 흔치 않은 일도 모아 놓고 보면 흔하다는 말은 이젠 어떤 식으로 말하더라도 흔한 말이 되지 않았는가.


  쾌락으로 두개골이 깨지는 너의 밤과 사랑으로 늑골이 부러지는 나의 밤.


  그러나 뒤따르는 秒에 드는 생각은 이렇다. 나는 금붕어를 좋아한다. 어항이 깨진다. 금붕어가 몸을 뒤집는다. 어항이 붉게 충혈되어 간다. 츕츕, 어디선가 사탕을 빠는 소리가 들린다. 금붕어는 여전히 몸을 뒤집지만 그 속도는 이제 뼈가 붙어 가는 속도, 딱 그 정도다. 그러다가 어항에는 물이 차오른다. 그렇지만 금붕어는 헤엄치지 않고, 츕츕, 사탕 빠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금붕어를 좋아하지만,


  수족관에서만 보기로 마음먹는다.

  금붕어를 좋아하니까,

  죽치고 앉아 있으면 언젠가는 금붕어가 죽고,

  두개골이 깨지고 늑골이 부러지고,

  딱 그 정도이지,

  뼈가 바스라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고, 츕츕

  츕츕, 옆에서 사탕 빠는 소리만 날 것이다.


  사탕 빠는 소리, 그건 정말 아무 일도 아니다.

  금붕어가 죽었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항우울제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