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늘 세상엔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지, 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음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도 그런 사람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음도. 그래서 올여름엔 유독 장마가 늦게 찾아오나 봅니다. 지겹도록 길어질까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모를 일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은 바람이 차가워서 밤길을 걷고, 어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은 정신을 차리려고 술을 마시고, 어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은 온 세상이 다 들으라고 귓속말을 나누고, 어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은 동이 트도록 깨어 있으려고 팔베개를 해주고, 또 어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은 놓친 손을 다시 잡으려고 있는 힘껏 손목을 긋습니다.
이걸 몰라 화를 냈습니다. 사실은 손목이 너무 아파서 그랬어요. 이 말을 세련되게 하고 싶어서 발이 아프다가, 무릎이 아프다가, 골반이 아플 때까지 젖은 땅 위를 걸어 다니며 적절한 비유를 찾아 헤맸습니다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는 다시 올 것이고, 이 편지지가 종이 죽이 되어 버리기 전에 이 마음을 옮겨 써두어야 하겠죠.
선생님, 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저는 얼마나 많은 문장을 뱉던가요. 그중에 똑같은 문장은 몇이고, 새로운 문장은 또 몇이던가요. 상담실은 얼마나 고요하였던가요. 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저는 얼마나 창백하던가요. 손목은 얼마나 문지르던가요. 이제 우리의 상담은 끝났습니다. 어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이 나란히 누워 부르던 저 노래처럼, 딱 그만큼만.